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빠른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상황 판단이 날카롭고, 필요하다면 단절도 서슴지 않았다. 관계든 일상이든, 파열은 때때로 효율적인 선택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것을 나의 장점이라 여겼다. 마치 인생을 다스리는 능력처럼, 내게는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빠른 선택들이 정말로 현명했는지 되묻게 되었다.
현자들은 말한다.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선택은 결국 본질을 외면하는 길이라고. 그것은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라고. 그 말에 나는 부정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순간의 고통을 눌러 가라앉히는 선택은 문제의 뿌리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저 증상만을 덮어둘 뿐, 결국 같은 자리가 다시 아프게 다가온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그때그때의 불편함을 잘라냄으로써 뭔가를 해냈다고 여겼다.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미련 없이 돌아섰다. 후회도, 되돌아봄도 없었다. 아니, 후회를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효율적이라 믿으며,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내 안의 무언가가 자꾸 다른 소리를 낸다. 책 속 문장들이, 지혜자들의 말이,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이—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작은 소녀가 내게 말한다.
"그건 진짜 해결이 아니야."
"넌 알고 있었잖아."
"지금 멈추지 않으면, 또 같은 데로 돌아올 거야."
그래서 나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택해 보기로 했다. 한 발 물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결정도, 말도, 행동도 멈추고,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것. 처음엔 그 침묵이 불편했다. 무기력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답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뿌연 감정의 흙탕물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왜 내가 그런 선택을 반복해 왔는지, 왜 같은 장면 속을 맴돌았는지.
놀랍게도 외부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고요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디자, 전엔 보이지 않던 해답이 스스로의 얼굴을 드러냈다. 마치 맑아진 거울 위에 비친 진짜 내 모습처럼.
결국 내가 바꾸어야 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감정이 휘몰아칠 때, 나는 멈추어야 했다. 멈춘다고 믿었지만, 실은 도망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진짜 회복은 그 순간을 지나칠 때가 아니라, 그 순간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제자리걸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내 안의 소녀는 조금 더 환한 얼굴로 웃고 있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cost-of-being-quick-to-decide-4a048a7cff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