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을 다녀와서
멈추어라, 순간이여!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멈추어라, 순간이여!>만큼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림에 빠져들었던 전시가 있었을까 싶다. 전시된 120여 점의 원화는 앙드레 브라질리에 거의 전 생에 걸쳐 작업한 이력을 담고 있었다. 화가가 삶의 아름다움, 인생의 행복을 담고 싶다는 일념을 가지고 캔버스에 생생하게 펼쳐 놓은 순수를 만끽한 기분이었다.
사실 브로슈어에 인쇄된 대표작이 따뜻한 색채와 뭉개진 윤곽의 화풍이었기에, 전시 도입부에 작가를 소개하며 기재한 '순진한 낭만주의를 넘어선 죽음에 맞서는 삶의 전투'라는 문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초대형 작품을 포함한 정말 많은 완성작들, 70년의 세월과 90세가 넘은 노년에도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열정, 그림에 새겨진 붓의 궤적과 겹겹이 쌓인 물감의 자취를 눈에 새기며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브로슈어에는 3개의 섹션, Masterpiece/Healing/Love로 제시되어 있으나 개인적으로 기록한 전시 구획은 조금 달랐다. 인트로/축제로의 초대/풍경이 말을 걸었다/그녀/삶의 찬가, 총 다섯 구획으로 구분 지었다. 가장 감상에 시간을 쏟은 구간은 '풍경이 말을 걸었다'였고, 시간을 더 쓰고 싶었던 구간은 '삶의 찬가'였다.
먼저 인트로에서는 작가가 살아온 길과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정리되어 있었다. '스케치북은 나의 피아노'라는 문장이 눈에 띄고, 뮤지컬 무대 커튼처럼 묵직한 붉은 천으로 장식된 다음 장소로 이어지는 문 너머로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귀에 꽂혔다. 이 둘이 어우러져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음악과 미술에 모두 통달한 예술가인가 보군, 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첫 번째, '축제로의 초대'에서는 피아노/오케스트라/바이올린 등 '음악'과, 곡예사의 경이로운 움직임을 관람할 수 있는 '서커스', 인체의 선이 리듬에 맞춰 우아해지는 탱고와 같은 '춤'이 주제가 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 공간에 흐르는 클래식 때문인지, 그림 속 악기의 음색이나 연주하는 음악의 울림과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넓은 무대와 작은 악기/사람이 대조되는 형태에서 다채로움을 느끼고, 그림의 여백은 오선지의 쉼표가, 촘촘한 패턴은 오선지의 음표가 연상 됐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음악' 작품들은 버건디, '서커스/춤' 작품에는 군청색 배경이 깔려서 작품의 주제와 어우러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풍경이 말을 걸었다'에서는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치는 '말', 조화로움을 담은 '숲', 여유로운 '바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달' 등이 모티프인 작품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품 아래, 전시장 바닥에 깔린 마른 나무껍질이었는데, 흰 배경색과 갈색 자연물의 조화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마 행렬이나 기수들을 담은 작품에서는 속도감과 말발굽 소리가 느껴지는 듯한 리듬감도 느껴졌다. 전시 중간에 있던 작가 인터뷰 영상에서 "자연은 매우 다채로우므로 표현에도 변주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는데, 그래서인지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어도 결고 심심하지 않았다. 자연 자체가 주는 평안함과, 섬세하고 변칙적인 붓 터치, 구체적인 듯 간결한 표현, 파스텔 톤의 색감이 눈으로 반복해서 훑어도 매번 새로운 충만감을 선사했다.
세 번째, '그녀'에서는 브라질리에의 뮤즈인 아내 샹탈의 그림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의 인생과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이기에, 흔히 사랑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분홍색 컬러의 그라데이션으로 배경이 꾸며져 있었다. 물론 샹탈의 사랑스러움은 앙드레 브라질리에만의 몫이었으므로 꽤 빠르게 감상한 구간이었다.
마지막 '삶의 찬가'에서는 어두운 배경색, 곳곳에 위치한 기둥과 앞선 전시작을 총망라한 작품 배치로 인해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일대기를 회화로 구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둥 사이를 지나며 주변을 둘러보니, 앞/뒤/양 옆 모두 브라질리에의 전시 작품으로 꽉 차있었다. 마치 메타버스 3D 전시 공간을 직접 발로 딛는 기분이었다. 유난히 환희라는 단어가 와닿았는데, 브라질리에가 기록하고 싶었던 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모아 놓으니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추상, 멀리서 보면 구상. 앙드레 브라질리에 회화의 대부분은 이 문장과 너무나도 걸맞는다. 특히 자연물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에서 와닿는 표현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흐르듯 그은 선과 흩뿌린 점은 가까이서 보았을 땐 그저 그 위치에 얼룩지거나 긁힌 형태인데, 멀리서 보면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악기의 선율을 표현함으로써 작품의 화룡점정이 되었다.
덧붙여, 전시회를 기획하고 성공적인 관람을 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전시였다. 운이 좋게도 주말 도슨트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었다. 도슨트의 상세한 설명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전시 기획을 200% 누릴 수 있게 해 준 기회였다. 삶의 기쁨/행복/아름다움이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의 작품 주제라면, 도슨트로 인해 열정과 열의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으로 하여금 풍성한 2023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