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기다려

너와 내가 했던 유일한 약속

by 나식언

너는 잠에 들어 있다. 너는 어젯밤 내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너의 ‘포포 잘 자’ 피곤이 묻어나는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너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내가 이 집에 처음 오던 날,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불러주던 이름 모를 자장가처럼 그 말은 나를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넌 어제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잠을 설쳤다.


네 머리맡에 놓인 시끄러운 기계에서 음악이 나오지 않는 날이 너의 쉬는 날이다. 나는 절뚝이는 다리로 네가 놓아준 계단을 타고 너의 다리 밑에 눕는다. 너는 아주 피곤했는지 뒤척이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가 너의 얼굴을 핥아줄까 하다 참는다. 네모난 기계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세 번 반복됐음에도 일어나지 않으면 난 너의 볼을 살짝 핥았다. 그럼 너는 금세 일어나 포포 고마워, 그렇게 말하곤 이곳을 떠났다.


네가 다시 오기엔 한참이 걸렸지만 괜찮았다. 너는 어차피 내게 돌아올 것이니까. 내가 길에서 3년, 여기에서 13년을 사는 동안 너는 포포라는 나의 이름 대신 ‘내 우주’ 라고 부르곤 했다.

내우주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지만 그 말을 할 때 너의 눈은 아주 커다란 사랑을 담고 있었다. 그건 포포보다 훨씬 좋은 말이구나, 느낌으로 알았다. 나는 너의 ‘내우주’라는 단어가 들리면 자연스레 너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주곤 했다. 그리곤 너의 반짝이는 눈과 너도 모르게 짓는 약간의 바보 같은, 하지만 귀여운 표정을 따라 해 보았다. 그러면 너는 나를 ‘황금 꼬리’라고 부르며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여주었다.


너는 요새 많이 피곤해했다. 내우주는 커녕 포포라고도 잘 불러주지 않았다. 네가 긴 여행을 끝내고 들어와 반겨주는 나의 머리를 두어 번 대충 쓰다듬고는 긴 한숨을 내쉬며 쇼파에 힘없이 걸터앉아 공허한 눈빛을 하며 실체 없는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와 같은 곳을 보고 싶었지만 네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나는 잘 몰랐다.


나는 너와 두어 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엎드려있곤 했다. 너는 요즘 슬퍼보였다. 그러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의 물그릇을 꼼꼼히 닦아 물 마셔야지, 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너를 위해 몇 번 물을 삼켜주었다.


요즘 너는 자주 울곤 했다. 울다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인진 모르겠으나, 넌 울다라는 단어를 내게 쓰곤 했다. 네가 무언가 먹을 때, 너의 것을 조금 떼어주길 바랄 때, ‘포포 왜 울어’라는 말을 하며 조심히 내 눈가를 닦아주었으니까. 너의 눈에선 셀 수 없는 방울이 새어 나왔다. 해석하지 못하는 날아가는 단어와 문장들도 함께. 속으로 네게 물었다. ‘왜 울어’ 네가 울 때면 다가가 눈물을 조심히 핥아주곤 했다. 그럼 너는 나를 꽉 껴안곤 큰 소리로 더 울었다. 그러면 너를 핥아주는 걸 멈추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너의 위 어깨에 가만히 내 턱을 기대었다.


너와 내가 사는 이 집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너와 나 둘뿐이었다. 너는 말이 별로 없었고 나도 너를 따라 잘 말하지 않았다. 이 집은 항상 고요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의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뛰는 게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다. 걸을 때마다 따끔하고 찌릿한 통증이 무릎에 느껴진다. 가끔 내가 쥐가 난 듯 다리를 절뚝거리면, 너는 나를 안고선 부드럽게 나의 온몸을 주물러주었다. 너는 내게 말을 걸 때 혀짧은 소리를 곧잘 내었다. 여기가 아파쏘? 이렇게, 무릎이 쑤시고 아리더라도 난 그런 시간이 정말 좋았다.


너는 언젠가부터 길쭉한 형태의 통 안에서 무언가 꺼내먹었다. 그 모습을 내가 가만히 올려보면 너는 이건 약이야, 넌 못 먹어.라고 말했다. 약이 뭔진 모르겠으나 넌 그걸 먹으면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포포 잘 자 하며, 나는 졸리지 않았음에도 새근새근 잠에 든 너의 옆에 누워 자세를 바꿔 뒹굴거리곤 했다.


가끔 밖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표현하자면 쿠르릉, 쿵쿵 이런 소리였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난 너의 작은 책상 밑에 들어갔다. 그러면 너는 나를 조심히 끌어당겨 품에 날 껴안곤 괜찮아, 괜찮아, 말하며 가볍게 나를 두드리곤 했다. 그런 네가 좋아서 더 이상 그 소리가 두렵지 않음에도 반갑게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그럼 너는 변함없이 날 안고 일정한 속도로 내 옆구리를 토닥토닥 두들겨주었다.


넌 가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들이밀며 앉아, 손, 그런 걸 시켰다. 사실 내 손을 만지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끔 너에게 내 손을 건네주면 넌 내가 좋아하는 사랑의 표정을 짓곤 내 입에 간식을 잘라 넣어주었다. 사실 난 간식보다 네 특유의 일그러진 미소를 좋아했다.


너는 날 자주 병원이라는 곳에 데려갔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너와 떨어지는 게 싫었다. 너의 손길과는 다르게 그 사람들은 나를 거칠게 잡아 두었다. 따끔한 무언가로 찌르고, 내 손을 덥석 잡아 시끄러운 기계를 내 손과 엉덩이에 가져다 대곤 했다. 처음엔 네가 너무, 당장, 보고 싶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네가 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당연했기에 덤덤히 받아들이곤 했다.

그럼 너는 나를 안고 집에 들어와 평소에 잘 주지 않는 간식들을 많이 주었다. ‘미안해’ 라고 말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요즘 너는 내게 자주 ‘미안해’라고 말했다. 왜 미안했을까?


몇 시간째 너의 까맣고 긴 속눈썹을 쳐다보고 있다. 너는 언제쯤 깨어날까? 너의 큰 눈망울을 보고싶은데.


하루에 한 번 너는 내 몸을 감싸는 줄을 잇곤 산책을 나갔다. 나는 그 한 시간 남짓을 좋아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집에서와 달리 나는 펄쩍펄쩍 뛰는 것을 좋아했다. 나와 같이 줄을 매고 걸어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막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너는 ‘기다려’라고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을 잘 들었다.


너의 ‘기다려’는 다양했다. 이해할 수 없이 기다려 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나의 기분을 주체 못할 때 ‘기다려’라고 하기도 했다. 그 말은 마법처럼 나를 꽉 잡아두는 문장이었다. 그럼 너는 잘했어 내우주, 하고 내 머리부터 꼬리까지 가볍게 쓰다듬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깐 너의 기다려라는 말이 그냥 좋았다.


지금 너의 표정은 편안하기도,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어제 많이 울어서 그런 걸까. 밥 기계에서 밥이 나와 조금 먹었다. 이 시간까지 자는 날은 드물었는데, 그래도 너는 내 옆에 있으니 괜찮다. 다시 계단을 천천히 올라와 네 베개 옆에 같이 누웠다. 오늘따라 모든 소리가 크게 울린다. 우웅-하는 소리, 째깍째깍 소리, 난 잠이 오지 않지만 너의 잠을 방해하기 싫어 가만히 있는다. 킁킁거리며 너의 체취를 맡는다.


너는 편안해 보인다. 아닌가,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떤 꿈을 꾸나, 나도 종종 나쁜 꿈을 꾸곤 했는데, 꿈에 결말을 본 적은 없다. 나쁜 꿈을 꿀 때마다 너는 내 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포포야. 포포야. 그럼 내 꿈에 나오는 나쁜 사람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나는 기지개를 켜며 너의 미소 띤 얼굴을 마주 보면 되었다.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너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목소리였다. 지금은 네가 악몽을 꾸는 것 같지는 않으니 너의 꿈이 끝날 때까지 아주 오래 너를 기다릴 수 있다. 내겐 네가 가져다준 길쭉한 검은색 고양이 귀를 가진 인형이 있으니까. 시간에 맞춰 나오는 밥이 있으니까, 어젯밤 유난히 많은 접시에 담아준 물이 한가득 있으니까. 네가 일어나면 포포 미안해, 심심했지. 말을 걸어줄 테니까.


너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더 어렸을 때, 네가 먹고 남은 보라색 동그라미를 하나 몰래 먹었을 때 너의 표정이 기억난다. 너는 아주 큰 소리로 내게 소리를 질렀다. 포포 이거 먹었어? 하며, 너는 꼬리를 내린 채 도망가는 날 잡아 내 입술을 들여다보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영문을 몰랐고, 너는 나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갔다. 그때의 너의 손길은 조금 거칠었다. 그게 뭐더라, 내 이름과 비슷한 무언가를 먹었다고 너는 의사에게 말했다. 그 순간 너는 사라졌고 여러 개의 손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내 입안에 이상한 것을 넣었고 나는 토했다. 무서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나는 크게 짖었다. 도와줘, 나 좀 구해줘하고. 내가 지쳐 뻗었을 때 그 사람들이 날 어느 투명한 벽 뒤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네 얼굴이 보였다. 어젯밤과 비슷한 아주아주 빨간 얼굴, 따끔따끔 아파 보이는 눈을 가진 너, 그 모습을 보면서 제때 구해주러 오지 않은 너를 용서했다. 너도 내가 보고 싶었구나. 나도였는데.


너는 오늘 항상 입던 푸른 빛이 도는 줄무늬 파자마 대신 빨간색 니트를 입었다. 왜일까? 너는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샤워를 하고 축축해진 손으로 내 코를 살짝 누르곤 줄무늬 파자마를 입었다. 색깔은 자주 달라졌지만 너는 파란색을 제일 자주 입었다. 그다음 윙윙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기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그 소리가 싫었는데, 너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푹 젖은 나를 그 기계 앞에 둘 때면 달아나고 싶었지만 날 향한 혀 짧은 소리와 몸 구석구석을 만져주는 너의 손길이 좋아 가만히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침내 멎으면‘내우주 엄청 착한 강아지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날은 좋아하는 간식을 자르지 않고 하나를 통째로 줘서 좋았다.


네 얼굴 위에 떠 있던 햇빛이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너의 틈으로 파고들면 넌 깜짝 놀랄까?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 바닥에 닿은 너의 한쪽 손의 냄새를 맡는다. 네가 먹던 약의 냄새와 옅은 살냄새가 섞여 난다. 하나, 둘, 셋, 넷....네가 떠 놓은 물그릇에 내려앉는 몇 개의 먼지를 본다. 너는 내 물에 조금이라도 먼지가 쌓이면 깨끗한 물로 갈아주곤 했는데, 오늘은 늦게까지 잘 작정을 했었는지 여러 개를 떠 놓았다.


네가 포포야 또는 내우주라고 부를 때 너를 돌아보면 네 작은 품을 활짝 열어 날 품에 가득 담았다. 너는 내게 사랑해라고 자주 말했다. 나는 사랑해의 뜻을 안다. 너의 표정을 보면 뜻을 모를 수가 없다.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너는 그 말을 하루에 열 번씩도 해주곤 했는데, 요즘은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속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날 보는 너의 눈빛은 그 말을 할 때와 똑같았으므로 들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밥이 나와 몇 개를 먹는다. 빛이 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너를 깨워야 할 것 같은데, 네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내려다본다. 너는 다음 해가 뜨면 다시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이렇게 깊게 잠에 들면 일어나지 못할 텐데, 끄응, 하며 작은 소리를 내본다. 너는 움직이지 않는다. 너는 항상 자기 전 주방에 불을 켜놓았다. 가끔은 침실의 불도 켜놓았다. ‘포포야 언니 무서워’하며, 하지만 오늘 이 방은 아주 껌껌하다. 주방의 불을 켜러 일어나야 할 텐데, 네가 무서워할 텐데. 나의 키는 저 스위치에 닿지 않는데.


까무룩 잠에 들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 새벽일 것이다. 네 머리맡에 기계가 곧 큰 소리를 낼 것이다. 너의 표정이 궁금하다. 하루 종일 잠에 빠진 걸 알까? 아주 당황스러운 얼굴로 ‘포포야 미안해, 심심했지’ 하겠지. 상상만 해도 웃기다. 이내 큰 소리가 들린다. 너는 곧 뒤척일 것이다. 나는 너의 반응이 궁금해 조금 신나는 기분으로 너의 얼굴 옆에 가만히 앉았다. 시끄러운 소리는 켜졌다 꺼졌다 반복됐는데, 내가 너를 핥아주는 기준은 소리가 세 번이 넘었을 때였다. 지금은 세 번째, 다음엔 너를 핥아서 깨워야겠다.


너의 얼굴을 천천히 핥으며 끄응, 끄응 하는 작은 소리로 너를 깨웠다. 하지만 넌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너는 이틀을 쉬긴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너의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내 진심은 네가 떠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너를 위하는 일은 아닌 걸 안다. 너의 얼굴이 차갑다, 너는 추워서 꽁꽁 웅크리고 있는 걸까, 네가 나를 이곳에 데려온 날처럼, 그러면 너의 체온을 올려야겠다. 너의 겨드랑이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내 체온을 너와 나눈다.


한참을 기다려도 넌 깨어나지 않았다. 기계도 지친 건지 더 이상 소음을 내지 않았다. 자리가 불편해 네 옆으로 나와 너와 얼굴 높이를 맞추었다. 네가 늦잠을 잔 후 눈을 떴을 때 너를 뚫어져라 보는 내 눈과 마주치면 흠칫 놀라고는 했다. 그 반응이 재밌었다. 바닥에 닿은 너의 한쪽 손에 내 머리를 살짝 비벼보았다. 그러면 넌 손가락만 스르륵 움직이며 내 복슬한 털을 살짝 만지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몸짓만 남아있었다.


밥 기계에선 또 밥이 나왔다. 어제 몇 알 먹지 않은 탓인지 좁은 밥그릇에서 몇 알이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몇 알을 먹는다. 입맛이 없었다. 먼지가 조금 내려앉은 물을 몇 번 마시고 넓지 않은 집을 한 바퀴 돌았다. 네가 오래 앉아 있던 회색 작은 소파에서 너의 냄새를 맡는다. 네가 여행을 떠날 때면 난 이곳에 오래 앉아 있곤 했다. 너의 향이 제일 많이 나는 곳이어서. 그다음은 네가 벗어놓은 하늘색 파자마를 찾았다. 포포야,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침실로 뛰어 들어가 보지만 너는 아직 미동이 없었다. 요즘 자주 너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반갑게 달려가면 ‘포포 왜?’ 너는 어리둥절하게 묻곤 했다. 또 잘못 들었구나.


네 몸이 조금 더 차가워짐을 느꼈다. 너의 옆구리에 내 온몸을 딱 붙였다. 그러면 너의 체온과 나의 체온이 함께 옮아가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너는 차가웠고 나는 미지근했다. 그래도 네가 춥지 않게 녹여줄 것이다. 네가 깨지 않는 이유는 추워서인 것 같다.


너의 날렵한 턱을 본다. 원래 너는 살집이 있는 통통한 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 잘 먹지 않은 탓인지 야위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 너의 이름이 뭐더라 매일 포포 아니면 내우주 라고 불렸지만 너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네가 가져다준 검은색 고양이 인형을 물고 머리맡에 둔다. 너는 이 인형을 좋아했다. 아니, 내가 이 인형을 물고 오는 걸 좋아했다. 너는 잠결에도 내가 인형을 물고 네게 다가오면 ‘또 이거야?’ 말하면서도 그 인형을 쥐고 잡아당겼다. 우린 그걸 ‘뺏기 놀이’라고 불렀다.


너의 냄새가 이상해짐을 느꼈다. 왜일까? 너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여기 없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네가 여행에서 돌아온 냄새도 아니고, 짧은 외출을 했을 때의 냄새와도 다르다. 네가 여기 ‘없는’ 냄새가 난다. 네 베개에 코를 가져다 대니 그제야 너의 냄새가 난다. 내 코도 조금 이상해졌구나,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넌 지금 내 옆에 있는데.


네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건 이상했다. 이렇게 오래 잠에 든 적은 13년 동안 없었는데, 어디 아픈 걸까? 너는 몸이 아프면 오래 누워있곤 했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잊은 적이 없다. 포포야, 포포야, 나지막이 나를 부르면 혼자 쉬고 있다가도 너에게 천천히 걸어가곤 했는데. 너는 내 이름을 어제부터 지금까지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이 고요가 낯설다. 네가 있는 고요가 낯설다.


너의 이름이 생각났다. 수정니, 수저엉니 둘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이 집에 온 첫날 네가 나를 폭 안곤 ‘나는 수정니야’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너의 이름은 부른 적이 없었다. 기억이 난 김에 네가 깨어나면 서툰 발음으로라도 불러줘야지, 네가 알아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너의 표정이 변한 것 같다. 꾹 다물었던 입술이 조금 열렸고 어딘가 너답지 않다. 곧 깨어나려고 하는 걸까? 조금 고통스러워 보였던 얼굴이 이젠 편안해 보인다. 너의 감정 없는 표정이 이렇게 오래간 적은 없는데. 이젠 정말 네가 아픈 건지 걱정된다. 네 입의 작은 틈에서 아무런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끄응, 끄응 너를 불러본다.


밥을 계속 먹지 않았더니 조금 어지럽다. 하지만 네 걱정에 간식도, 밥도 물도 떠오르지 않는다. 너는 추운 걸 극도로 싫어했다. 침대 밖으로 흘러내린 한 쪽의 팔을 이불 속으로 넣어주고 싶은데 역부족이다. 반대 팔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주려 니 손 밑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했으나 너는 힘을 주고 자는지 들어가지지가 않는다. 머리 위 기계에서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너는 그 소리가 들리면 여보세요 라고 말했다. 소리가 세 번을 울렸다. 띵-띵 거리는 소리도 열 번 정도가 났다. 네가 보고 싶어진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네가 좋아하지 않던 일을 한다. 컹 컹, 큰소리로 짖기. 너는 내가 큰 소리를 내면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쉿, 기다려, 라고 말했다. 기다려는 내가 좋아하는 말이므로 난 그만했다. 그럼 너는 착하다고 날 꼭 안거나 만져줬다. 컹 컹, 다섯 번을 짖었다. 잠 들어있는 너를 올려다보며 한 번 더 짖었다. 근데 이건 네가 싫어하는 건데, 짖기는 그만하기로 한다.


해가 한 번 더 움직였다. 너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벽으로 물러났다. 다시 해가 지고 있었다. 너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의 가슴에 검은색 고양이 인형을 올려놓았다. 인형은 아주 가만히, 이상할 만큼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끄응, 끼잉, 하며 네 존재를 불러도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잠에서 깬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너의 채도 낮은 목소리를 너무너무 듣고 싶다. 네 옆에 앉아 나는 한참을 서글프게 운다.


너의 얼굴을 본다. 너답지 않다. 낯설다. 늘 보던 얼굴인데, 이렇게 길게 너를 보니 내가 알던 네가 아닌 것 같다. 딱딱해진 너의 옆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긴 한숨을 내쉰다. 아무런 욕구가 들지 않는다. 그저 나는 너를 원할 뿐이다.


밥 기계가 한 번 더 밥을 쏟아냈지만 나는 가지 않는다. 네 옆에 있고 싶다. 너를 두고 어디도 가고 싶지 않다. 잠이 오는 걸까.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맡으며 너를 파고들어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너를 향해 옆으로 눕는다.


눈을 뜨면 네가 있고, 눈을 감아도 네가 있다.


너는 내게 많은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앉아, 손, 기다려 같은 평범한 몇 가지의 단어들이었다. 그 중 기다려라는 말은 처음엔 대문이 열려도 문밖으로 나가지 말란 소리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엔 빨강과 초록이 있는 곳에서 빨강일 때 더 걷지 말라는 뜻인 줄 알았다. 내가 물웅덩이를 흥분해 들어가려 하면 넌 웃으며 기다려라고 말했다. 난 웅덩이에 들어가지 말란 뜻인 줄 알고 발을 반쯤 들고 기다렸다.


네가 처음으로 나를 밖에 두고 어떤 가게로 들어갔을 때 넌 또 내게 기다려라고 말했다. 이번엔 무엇을 기다리라는 건지 나는 몰랐다. 네가 양손 가득 무언갈 들고 내게 ‘포포 잘했어, 잘 기다렸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기다려가 ‘돌아올게’라는 뜻임을 알았다.


너는 언제나 나를 두고 떠났다가 이내 돌아왔다. 네 냄새가 더 옅어진다. 나는 속으로 네게 기다려라고 말했다. 수정니 기다려. 그러면 너도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 기다려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나는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

기다려. 기다리면 너는 돌아왔다. 항상 돌아왔다. 그렇기에 난 아주 오래 기다릴 수 있다.

포포야, 내우주야, 네가 불러주던 소리가 아직 귀 안쪽에 남아있다. 그 소리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니까 아주 오래 나는 네 옆에 있을 것이다. 딱딱해진 너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감긴 너의 눈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기다려’



글 나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