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될 때 잠을 좀 자고 그래
새벽에 일어나 바깥을 바라보며 제 자리에 앉습니다. 열흘 정도 보이지 않던 바깥 풍경이 오늘은 반투명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보입니다. 초록의 느낌을 받으며 머리와 눈이 조금 더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 들어 일의 강도가 더 올라갔습니다. 제 분야의 새로운 일들에 대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저는 새벽 기상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으로 머리가 쉴 틈이 없었는데 거기에 몸의 고단함까지 더해져 좀 피곤했습니다.
이렇게 피로가 쌓여가던 어느 날, 어머니를 잠깐 뵙고 왔어요. 우리 남편의 눈은 어머니의 눈빛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결혼한다고 인사 갔을 때 그날의 어머니 눈빛은 여전히 생생한데, 겉으로 보면 매섭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깊습니다. 깊은 만큼 상대를 이해해주는 폭이 넓은데 그게 제 남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요즘 많이 바쁘지? 시간 될 때 잠을 좀 자고 그래
이 말씀을 얼마 전 얼굴을 뵈었을 때부터 전화로도 세 번 하셨습니다. 같은 말을 잘하지 않는 분이신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내가 꽤나 피곤해 보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세 번째 그 말을 듣고 난 후 일이 없던 어느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그대로 쓰러져 세 시간 넘게 잠을 잤습니다. 그래도 피곤이 풀리지 않아 지난 주말에는 새벽 알람도 마음이 거부한 채 아이를 안고 12시간을 내리 잤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일요일은 햇살이 더욱 밝았고 초록빛은 더욱 선명했어요. 아이는 참 예뻤고 주변에는 흥겨운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아이와 더 즐거웠고 남편에게도 다시 친절해졌습니다.
셋이 똘똘 뭉쳐 지내는 터라 서로의 표정과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 가족은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무엇이길래 엄마의 표정과 말투, 생각이 가족의 하루를 지배하는 걸까요. 엄마가 힘을 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보다 더 빠르게 저를 보셨던 어머니의 한 마디로 저는 제 패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같은 하루하루를 이어가다가 어머니의 말씀 덕분에 쉼이 필요한 걸 알게 되었어요.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는 걸 힘들어하는 저는, 이런 나를 알아봐 주고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은 참 단단하고 한결같습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문득문득 보일 때가 있는데 한결같은 모습을 볼 때 가장 고맙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우리를 바라 봐주시는 눈빛을 곱씹으며 오늘 아침도 아이를 마주할 준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