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은 아니지만

by 새라

'도장 깨기'라는 이름으로 다른 탁구장에 가서 그곳 회원들과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상 친선경기다. 대게는 고수들이 다른 탁구장에 놀러 갈 때 흔히 그렇게 말하곤 한다. 가끔 내가 다니는 탁구장에 사람들이 올 때면 숨 막히는 그들의 플레이를 넋 놓고 감상하곤 한다.


그런데 오름 부장인 나에게 동호회 총무가 연락이 왔다. “K탁구클럽에서 초보그룹끼리 친선전을 한데요, 우리 동호회도 함께 하자고 하는데 어때요?” 탁구를 배우기 시작한 지 5년, 초보끼리 친선경기는 처음이었다. 서둘러 오름부 단톡방에 올리자 6명 중 일정이 되는 3명이 신청했다. 총무를 통해 친선교류전 전체 명단이 왔다. 주관하는 K탁구클럽 6명, 우리 한정영탁구클럽 3명, 스핀제주탁구동호회 3명, 탐라탁구클럽 2명, 4개의 동호회에서 총 14명이었다.


교류전 날이다. 오후 3시 경기 시작에 맞춰 K탁구클럽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은 후끈했다. K탁구클럽 오름부 선수들은 홈그라운드답게 금강부, 한라부, 백두부 고수 회원들과 1대1로 연습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스핀탁구에서도 부관장과 고수 회원이 함께 와서 오름부 3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참가인원이 2명인 탐라탁구클럽 역시 상위부수 회원들이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하고 있었다. 칠판에 적힌 대진표가 진짜 교류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응원진이 오는구나.’ 탁구장에서 마주친 몇 명에게 오름부도 교류전이 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는 했었지만, 동호회에 공지는 없던 터였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등장했다. 똑같은 어른인데 상위부수 회원들의 등장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감상에 젖어 들 찰나 경기가 시작됐다. 운영방식은 간단했다. 다른 동호회 사람들과 체력이 다할 때까지 5세트 풀리그를 하는 것이다.

오름부 경기의 장점은 경기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 데 있다. 고수들보다 랠리가 적고, 서브나 리시브 실패가 많기에 빠른 속도로 11점에 도달한다. 때에 따라서 경기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덩달아 탁구대 회전율도 높아진다.


첫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는 서브도 리시브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특별한 공격 없이 공만 받아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라켓 잡은 손은 흔들렸고, 다리는 뻣뻣해졌다. ‘정말이지 너무한 거 아니야! 이건 아니지!’ 속으로 나를 나무랐지만, 움직여야 할 발바닥은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흔들렸다. 그냥 넘겨도 되는 공을 내리쳤고, 공은 아주 가끔 들어갔다. 점수를 줄줄이 내주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 어렵게 이겼다. 좀 전 동호회 탁구장을 나설 때 연습하고 있던 회원이 건넨 인사말이 떠올랐다. ‘오름 부장님! 오늘 ‘전승’ 하셔야지요? 오름부 에이스잖아요’


두 번째 경기다. 상대는 K탁구클럽의 회원 중 제일 막내 같았다. 하지만, 기본 스윙도 커트 드라이브도 힘 있고 정확했다. 거기에 박자마저 빨라, 내 박자로는 그녀의 공을 넘기는 게 버거웠다. 그렇다고 느슨하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빨리 쳤다. 공이 탁구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라켓을 먼저 보냈다. 타점이 맞을 리 없다. 공은 계속 네트에 걸렸다. 머리는 공과 박자를 맞춰 움직이라고 했지만, 몸은 제멋대로였다. 상대 서브를 읽지 못하면, 천천히라도 넘겨야 하건만, 상대가 공을 보내자마자 냅다 쳤다. 결국, 졌다. 2경기 중 1승 1패. 다행히 부끄러워할 시간 없이 세 번째 경기는 계속되었다.


세 번째 경기부터는 계속해서 승을 챙겨왔다. 8승 1패. 전승은 아니지만, 승이 압도적이다. ‘그래, 전승은 아니더라도 1패만 가지고 가자!’


10번째 게임이다. 상대는 K탁구클럽 왼손회원이다. 왼손회원이 보낸 공은 오른손과 반대 방향으로 온다. 상대가 서브를 넣었다. 내 오른쪽으로 공이 약간 휘어서 날아왔다. 천천히 편안하게 리시브하면 되건만, 공을 천장으로 날렸다. ‘방향은 맞은 거 같은데, 뭐지?’ 사실은 방향도 틀렸다. 리시브부터 흔들리니 침착성을 잃었다. 방향만 평소와 다를 뿐 그리 어려운 공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내 몸은 단단히 굳어서 도무지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 게임은 망했어!’ 머리와 몸이 이미 갈라선 지금 게임은 승패는 분명했다. 또, 졌다. 10경기 중 8승 2패.


마지막 11번째 경기다. 상대는 탐라 탁구클럽에 1년 차 신입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 시간째 지켜본 그녀는 초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17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에 움직임도 날렵했고, 서브도 자연스럽고 다양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 느낀 부담과 달리 가뿐히 1세트를 가져왔다. 괜한 걱정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2세트부터 실수가 잦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가 보낸 공이 1세트와 달랐을지 모른다. 내 스타일을 파악했는지 긴 다리를 움직이며 떠오는 공을 과감하게 넘겼다. 그녀의 서브는 겉보기에는 평범했다. 하지만 나는 공을 읽지 못했고, 생각 없이 앞으로 나간 팔은 공을 날렸다. 그러다가 가끔은 네트에도 걸렸다. 결국, 평범해 보였던 그녀의 서브를 특별하게 만든 건 나였다. 5세트까지 갔지만 졌다.


교류전 11경기, 8승 3패. 탁구대를 기다리는 공백이 있었음에도 3시간 만에 모든 경기를 마쳤다. 탁구를 시작한 이후 하루에 가장 많은 경기를 뛴 날이었다. 경기를 복기해본다. 패한 세 경기 모두 리시브가 흔들렸다. 공과 박자를 맞추지 못했고, 리듬을 놓치는 순간 경기는 소심해졌다. 박자가 맞았다면 공과 나 사이에 한 박자쯤 선택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교류전에서 ‘전승’의 오름부 에이스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를 복기하고 반성하는 데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한 에이스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진짜 ‘전승’ 에이스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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