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영 변호사 Jul 24. 2023

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일까?

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일까?


정말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아마도 좋은 변호사의 판단기준은 피고인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피고인은

변호사가 법률적 판단을 해서

피고인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면, 피고인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선처를 받도록 변론하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피고인은

피고인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도, 피고인의 주장대로 변론하는 변호사를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형사재판은 그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유죄가 인정되면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므로)

선고당일에 어떤 선고를 받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억울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 피고인의 주장대로 변론한다면,


1) 피고인은 재판하는 동안 피고인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으니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2) 재판부 입장에서 피고인의 억울하다는 주장을 오히려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피고인은 그 주장의 대가를 선고날 결과로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형사재판에서 판단의 주체는

피고인도 아니고, 변호인도 아니다.

판단은 결국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하는 것이다.


피고인의 억울하다는 주장이

1)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경우라면 피고인의 주장대로 변론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2)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오히려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보일 가능성이 높은 주장이라면, 피고인의 주장 그대로 변론하는 것이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형사변호인은 피고인들을 변론할 때 항상 위와 같은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피고인의 주장대로 변론해야 할까?
피고인을 설득해야 할까?

어떤 변론이 피고인을 위한 변론일까?



필자 역시 수천 건의 형사사건을 변호하면서,

과연 어떤 변론이 피고인을 위한 변론일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었다.


필자가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의 경험이다.

필자는 항소심 사건 중 일명 뺑소니 사고라 불리는 특가법상 도주차량위반죄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항소한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어 구치소로 접견을 가게 되었다.


그 피고인은 도주의 범의가 없음을 다퉜기에 1심에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지만 결국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구속된 피고인이었다.


1심에서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다가 유죄가 선고되어 법정구속되었지만, 그 피고인은 구치소에서도 필자에게

“도주의 범의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그 피고인 사건의 경우 1심에서 "도주의 범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는 경우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보다 더 드문 것이 현실이다.

심정적으로는 "도주의 범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피고인을 이해하지만,

소송기술적으로는 사정변경 없이 1심과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고 해서 항소심에서 결과가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피고인은 필자에게 말했다.

1심 변호사도
’이게 어떻게 뺑소니냐’고 말했어요.

변호사가 봐도 뺑소니가 아니라는데
왜 유죄가 선고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1심 변호사를 항소심에서도 사선변호인으로 선임할 것이라고 했다.

피고인이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것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필지는 그때 그 피고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할 수는 없었다.


“그 변호사님은, 판단을 하는 판사님이 아닙니다”


판단은 ‘재판부’에서 법리에 따라 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변호사가 피고인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무죄라고 주장한다고 무죄가 선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억울함이 법리상 받아들여지는 억울함이어야 무죄가 선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억울함이 법리상 받아들여질지 여부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한 사건도 존재함에 반해,

증인 신문을 하고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는 등으로

재판에 들어가봐야 비로소 판단이 가능한 사건도 존재하므로,

변호사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모든 사건에 대해 법률적 판단을 정확히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형사법정에 있는 판사, 검사, 변호인, 피고인 중에서

사건의 실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사건을 직접 경험한 피고인일 것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법률적으로 조력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선택하고 그에 대한 형사처벌을 받을 책임의 주체는 결국 피고인이다.


형사재판에서 선택과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결국 피고인이기에,

변호인의 판단으로는 피고인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피고인을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선고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대로 변론해 주기를 강력하게 원한다면, 변호인은 피고인 주장대로 변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변호인은 i) 안전하게 재판받는 방법과 ii) 피고인의 주장대로 변론했을 경우 선고받을 형량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피고인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변론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행유예기간 중의 범행으로 재판을 받는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