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에세이] <모네 인사이드>를 다녀와서

찰나의 빛에 영원을 담다 @그라운드시소 명동

by 채유

화가 클로드 모네가 뇌리에 박힌 것은 故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의 <수련이 있는 연못> 앞이었다. 학생 시절 미술 교과서를 통해 접한 것이 아닌, 순수한 의미로 모네의 그림이 시선과 마음에 와닿은 순간이었다.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의 <모네 인사이드> 전시 소식을 듣자마자 설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한 것은 모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의 관심 분야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는 알고리즘은 종종 <모네 인사이드> 관람객 후기를 보여주곤 했는데, 이렇게 파편적인 장면들을 짜깁기해 막연히 상상했던 전시는 생각과 매우 달랐다. '미디어아트'라고 했기에, 원화가 아닌 큰 사이즈의 영상물로 제작된 디스플레이 혹은 프로젝터 영상물이 곳곳에 있고 그 앞에서 감상하거나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입장하자마자 마주하게 된 장면은 엄청난 크기의 사방으로 둘러싼 벽과 바닥으로 이루어진 스크린과 여기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흡사 CGV IMAX를 면이 아닌 공간으로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바닥을 포함해 좌/우/앞/뒤 모두 5면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대부분 모네의 작품을 위주로 전개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앉아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거대한 크기의 작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적절한 장면에 활용한 음악도 인상 깊었다. 필요에 따라 내레이션이 음성으로 제공되기도 하고, 자막만 제공되기도 했는데 그 섬세함이 마치 비행기의 이착륙처럼 신중한 시도와 고려를 거듭한 결과로써 전달된다고 느꼈다.


영상은 총 50분 동안 상영되는데, 그중 35분은 본 영상이, 나머지 15여 분간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는 시점에 이동과 촬영이 가능한데, 이쯤 돼서야 '아, 내가 봤던 후기들이 이 장면들이구나!'를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본 영상은 아트 딜러인 폴 뒤랑 뤼엘의 관점에서 진행되어 신선하다고 느껴졌다. 제삼자가 등장해서 서술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니라, 주인공 모네와 그의 작품에 직접 연관된 인물이 '엄청 유명한 내 친구 이야기를 들려줄게'라고 편하게 말하는 듯한 내레이션이어서 청자 입장에서도 몰입하기 쉬웠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초장에서 언급된 모네의 무명 생활은 굉장히 낯설었다. 예술가는 정말 고달프고 배고픈 직업이구나… 그리고 성공을 위해선 열악한 환경에서도 샘솟는 열정과 독자적인 창조성도 필요하구나… 라는 게 주된 감상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줄거리를 통해 접한 모네의 작품에서는 어떤 그림이든 자연/물/빛/색채/시간에 대해 고뇌하고 탐구하며 일생을 바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빛이 닿는 한 그저 존재하는 색채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그의 예술적 영감으로 삼았으며 추종과 집착을 하게 된 매력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캔버스에 자신의 감상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에게 뮤즈는 하늘과 고양이인데, 창작이든 모방이든 머릿속에서 꺼낸 것을 표현하는 능력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아트 딜러이자 친구인 화자의 입장에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그림의 가격이 언급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림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독점과 희소성, 역사적 배경 혹은 사회적 분위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것 등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시간에 따른 빛과 색채 변화를 관찰하고 표현한 만큼 모네의 그림들은 밝고 따뜻하며 생동감 있는 색감이 특징적이지만, 사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가 사랑한 아내 카미유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과 그 배경 그림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였다. 글귀는 죽은 카미유의 곁에서 얼굴색의 변화를 목격하고 그리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회고하며 친구에게 쓴 편지의 일부였다. 나의 첫째 고양이 길남이가 스무 살 묘생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무심코 호흡과 맥박을 체크했던 나 자신이 연상되며 동질감이 들었다. 약 5년간 신부전/갑상샘항진증/췌장염을 앓고 마지막 6개월 동안에는 방광암 투병도 했던 길남이의 바이탈 사인을 수시로 체크하던 습관이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발현되었던 것이다. 꺼져가던 숨과 심장 박동, 흉부의 유동을 관찰에 가깝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들으면서 머릿속에 무형의 글자를 기록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모네의 일생과 작품들을 현란한 미디어아트로 담아 마치 부피를 느끼는 듯한 감각이면서 요철 없는 3D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친절한 내레이션과 영상에 어울리는 선율이 특히 돋보였던 것 같다. 시각/청각/촉각이 만족스러웠던 <모네 인사이드>! 다음 그라운드시소에서의 전시는 후각도 충족할 수 있는, 또 다른 멋지고 흥미로운 미디어아트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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