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긋나는 마음들이 내 속에 뒤엉켜 있을 때가 있다.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모순’이, 내 탁구 삶 속에도 자리 잡고 있다. 작년, 직장 탁구동호회를 탈퇴하려고 했다. 탁구 치는 법을 가르쳐주는 동호회인 줄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냥 탁구 좀 치는 사람들의 친목 동호회였다. 그곳에서 난, 특정 회원에게 질타와 노골적인 모독을 경험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호회를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 나를 머뭇거리게 했던 건 아등바등해보려고 애쓰는 나를 격려하며 공을 받아주던 고마운 회원들이었다. ‘그래, 딱 올해까지만 하고 연말에 탈퇴하자. 탁구장 동호회도 있는데 굳이 이중으로 직장동호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약속된 연말이 됐다. 연례행사인 정기대회 겸 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대회가 끝나면 조용히 탈퇴 선언을 하면 된다. 그런데 난 탈퇴는 고사하고 자발적으로 ‘재무부장’을 맡았다. 모순이었다. 마침 그날은 앞으로 2년간 직장동호회를 맡을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사전에 협의가 되었는지 회장, 부회장, 총무, 경기 부장이 정해졌다. 모두가 나를 지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재무부장 자리가 비었는데 마땅히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인데, 내가 도울까?’, ‘제정신이야! 너 탈퇴한다고 했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찾고 있다잖아. 내가 도울 수 있다고’ ‘이미 사회 탁구장 동호회도 있잖아. 집 근처 탁구장을 두고 여기까지 오는 건 시간 낭비야. 좋은 사람들은 그곳에도 많다고.’ 내 안의 다른 내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앞에 놓인 보쌈을 한입 가득 넣었는데 도무지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재무부장 제가 할게요. 앞으로 2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이달 말, 몇몇 직장동호회끼리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주관하는 자체 탁구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우리 직장동호회 주관이다. 대회 준비를 위해 임원진 회의가 소집됐다. 모임 장소는 대회 후 뒤풀이 장소로 정해둔 고깃집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근무하는 곳 반대쪽에 위치해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볼 생각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온몸으로 받으며 1시간 반을 운전했다. 햇볕은 왜 이리 따가운지 엉덩이에 땀띠가 날 듯 차 안은 뜨거웠다.
식사에 앞서 회의에 들어갔다. 대회 장소 사전답사부터 대회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탁구대를 이동할 차량, 대회 상품과 기념품, 현수막과 마이크 등 세부내용까지 하나씩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미리 산정해 본 대회 우승 인원수에 따른 상품 후보군과 예상금액을 알렸다. 온·오프라인에서 알아본 물품 가격을 토대로 금액에 맞는 상품을 나열했다. 혹시 회의에 필요할까 봐 챙겨간 노트북을 펼쳤다. “노트북도 가지고 온 거예요?” “네, 기록할 거 있으면 바로 하려고요. 우리가 주관하는 대회인데 잘 준비해야지요”
인생이 많은 부분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여고 시절 눈이 예쁜 연예인이 이상형이라며 노래 부르던 친구가 남자친구라며 소도둑 놈처럼 보이는 사람을 소개한다거나, 절대 반려견은 키우지 않을 거라며 불편함을 보였던 친구가 모임 후 늦은 시간 잘 들어갔냐는 문자에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다며 답장이 보내기도 하니 말이다. 운동은 땀나고, 힘든 지친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내 인생에 탁구가 등장한 걸 보면 나 또한 그렇다.
중요한 대회가 끝나고 몇 번의 자체 행사를 치르고 나면, 재무부장의 임기가 끝난다. 조급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해 나의 임무를 다한 후, 조용히 직장동호회에서 나올 생각이다. 탁구를 향한 사랑이 동호회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흔들림 없는 탁구 열정을 위해 중간 정비가 필요하다. 마음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가끔 쓸쓸함이 들어왔다 사라지기도 하고, 혼자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탁구 사랑에서 비롯된 이 마음을 오롯이 연습으로 채워보려 한다. 내가 연습하는 탁구장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무엇이든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단걸 안다. 내 열매는 아직 맺히지 않았지만, 느리게 익어가고 있음을 기다림의 순정으로 믿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