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세상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몸은 놀라울 만큼 가벼웠고, 깊은 휴식의 잔향이 나를 감쌌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한 겹의 시간은 꿈처럼 사라졌고,
내가 잠들기 전 무엇을 계획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언뜻 밀려온 감정은 '허무'였다.
오늘 해야 할 일들, 마음속에 세워두었던 시간표들.
예상치 못한 수면은 처음엔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조용히 그 허무함을 바라보았다.
그 감정은 비어 있는 골목을 따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곧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감사가 들어섰다.
나는 원래부터 몸의 리듬과 흐름을 중시해왔다.
특히 수면에 있어서는, 내가 필요한 만큼 자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깊고 충분한 수면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의식적으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하루를 더욱 충만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푹 잘 수 있다는 것,
내 몸이 회복을 선택했다는 것,
그 여유가 내게 허락되었다는 것.”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그 아침의 배경에는 거센 빗소리가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고 창문을 열어 빗줄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통제하고 싶어하고 있구나.”
하루를 준비하고, 움직이고, 계획하는 나의 습관들.
겉보기에 생산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변수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었다.
그 불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빗소리는 여전히 컸고, 날씨는 여전히 내 손에 닿지 않았다.
그때 속으로 말했다.
“비가 온다면, 젖을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젖을 준비하거나, 젖는 것을 허락하거나.”
그제야 비는 더 이상 문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나는 그 흐름 안에 있었다.
루틴을 따르며 조용히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그 순간, 내가 반복적으로 빗소리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크게, 작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나도 모르게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명확한 ‘집착’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흐름을 '읽으려는' 나의 본능적인 반응.
그러나 그 감정을 붙잡지 않았다.
“그래, 집착이구나.”
조용히 이름 붙이고, 흘려보냈다.
“흐름 속에 살기로 했다면,
비가 올 때는 젖어야 하는 법이다.”
그 말처럼, 나는 그저 젖어보기로 했다.
아침, 내게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것은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다시금 되새긴 하나의 문장이었다.
“인생은 애초에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었고,
삶은 번번이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흐름과 싸웠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안간힘을 쓰며 방향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이 내 안에 새겨졌다.
“비가 오면 젖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이 불면 돛을 다시 매는 것이 지혜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찾는 것.
그때 비로소 마음에 쌓여 있던 긴장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억지로 맞서던 날들보다,
흐름을 허락한 오늘이 훨씬 가벼웠다.
아침, 나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허무함을 느꼈고, 집착을 알아차렸으며,
통제 욕망을 내려놓았다.
그 모든 감정은
지나가는 비처럼 머물다 흘러갔다.
내가 한 일은 단 하나였다.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허락한 것.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계획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어긋날 때도 고요하게 그 안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가 찾아왔다면,
그건 삶이 건네는 작은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흐름에 걸음을 맡겨도 괜찮아.”
https://medium.com/@irenekim1b/allowing-the-morning-flow-e2d5a35c4d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