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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Jan 17. 2024

어쩌면 변론은 피고인을 설득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던 70대 피고인에 대한 기억

필자는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변론하면서,

어쩌면 변론은 피고인을 설득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피고인과 접견을 하고 증거 등을 검토한 후,     

1) 피고인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무죄로 변론방향을 설정하고,

2) 피해자의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므로 공소사실 인정으로 피고인을 설득한다.

(증거에 비추어 공소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사건인데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판단하므로 피고인의 형량이 무거워진다. 피고인은 무죄 주장의 대가를 선고당일 결과로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따라서, 증거에 비추어 공소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사건이라면, 피고인을 설득해서라도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다.)     


물론 재판 시작 전에 설득되는 피고인도 있고, 설득이 안 되는 피고인도 있었다.

사실 설득이 안 되는 피고인들이 더 많았다.


그 형사재판에서 선택과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피고인이지 변호인이 아니다.

따라서, 변호인으로서는 당사자인 피고인의 의사에 반하여 끝까지 피고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재판 시작 전에 설득이 안 되는 피고인의 경우,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변론을 진행했다.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건당시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못해서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나이가 많거나 정신적 연령이 낮은 등의 신체적 정신적 이유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무죄를 주장하다가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친 후에야 공소사실을 인정했던 피고인들 중에, 70대로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던 피고인이 계셨다.


그 피고인은 광화문에서 집회를 한 70대 의사분이었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다.

2018년경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셨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광화문 집회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집회 참가자 중 한 명이 경찰을 피해 대치선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경찰이 나가려는 참가자를 붙잡고 있자, 피고인이 그 참가자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찰을 붙잡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


피고인은 경찰의 공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인 경찰에 대한 진술조서에는 '도망간 집회 참가자가 경찰에게 물을 뿌리는 등의 위법 행위를 해서 그 참가자를 붙잡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경찰을 붙잡고 폭행해서 그 참가자를 도망갈 수 있게 해 주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필자가 위 내용을 피고인에게 설명해 주었지만 피고인은

 “아무도 물을 뿌린 사람이 없다,
물을 뿌렸으면 내가 느꼈어야 하는데 나는 물을 맞은 적이 없다”

면서 경찰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셨다.


증거 중에 cctv 영상이 있었는데 뚜렷하진 않지만 물을 뿌린 것 같은 장면도 있었다.

필자가 위 내용도 설명해 드렸지만 피고인은 물을 뿌린 사람이 없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피해자인 경찰에 대해 증인신문을 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진술조서에 기재된 대로 도망간 참가자가 경찰에게 물을 뿌렸다면서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필자는 증인신문을 만 번 이상 진행했는 바, 사실 대부분의 증인신문 후에 드는 생각은 안타깝게도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었구나’라는 생각들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인 경찰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나니 ‘물을 뿌렸다’는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cctv 영상을 같이 확인하면서 물 뿌리는 장면을 확인시켜 주었다.     


필자는 cctv 영상까지 확인한 후에 판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법정 밖으로 피고인을 데리고 나가서

“지금이라도 공소사실을 인정하시죠”

라며 피고인을 설득했다.


물을 뿌린 사람이 없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던 70대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과 cctv 영상을 확인한 후에야 공소사실을 인정하셨다.     


변론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위 피고인의 사건처럼,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판단이 들어, 피고인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 하면,

어떤 피고인들은 재판 시작 전에 설득이 되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위 70대 피고인의 경우처럼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등의 이유로 피해자를 불러 증인신문을 한 후에야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피고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피고인들을 변론하다 보면,

변론하는 과정이 마치
피고인들을 설득하는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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