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라 May 26. 2024

어쩌다 하트 반지, 내 손에 절대 반지

점심시간, 일찍 식사를 마치고 동료들과 사무실 근처를 걸었다, 작은 옷 가게들이 나란히 있는 골목을 지날 때쯤 누군가 말했다. “저기 보이는 커피숍에 액세서리랑 인테리어 소품들 판대요. 예쁜 게 많다던데요.” 그 말에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 저편 식탁 위에는 각종 커피잔과 그릇, 알록달록한 주방용품들이 가득 있었다. 다른 쪽엔 셔츠나 원피스 같은 옷들이 진열돼 있었고, 중간중간에 올려져 있는 닭 모양 소품도 인상적이었다. 각자 구경하던 우리는 어느새 카운터 정면에 있는 앤틱풍 장식장 앞에 모여있었다. 귀걸이와 반지, 팔찌, 머리핀 등 액세서리들이 장식장만큼이나 고급스럽게 진열돼 있었다. 나는 평소 액세서리를 즐겨 하지만, 반지는 끼지 않는다. 손 씻을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별로 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눈에 환하게 들어온 것이 있으니, 바로 리본 반지였다. ‘이거야!’  

   

“왼손 드세요!” 탁구 레슨을 받을 때면 자주 듣는 말이다. 탁구 라켓을 오른손으로 잡았다면 비어있는 손을 ‘프리핸드’라고 한다. 나에게는 왼손이 프리핸드인데, 프리핸드는 참으로 중요하다. 라켓 잡은 오른팔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중심을 프리핸드가 잡아주면서 몸의 밸런스를 맞춰주기 때문이다. 공을 강하게 치기 위해서도 왼손을 들어줘야 오른손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 결국, 탁구를 잘 치기 위해서는 양손 모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왼손은 눈치도 없이 자꾸 허리 밑으로 내려와 쉬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는 리본 반지가 떠다녔다. 왼손 검지에 반지를 끼고, 탁구 칠 때마다 반지를 보면 자연스레 왼손이 올라가 있을 거 같았다.

     

며칠 뒤 다시 그 카페에 가서 반지를 껴보았다. 반지는 왼손 검지 중간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사장님은 진열된 게 전부라며, 사이즈 주문이 가능한지 연락을 주기로 했다.


이제쯤 연락이 올까? 어서 반지를 끼고 탁구를 쳐야 하는데. 기다리는 연락이 없자 인터넷에 카페를 검색하고 전화했다. “혹시 카페밀 사장님이세요? 지난번 반지 사이즈 주문 가능한지 물어봤던 사람인데요.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죄송해요. 제가 전화 못 드렸네요.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잠시 후 주문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고, 며칠 뒤 반지가 도착했다는 반가운 문자에 퇴근 후 바로 카페로 갔다.

     

나를 위해 반짝이는 듯한 반지를 왼쪽 검지에 꼈다. 어째 주문한 반지가 살짝 느슨하다. 몇 번을 꼈다 뺐다를 반복해도 똑같았다. ‘손가락이 부으면 딱 맞겠지.’ 왼손에 반지를 끼고 탁구를 칠 생각에 살짝 느슨함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운동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네? 운동요? 혹시 반지 끼고 복싱 같은 거 하게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는 사장님에게 ‘탁구와 프리핸드’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내가 초보 레벨이라는 것도 살짝 곁들이며.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어쩐지, 지난번 손님이 전화했을 때 정말 반지를 갖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궁금했어요. 귀엽기는 해도 특별할 게 없는 반지를 그렇게나 원하셔서.” “탁구 칠 때 낄 거라면 리본 반지보다 이 체인 반지가 나을 거 같은데요.” 그녀는 진열돼 있던 체인 반지를 꺼냈다. “이 반지는 뒤쪽이 트여 있어서 손가락이 부어도 들어가고 크면 좀 줄여도 되고요. 운동할 때 헐렁한 느낌은 거슬릴 수 도 있어요. 주문한 거랑 상관없이 이걸로 추천해 드려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장님 제안에 체인 반지를 껴보았다. 손가락에 맞게 조이니 안정감 있게 꼭 맞았다. 그리고 제법 잘 어울렸다. 머뭇거림도 잠시 “체인 반지로 할게요” 여러 날 머릿속에 있던 리본 반지가 단 몇 분 만에 체인 반지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드디어 체인 반지를 끼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반지 뒤쪽 트인 부분이 손가락 살을 조여오더니 급기야 손가락 살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아팠다. 탁구를 위해 절대 반지를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카페를 찾았고 드디어 왼손 검지에 꼭 맞는 하트 반지를 발견했다. 완벽하게 동그란 뒤트임 없는 반지였다. 커다란 하트가 방패처럼 보였고, 두툼한 링에서는 손가락을 감싸는 포근함까지 느껴졌다. ‘그래! 이거야! 이번엔 확실해!’ 주저함 없이 하트 반지를 품에 안았다.

     

리본 반지가 체인 반지로, 체인 반지가 다시 하트 반지로. 초보 탁구의 길만 이 고난의 연속이 아니다. 절대 반지를 맞이하는 길 역시 순탄치 않았다. 왼손을 들고자 절대 반지를 찾아 헤매는 나는 불안했다. 라켓 잡은 손도, 라켓 안 잡은 프리핸드도, 공을 따라가는 다리도. 나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 불안했다. 불안은 탁구를 잘 치고 싶은 나의 갈망이다. 불안은 계속 나를 연습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고, 자연스럽게 박자를 맞추고, 자연스럽게 공을 넘기고. 자연스러운 것만큼 안전한 건 없다. 이제 나는 안전지대를 향한 원정을 시작한다. 나의 하트 반지와 함께.



어쩌다 하트 반지! 나의 절대 반지!


매거진의 이전글 타임슬립 가족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