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탁구장에서 가끔씩 ‘절도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태권도에서는 구호와 함께 동작이 시원하게 나올 때 쓰이는 멋진 말일지 모르지만, 탁구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딱딱하게 분절될 때 쓰이는 어쩌면 완곡한 표현일지 모른다. “누나는 탁구를 절도 있게 치는 것 같아요. 힘 좀 빼고, 부드럽게 넘겨보세요.” 오늘도 헉헉대며 연습하는 내 옆을, 탁구장 동생이 쓱 지나가며 한마디 던진다.
이제 곧 ‘2025년 디비전 리그’ 대회가 열린다. 대한탁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전국대회다. 매해 팀 구성 요강이 바뀌는데 올해 대회는 2인이 1팀으로 구성된다. 특별한 것은 초보그룹 경기가 ‘단독’으로 생겼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회까지는 하위그룹도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상위부수와 섞여 팀을 구성했다. 우승을 위해서는 상위회원끼리 팀을 구성하는 게 나았기에 초보들이 설 자리는 좁았다. 올해 단독 초보그룹 디비전 리그에 오름부(초보그룹) 언니와 내가 ‘디비디비핑퐁’ 이란 팀명으로 신청했다. 대회는 시군구에서 레벨별로 지역 예선과 본선이 진행된다. 그리고 지역 본선을 통과한 팀은 그 지역대표로 최종 전국단위 대회에서 실력을 겨루게 된다. 경기는 2명이 2단식 1복식(2단 1복)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식 못지않게 복식 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주말에 고수 회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와 언니가 한팀이고 상대팀은 고수 혼자인 2대 1로 하는 복식 연습이다. 내가 서브를 넣고 고수회원이 리시브하면, 다시 돌아오는 공을 언니가 공격한다. 탁구에서 복식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공을 쳐야 한다. 서로 위치가 꼬이면 곤란하다. 상대가 공을 잘 칠 수 있게 얼른 빠졌다가, 내 순서가 되면 빠르게 탁구대 앞으로 들어와야 한다.
연습이 시작됐다. “서브 넣어보세요” 나는 자신 있게 쭉 대각선으로 서브를 넣었다. 빠르기도 그저 그런 긴 서브였다. 고수가 가볍게 받아서 공을 쳐버렸다. “이 서브 왜 넣으신 거예요? 어떤 전략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전략은 없어요. 우리는 그냥 긴 서브 하나, 짧은 서브 하나, 이렇게 할 계획이어서 처음에 긴 서브를 넣은 거예요” 신경 써서 넣은 서브를 바로 공격해 버려 살짝 민망해진 내가 야무지게 말했다. 고수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방금처럼 서브를 길고 편안하게 넘기면 아무리 오름부라고 해도 바로 공격할 수 있어요. 그럼 내 파트너는 시작부터 수비해야 해요. 우리 팀이 불리해지는 거예요. 이런 서브는 가끔 빠르게 기습으로 넣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상대가 바로 공격하지는 못할 정도는 돼야 해요.” 언니와 나는 역시 고수 섭외를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략이 필요한 거였어.’
이번에는 내가 중간 정도 길이의 살짝 하회전이 섞인 서브를 했다. 고수가 내 공을 리시브하자 언니가 공을 넘겼고, 우리 쪽으로 온 공을 내가 쳤다. 공은 번갈아 가며 탁구대 위를 횡보하는데 우리의 스텝은 뒤죽박죽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급기야 스텝이 꼬이더니 공만 보며 달려간 나의 라켓과 언니의 팔이 부딪쳤다. “앗!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내가 빨리 비켰어야 했는데” 연습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공을 받고 미처 빠지지 못한 내가 언니 발을 밟았다. “앗! 죄송해요” “난 괜찮아! 우리, 공이라도 잘 치자” 아직 복식이 낯선 언니와 나는 분주하게 탁구대 주변을 우왕좌왕 뛰어 댔다.
내가 서브를 넣으면 주로 공격 찬스는 언니에게 왔고, 언니는 안정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거기에 코스 보는 안목도 있어, 상대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공을 잘도 보냈다. 이번엔 순서를 바꿔 언니가 서브를 넣었다. 나에게 공격 기회가 온 듯했다. 공은 떴고 확실하게 때리면 상대 테이블에 바로 꽂힐 거 같았다. 순식간에 팔이 몸 뒤로 빠지더니 언제 나왔는지 공을 냅다 쳤다. ‘공과의 거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시야에 공이 들어온 이상 무조건 쳐야 했다. ‘몸으로 친다. 다리로 잡고 친다. 타점을 맞춘다.’ 이런 말들은 글을 쓸 때나 나오는 말이다. 다리는 꼿꼿이 섰고, 허리만 구부정했다. 팔은 이미 쭉 뻗었으니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아마 누가 봐도 웃긴 모양새였을 거다. 고수의 눈이 커졌다. 당황, 놀람, 체념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농담 같은 진심을 말했다. “아! 홍초라도 드셔야겠어요. 그렇게 딱딱하게 공을 치시면, 아, 정말 홍초 드세요”
안정적인 플레이를 구사하는 언니와 공격 성공률은 한자리면서 무조건 공을 때려버리는 내가 한팀이 되었다. 복식은 혼자만의 경기가 아니다. 파트너와 함께하는 경기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는 기본, 그 위에 치고 빠지는 빠른 스텝과 실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걸 배운다. 그리고 공격할 때와 넘길 때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부드럽게 넘긴다고 공이 약하거나 느린 건 아니다. 치는 순간 힘을 빼고 가볍게 속도를 높여 스윙하면 공은 빨라지고 힘이 세진다. 홍초를 마셔서 내 몸이 유연해진다면야, 덕분에 힘 빼고 가볍게 공을 넘길 수 있다면야 뭔들 못하랴. 이미 매일 저녁 마시는 식초물 한 컵에 더해, 아침까지 한 컵 더 홍초를 마시리라. 효과는? 우리 팀 ‘디비디비핑퐁’의 성적표에 달려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