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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Nov 17. 2023

교통사고 피해자의 늑골골절 등 상해의 원인은?

무죄가 나오는 사건들은 공소사실을 읽으면서부터

 '뭔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한 부분이 ‘정말 이상한데’가 아니라,


보통은 그러지 않았을 텐데 ’ 약간‘ 이상한데

라는 부분들이었다.


정말 이상하다면 기소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약간 이상하니까, 이상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정도니까 기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상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그 이상한 지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지점을 시작으로 파고드는 것이 무죄의 실마리가 되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도 '이상한 지점들'을 놓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었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피고인은 ~차량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자이다.

피고인은 ~년~월~일 22:12경 위 차량을 운전하여 ~교차로를 ~ 방면에서 ~ 방향으로 편도 5차로 중 1차로를 따라 불상의 속도로 진행하다가 좌회전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신호등이 설치된 교차로가 있었으므로 자동차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필고 신호에 따라 안전하게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를 게을리한 채 신호를 위반하여 좌회전한 과실로 신호에 따라 ~ 방면에서 ~ 방향으로 좌회전하던 피해자 A가 운전하는 ~ 차량 우측 중앙 부분을 피고인이 운전하는 차량 전면 부분으로 충격하였다.

결국 피고인은 위와 같은 업무상의 과실로 피해자 A에게 약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두 개의 늑골을 침범한 다발골절 등의 상해를, 피고인의 차량에 탑승한 피해자 B(피고인의 남편)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편타성손상의 상해를 각 입게 하였다.



피고인은 적극적이고 씩씩한 50대 여자분이셨다.


피고인은 필자에게

“변호사님,
피해자 A의 상해가 교통사고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형외과 의사한테 다 확인해 봤어요!.
그리고 남편은 경찰서에서 전화해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으면 유리하다고 해서 제출한 건데 사실 상해진단서만 발급받고 치료받은 사실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피고인이 한 말에 모든 쟁점이 들어 있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상대차량의 운전자 피해자 A에게 발생한 4주간의 상해가 본건 교통사고로 발생한 것인지,

둘째, 피고인 차량 조수석에 탑승했던 남편에게 상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이다.



통상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죄로 기소하는 경우,

상대차량의 운전자나 조수석에 탑승한 사람이 아닌, 피고인 차량 조수석에 탑승한 사람이 상해를 입었다고 피고인을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본 사건은 피고인 차량 조수석에 탑승했던 피고인의 남편을 피해자로 기재하여 피고인을 기소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피고인 차량 조수석에 탑승한 피해자 B가 상해진단서를 제출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본건 교통사고 발생 이후 본건 사고에 대한 실황조사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담당경찰관이 피고인과 피해자 B(피고인과 피해자 B는 부부관계이다)에게 수회에 걸쳐 전화하여 "진단서 제출이 유리하다"는 취지로 말하였기에, 피고인과 피해자 B는 병원에 방문하여 간단한 문진으로 2주의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다(병원에 방문하여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2주의 상해진단서를 발급해 주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피고인과 피해자 B는 위 상해진단서들이 상대차량 운전자와의 관계에서 사용된다고 생각하고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을 텐데, 오히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에 피고인의 남편이 피해자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피고인의 남편은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을 것이다.)

피고인은, "남편(피해자 B)은 실제로 위 진단서 발급일에 단 1회 병원을 방문한 사실 이외에는 약을 복용하거나 치료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이 바로 회사에 출근했다"면서, "남편이 상해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다.


​필자는 의견서에 위와 같은 내용을 기재하고, 상해진단서를 발급해 준 병원으로부터 ' 피고인의 남편이 약을 복용하거나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고 회복되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받아 증거로 제출하였다.

검사는 피해자 B에 대한 상해의 공소사실을 삭제해 주셨다.



이젠 피해자 A에게 발생한 상해가 본건 교통사고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를 밝히는 문제(A에게 발생한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두 개의 늑골을 침범한 다발골절 등의 상해와 공소사실 기재 교통사고와의 인과관계 부인)가 남았다.​


피고인에 따르면, 교통사고발생당시 아무런 인적 피해가 없음을 손해보험사 직원(피고인과 피해자의 보험회사가 동일했다)이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확인하였고

피해자 A가 직접 사고차량을 운전하여 경찰서까지 이동하였으며,

사건당일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할 당시에도 위 A는 인적피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피고인이 경찰서에 방문해 피의자조사를 받고 약 3주 후에 갑자기 담당경찰관이 전화하여 “추가로 할 말이 있으면 적어주겠다”라고 하여서 피고인이 “조사받았으니 추가로 할 말이 없다”라고 하였더니 “상대방이 갈비 2대가 부러졌다고 하는데 내 마음대로 써도 되냐”라고 하면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피고인이 즉시 보험회사로 전화해 알아본 결과, A가 피고인을 상대로 대인피해 접수를 하지 않고 자차로 대인피해 접수를 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했다.


통상 교통사고로 인해 상해를 입으면, 상대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대인피해 접수를 하는데, A는 피고인을 상대로 대인피해 접수를 하지 않고 자차로 대인피해 접수를 한 것이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자차로 대인피해 접수를 한 것은 '이상한 지점,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왜 A는 자차로 대인피해 접수를 했을까?

A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한방병원에서 한방부인과 전문의로부터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고,


위 한방병원에서 X-Ray 촬영을 해서 그 CD를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피고인은 검찰청으로 찾아가 위 CD를 USB에 저장하여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위 X-Ray 사진에 대한 판독을 의뢰하였다.

정형외과 전문의는

3. 12. X-Ray 상 좌측 제7,8 늑골골절 소견이 보이며, 골절 주변으로 가골형성(callus)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보여, 골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외상은 수 주 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사료되고

라고 판독하였다.


본건 사고 발생일시는 3. 9. 22:12이고, 위 X-Ray 촬영일자는 3. 12. 로서 불과 3일 전인 바, 위 X-Ray 사진 상의 늑골골절이 과연 3. 9. 22:12경에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본 사건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하고 있었고,


단지 A의 상해와 본건 교통사고 간의 인과관계만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재판으로 밝혀야 할 것은 상해가 본건 교통사고로 발생하였는지, 다른 원인으로 이미 상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였다. 상해의 원인은 A에 대한 X-ray 영상과 이에 대한 전문의의 판독결과로 밝힐 문제였다.

굳이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 부동의하여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할 이유가 없었다(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면, 본건 교통사고로 상해가 발생했다고 증언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서는 증거로 함에 동의하고 입증취지만을 부인했고,


A의 상해진단서와 X-ray CD 영상, 이에 대한 의견 부분에 대해서만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여,

전문심리위원이나 감정신청 등 전문의의 판독결과로 상해의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 변론 방향을 잡아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판부에서는 감정신청을 제안했고 법원에서 지정하는 병원의 영상의학과 전문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판독 결과를 받았다.

가. 위 각 X-Ray에 관한 전체적인 판독의견


3월 12일 영상에서는 골절 주변으로 희미하지만 부골 형성이 관찰되며 4월 6일 영상에서는 부골 형성이 진행된 양상을 보입니다.


요추부 단순촬영에서는 약간의 퇴행성 변화 외에 이상 소견 없으면 골반 촬영에서도 특이사항 없습니다.


=> 한의사가 발행한 상해진단서에는 부상병으로 요추 및 골반의 기타 및 상세불명 부분의 염좌 및 긴장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 소견에는 요추부와 골반에 특이사항이 없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나. 위 X-ray로 추정되는 골절발생 시점


골절의 치유 과정에 따른 시점은 나이, 성별, 영양상태, 전신질환, 활동정도 등 다양한 인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추정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린이의 경우 일반적으로 빠르면 7일 정도부터 부골 형성이 X-ray 상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른은 어린이에 비해 더 느리게 부골 형성이 진행되므로 3월 12일 영상은 발생시점 이후 적어도 7일 이후에 촬영된 사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정형외과 전문의는 골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외상은 수주 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하였으며,


법원에서 지정한 전문의인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보수적으로 기재하였으나 보수적인 기준에 의하여도 3월 12일 영상이 발생시점 이후 적어도 7일 이후에 촬영된 사진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본건은 3월 9일 22:12경 발생하였는 바, 정형외과 전문의의 판독소견과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소견에 비추어 판단하였을 때, A의 골절은 본건 사고 이전에 발생하였음이 증명되었다 할 것이다.



다. 위와 같이 골절 발생 시점을 추정한 근거


위에서 답변드렸듯이 골절 치유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고 많은 인자들이 관여하여 구체적인 시점을 추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뼈의 성장이 빠른 어린이의 경우 평균적인 데이터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골절의 치유과정은 점점 느리게 진행된다고 봅니다.

위와 같은 판독결과로 인해 공소사실에 기재된 A의 상해가 본건 교통사고 이전의 원인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자, 검사는 A를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A가 본건 교통사고 전에 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에서 진료받은 내역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명령을 신청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하였다.


이에 필자는

A가 본건 교통사고 이전에 늑골골절이 발생했더라도 병원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으므로,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제출명령 신청이 의미가 없다. A가 정형외과에서 진료받은 기록이 없다고
본건 교통사고 이전에 늑골골절이 발생하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과 증거를 검토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검사의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청과 제출명령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했고, 예상대로 피해자는 "본건 교통사고 이전에 늑골골절이 발생한 일이 없고, 본건 늑골골절은 본건 교통사고로 발생한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A가 본건 이전에 정형외과, 외과, 흉부외과 등에서 진료받은 기록은 없다고 회신을 했다.



A의 증언과 건강보험공단의 회신결과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이 보였고,

전문의들의 X-ray 판독결과는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했다.



7월에 필자가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본 사건은

10월에서야 선고를 했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위 선고에 대하여 검사가 항소했지만,

검사 항소 기각으로 무죄로 최종 확정되었다.




교통사고로 상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흔한 경우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상해가 교통사고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였음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본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주된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이상한 지점들'을 발견한 것.​


본건의 경우, 통상의 교통사고와 다른 '이상한 지점들'이 발견되었고,

그 이상한 지점들을 놓치지 않고 파헤치면서 무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상한 지점'은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봐야 알아챌 수 있었다.



변론하는 사건에서
원하는 결과를 받기 위한 출발점은,
그 사건에 관심을 갖고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둘째, 전문의의 판독결과로 상해의 원인을 밝힌 것


위 사건에서의 쟁점은 A의 상해와 본건 교통사고와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이다.

말로써는 거짓을 말하기 쉽지만, 행동이나 객관적 증거는 말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이 어렵다.

본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만 했다면, 피해자는 당연히  

“본건 교통사고 이전에 늑골골절이 발생한 일이 없고, 본건 늑골골절은 본건 교통사고로 발생한 것이다"라고 증언할 것이기에, 상해가 교통사고 발생 이전에 발생한 사실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문의의 판독결과가 재판부로 하여금

‘A의 상해가 본건 교통사고 이전에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였음을 배제할 수 없다"

는 판단을 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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