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에세이] <루이스 웨인展>을 다녀와서

고양이를 그린 사랑의 화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홀

by 채유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며칠의 폭우 끝 방문한 삼성역은 다행히 환상적인 여름 날씨와 어울리는 평온한 상태였다. 금방 복구가 됐네, 역시 자본의 힘인가… 등의 생각을 하며 인생 첫 백화점 오픈런 길에 올랐다. 꺼져있던 엘리베이터가 오전 10시 30분이 되자마자 가동하며 계기판에 떠오른 주홍빛 숫자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출근한 것은 아닌데… 출근한 느낌……. 아침부터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방문하게 된 계기는 10층 문화홀에서 진행되고 있는 <루이스 웨인展>을 관람하기 위함이었다. 올해 초,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 광고를 통해 뇌 구석에 박혀있던 화가 루이스 웨인의 존재가 리마인드 됐다. 영화는 고양이를 곁들인 로맨스인 것 같아서 보지 않았지만, 마침 그의 이름을 다시 잊기 전에 전시회 소식을 접하게 되어 막연하게 고양이 덕후니까 가야지!라는 묘한 사명을 갖고 있었다.


루이스 웨인전은 총 6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중간 그의 그림을 재구성한 미디어아트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아트샵과 포토존까지 준비되어 있다. 루이스 웨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표정이 풍부하고 동작이 사실적이어서 미디어아트에서 구현한 움직임이 그림에 더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느꼈다. 이전 이건희 회장 기념전에서도 프로젝션과 음향을 통해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에 더욱 그윽하게 스며들 수 있었는데, 점점 미디어아트의 매력을 알아가는 것 같다.


첫 섹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섹션에서 인간처럼 표현한 고양이를 만나볼 수 있다. 첫 섹션의 고양이들은 현실 속 고양이와 동물들을 관찰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사실적인 석판화가 대부분이었는데, 날카롭고 가는 선으로 털을 한 올 한 올 심은 것이 첨예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놀란 고양이의 굽은 등, 언짢은 표정 속 콧잔등 주름과 귀의 모양, 하악질하는 고양이의 눕혀진 혓바닥 등의 신체 표현과 동작이 섬세하게 그려져 고양이 집사로서 매우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거나 의도치 않더라도 변화가 생기듯이, 루이스 웨인이 인기를 얻고 난 후에 그린 그림 중에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그림들도 있었다. 하지만 크레용 등의 재료를 사용해 둔한 선으로 그려낸 뭉툭한 느낌의 고양이 그림에서도 풍부한 표정은 빠지지 않았다.


이솝 우화가 꽤 긴 역사를 갖고 있기에 동물을 의인화하는 요소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 의인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명을 보고 갸웃했다. 문학이 아닌 회화에서 의인화를 시도한 것이 그가 처음은 아닐 것 같은데… 대중에게 인기 높은 저명한 화가여서 그런 타이틀을 얻은 건지, 아니면 정말 획기적이었던 시도였기 때문에 시초가 된 건지 궁금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루이스 웨인의 작품 속 인간적인 고양이들이 단순히 귀엽고 익살맞아서가 아니라, 당시 19/20세기의 가식적인 사회상(실제 감정과 표정을 감추고 사회적인 가면을 덧씌운 사람들)을 풍자함으로써 공감과 해학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그가 국민 화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이 조금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카드 게임을 하고, 티 타임을 가지고, 뛰어놀고,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는 삽화 속 고양이들로부터 오히려 진정성을 투영하다니. 인간, 그리고 어른이 되기란 복잡하고 어렵다…….


각 섹션의 구분은 주제에 연관된 작품의 종류뿐 아니라, 작품이 걸린 벽의 색상을 통해서도 인지할 수 있었다. 차례대로 민트, 살구색, 물색, 노랑, 검정, 하양의 색상이었는데, 루이스 웨인이 정신분열증을 얻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은 검은색 벽에, 이후에 영국의 국민 화가로서 대우받고 평화롭게 말년을 보낸 병원에서의 작품들은 흰색 벽에 배치하였다. 전시관 동선은 별로였지만 가벽 색상을 통해 분위기 전환의 효과가 있었고, 소소하게 각 섹션의 도입마다 한 번씩 큐레이팅의 의도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루이스 웨인의 만화경 고양이 시리즈가 그의 정신분열증 때문에 괴이하게 그려진 게 아니라는 것은 이번 전시가 아니었으면 계속 잘못 알고 있을 뻔했다. 태피스트리 직물 디자이너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패턴을 입힌 그림을 시도하였고, 특이하게도 그림을 양손으로 그릴 수 있는 그의 능력 덕분에 복잡하면서도 반복적인 대칭적 패턴을 사용하여 고양이나 그 뒷배경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병' 섹션에 전시된 이유는 시기적으로 일치해서겠지? 당시에는 정신병에 대한 임상 연구가 지금만큼 심도 깊게 진행되지 않았을 때니, 헷갈릴만한 것 같다. 따뜻한 색채로 재치 있는 고양이가 등장하던 화풍이 동시점에 뾰족하고 기괴해 보이는 패턴이 삽입된 화풍으로 변모했으니 말이다.


사실 전시회 평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일절 기대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10점 만점에 6점 정도였다. 가볍게 보기에 나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주제가 '고양이'이기 때문에 전시 작품은 당연히 좋았다. 고영이즈뭔들! 그런데 주변 환경 통제가 되지 않아서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산만함이 감상을 해치는 정도였으므로, 이 부분 때문에 다시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음… 으으음…'이 될 것 같다. 조금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내 키가 크지는 않지만, 나의 눈높이에 작품이 맞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기에는 그림이 좀 높게 위치하지 않았을까 싶다. 차라리 엄청 큰 그림이라면 모를까, 그림의 사이즈는 엽서부터 시작해서 A3 이상을 넘지 않았기에 '고양이'라는 귀여운 주제와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전시는 아니었다.


이번 전시는 친구나 혼자 감상하는 것이 아닌, 문토라는 어플을 통해 모집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관람이었다는 것이 조금 특별한 부분이었다. 환묘 카페나 카톡방에서 활동하면서도 느꼈던 건데, 내가 이미 속해있는 고만고만한 집단이 아니라 뜬금없는 계기를 통해 랜덤하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매우 색다르다. 내가 갖고 있던, 개인 혹은 집단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틀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흥미롭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성공적인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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