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한 여름, 다시 소환하다!

by 새라

여름은 뜨겁다. 여름 햇볕은 더 따갑다. 가끔씩 등장하는 소나기에 조금은 시원해질 만도 하건만 여름의 시그니처 ‘더위’는 가실 줄 모른다. 뽀송뽀송하게 화장을 하고 나갔건만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 살포시 흘러나온 땀과 정성스러운 화장이 섞이면 얼굴은 찐득하다 못해 쫀득해진다.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싶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기에 함부로 그럴 수 없다. 밤이 찾아온다 해도 나을 것은 없다. 늦은 밤에도 열대야 덕분에 오를 만큼 오른 기온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에 콕 박혀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이라면 자칫 사소한 일도 민감해질 수 있다. 감정의 최적화를 위해 에어컨의 도움을 받아 집안에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건 해수욕장이다. 제주시에서 가까운 곳에 관광객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함덕해수욕장’ 이 있다. 태양이 기울어져 가는 저녁 시간, 집에서 30분 거리인 ‘함덕해수욕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해가 지기 직전 해수욕장 주변은 축제 전야를 방불케 한다. 해안가에 촘촘히 들어선 가게들이 하나씩 불을 밝히고, 해안가를 누비는 알록달록 하늘거리는 의상의 다정한 커플들은 이곳이 ‘제주’라는 걸 잊게 한다. 모래 놀이 바구니를 들고 밀려온 바닷물에 환호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진정 내가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쯤 물놀이를 한 후, 준비해둔 약간의 물로 몸을 씻기고 큰 타월로 아이들을 감싸 차에 태운다. 만일, 주말에 갔다면 좀 더 많이 준비하고,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제주여서 가능한 선택적 해수욕장 나들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모래 범벅인 옷들을 세탁하면 나의 해수욕장 나들이는 마무리된다. 짭조름한 바닷물보다 숲속의 한들거리는 풀냄새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 시절 여름은 아이들의 여름이었다. 여름은 길고 끈적하며, 욕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모래 알갱이처럼 나를 까슬까슬하게 했다.


이런 여름이 사라졌다. 모래의 푹신함과 바닷물의 간지러움에 ‘엄마’를 외치던 아이들은 이제 바다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하고, 나에게도 꿈에서도 나올듯한 연인 같은 탁구가 등장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해질 때쯤 평상시 눈여겨본 집 근처 탁구장에 레슨을 등록했다. 아무리 맹렬한 여름도 냉풍이 쏟아지는 탁구장에서는 기를 펼 수 없다. 냉풍보다 한 수 위인 건 탁구대 위를 왔다 갔다 핑퐁 대는 귀여운 공이다. 여름 따위는 상대가 안 된다는 듯 탁구대에서 강렬하게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라도 여유가 생길 때면 ‘서브는 어떻게 할까? 스텝은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지,’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탁구를 잘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잠들기 전 탁구 경기를 복기해 보려 눈을 감았는데 눈 떠보니 아침일 때, 참으로 속상해진다.


나는 여름을 탁구장 문 앞에서 느낀다.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탁구장 문을 여는 순간 여름이 훅 들어온다. ‘아! 덥다!’ 그러나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나의 여름은 탁구로 채워진다. 시원한 스윙으로 ‘탁’하고 상대 테이블에 공이 꽂힐 때의 짜릿함은 계절을 잊을 만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나의 여름은 탁구에 가려졌다. 가을의 자리를 탐내며 더욱 길어진 여름은 오래도록 천천히 지나가지만, 탁구장에 있는 난 여름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눈치채지 못한다. 운동이 끝나서 탁구장을 나서는 밤, 어느새 서늘해진 바람에서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걸 알아챈다.


이제 여름을 다시 느끼고 싶다. 뜨거운 햇볕 아래 서 있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해 선물처럼 주어지는 나의 계절을, 세월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탁구와 함께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날 푸르른 숲길의 한가로움과 서늘함을 온 마음을 다해 느끼며 냄새 맡고 싶다. 바닷물에 덮인 모래 바닥을 맨발로 걸을 때, 차갑고 푹신한 촉감을 알아차리고 싶다. 탁구 사랑에 가려졌던 여름을 이제는 쫀득하게 안아주고 싶다. 나는 탁구도, 여름도 놓치고 싶지 않다. 계절과 함께 흐르는 삶의 리듬이 탁구의 리듬만큼 중요하고 소중하단 걸 비로소 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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