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직장 탁구 동호회에 입문한 회원이 있다. 예전에 한두 달 배웠었다고 하지만 초보다. 그는 주말에만 운영되는 직장 탁구에서 다른 회원들의 동작을 따라친다. 세련된 동작일 리 없다. 그런데 힘도 세고, 서브도 좋다. 처음에는 유튜브에서 배웠다며 어설픈 서브 동작으로 공을 날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급기야 나는 이제 그의 서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일명 훅 서브. 그는 공의 회전을 바꿔 가면서, 오른쪽, 왼쪽, 길고 짧게 다양한 경우의 수로 서브를 한다. 명색이 내가 4년 차 초보 경력자인데, 1년 차 초보의 서브를 못 받아 게임에 패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 랠리를 하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그의 훅 서브가 시작되면 머리가 뒤엉켜 그냥 라켓만 냅다 나간다. 탁구대에 공이 들어가면 다행이고 안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대책이 필요하다. 내가 다니는 탁구장 고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회원님! 훅 서브를 리시브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훅 서브요? 공이 이렇게 오나요?” 그가 시범을 보였다. “아니에요. 오른쪽으로 빨리 와요. 엄청나게 빨리 날아와요” 그가 다시 시범을 보였다.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떤 때는 공이 왼쪽으로도 와요. 길게도 오고 짧게도 오고요” “훅 서브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어요. 동작이 눈에 낯설어서 어렵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래도 어려운데요. 게임 시작하자마자 리시브가 안 돼서 점수 주다가 게임 끝나요” “고수들도 리시브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예요. 천천히 공을 보고 넘기면 돼요. 제가 서브할 테니 받아보세요” 고수님은 훅 서브를 했고, 나는 받았다. 받긴 받았는데 공이 왼쪽 하늘로 날아갔다. 고수의 서브와 나의 리시브가 계속됐다. 어떤 공은 네트 아래를 맞고 떨어지고, 어떤 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가고, 어떤 공은 라켓과 만나지도 않았다.
“이건 훅 서브의 문제가 아닌데요. 공이 네트 위에 걸리거나 조금 떠서 넘어갈 수는 있어도 이 정도로 네트 아래에 걸리고 날아가는 건 공의 구질을 전혀 모른다는 얘기예요. 이 상태로는 운 좋으면 들어가고 아니면 나가거나 걸리는 그런 게임을 하게 돼요. 우선 공을 보는 연습부터 합시다.”
훅 서브 리시브를 배우려다 공 보기 연습이 시작됐다. “눈을 크게 뜨고 공을 보세요. 공이 무겁게 오면 커트 회전량이 많은 거고, 가볍게 통통 날아오면 회전량이 적은 거예요. 그거에 맞게 무거운 공은 아래를 더 받쳐서 친다는 생각으로 낮춰서 스윙해야 해요. 상대 공을 모를 때는 일단 안정적으로 부드럽게 넘겨야 해요. 절대 공격적으로 세게 팍 치지 마시고요.” 진작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의 서브가 빠르게 들어왔다. ‘어! 이건 뭐지? 무거운 건가? 가벼운 건가?’ 순식간에 날아온 공에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날아갔다. 그가 다시 서브를 했다. 이번에도 날아갔다. 또 서브했다. 이번에는 네트에 바로 걸렸다. 그의 표정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공 봤어요?” “아! 아니! 못 본 거 같아요” 분명히 눈은 부릅뜨고 있었는데 내가 본 건지 안 본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불과 0.1초 차이도 안될 것을. 훅하고 지나가서 훅 서브인지 알쏭달쏭할 뿐이다. 그는 다시 서브했고 나는 리시브했다. 어떤 공은 들어갔지만, 대부분 공이 네트에 걸려 뱅글뱅글 탁구대 위에서 춤을 췄다. “봤어요?” “죄송해요, 못 봤어요.” 도돌이표처럼 우리의 대화는 딱 이 두 마디가 되풀이됐다. “봤어요?” “아니, 본 거 같은데 못 봤어요” “봤어요?”“아니요, 또 못 봤어요.”, “봤어요?” “아니요, 너무 빨라요”
천천히 오는 서브는 그래도 구별이 된다. 문제는 빠르게 훅 나오는 서브다. 순간 집중력이 최고치가 되지 않으면 회전이 많은지 약간 있는지, 거의 없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눈으로 공의 회전을 읽었다 해도 라켓이 상황에 맞게 나가 주냐는 별개다. 내 몸에 붙어 있지만 내 눈도, 내 팔도, 내 다리도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몇 번 공이 잘 들어가자 그가 말했다. “알고 리시브한 거죠? 보려고 하면 보여요.” 사실 내가 공을 잘 봐서 들어간 건지 자신은 없었다. “이렇게 계속 공 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더 좋아지실 거예요” “네, 계속 공을 제대로 보고 리시브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벌써 한 시간째 서브와 리시브, 공보는 법을 무한 반복으로 가르쳐준 고수님께 인사했다.
탁구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쳐야 하기에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수다. 눈을 감고 내 오른쪽 탁구대 끝으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상상한다. 자세를 낮추며 최대한 민첩하게 다리를 움직인다. 몸이 공에 최대 근접했다. ‘이때다’ 하고 시원하게 스윙한다. 앗! 네트에 걸렸다. 방향은 잡았는데 회전량은 못 봤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다시 눈을 감고 공이 날아오는 것을 상상한다. 공을 보는데 지름길은 없다. 많이 봐야 볼 수 있다. 탁구장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가능하다면 꿈속에서도 보고 싶다. 그렇게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면 오차범위 제로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아마도 고수님과 나의 대화는 이렇게 되겠지. “봤어요?” “당연하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예쁘게 공이 들어갔지요. 다 생각이 있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