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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May 28. 2024

착한 마음을 가진 피고인과 피고인 모친에 대한 기억

피고인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피고인괴 대화를 나누다 보면 피고인에게 착한 심성이 있음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착한 심성을 가진 피고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자신보다 타인이 받을 피해가 없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착한 심성을 가진 피고인들의 사건은
더욱 자세히 살펴 실체진실을 밝혀야 했다.
누군가 그 착함을 이용하여
피고인이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착한 심성의 피고인을 변론할 때면 필자는 더 마음이 쓰여서 그 피고인이 착함으로 인해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게 변론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필자가 서울중앙지법 항소심에서 변론했었던 착한 심성을 가진 피고인이 기억난다.


피고인은 폭행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1심 재판부는 벌금 50 만원의 선고를 유예하였고,


검사는 위 판결에 대하여 “범행태양에 비추어 사안이 경하지 않고 죄질이 불량하며, 피해자의 신체적 및 정신적 충격이 적지 않고 피해자가 여전히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고 있다”는 이유로 범행내용 및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여야 한다며 항소하였다.


필자는

위 사건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위 사건은 누나가 남동생을 폭행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사건기록틀 모두 검토하고 피고인과 접견을 한 후 필자는,

오히려 본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피해자가 아니라 피고인과 모친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사건 무렵에는 피해자가 어머니에게 어떤 요구를 하던 시기였다. 아마도 피해자는 위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피고인의 모친에게 심한 폭언과 욕설을 한 것으로 보였다.


사건당일 피해자는 또다시 피고인과 모친이 사는 집으로 찾아와 차마 듣기 힘든 욕설과 폭언으로 피고인과 모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었다.


피고인은 어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피해자를 참을 수 없어

“그만 가라”라고 하였으나 피해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폭언과 욕설을 가하며 나가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던 것이었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어깨와 가슴 부분을 발로 차서 빨갛게 붓고 그 이후에는 멍이 들었으며 피고인의 목에도 긁힌 상처가 있었다.


피고인은 사건 이후 한 동안 저녁이면 가슴통증으로 인해 제대로 눕지도 못했다. 피고인의 모친은 피고인에게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피고인으로서는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부담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께서 속상하실까 봐 병원에 가지 않았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피고인을 폭행으로 고소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피해자는 본건에 대해 고소하지 않다가 사건 발생 후 20여 일이 지난 후에 또다시 피고인과 모친의 주거지에 찾아와 욕설과 폭언을 하자,  다른 입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들과 함께 낙성지구대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경찰관의 경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진술서를 작성하여 본건이 사건화 된 것이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범이고, 본건에 이르게 된 경위, 피고인 또한 피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하였고, 피해자가 입게 된 상처가 퇴거를 요구하는 몸싸움 과정에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발생하게 된 점,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변론에 나타난 양형조건을 참작하여 피고인에게 벌금 50만 원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다른 사정이 없으면, 1심 선고결과가 유지되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사의 항소는 기각될 확률이 컸다.


피고인으로서는 추가적인 합의 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나인 피해자가 필자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합의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고소한 폭행사건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었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무죄선고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피고인을 변호하고 있는 필자에게 전화해서 쌍방이 서로 합의를 하자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폭행죄에서 합의서를 제출하면 공소기각으로 재판이 종결되지만, 합의서 제출시기가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라는 제한이 있다.


법리적으로만 판단한다면,

피해자의 경우, 1심에서 폭행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에 합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공소기각으로 사건이 종결될 수 있으므로 합의가 의미가 있었지만,


피고인의 경우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선고유예에 대해 검사가 항소한 사건이었기에 항소심에서 굳이 합의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검사의 항소가 기각될 확률이 컸고,


합의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검사의 항소가 기각될 확률이 더 커질 뿐이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합의가 큰 의미는 없었다.)


필자는 피고인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뒤에 합의의사를 물었다.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합의가 꼭 필요한지 물었다.

필자는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다른 사정이 없으면, 1심 선고결과가 유지되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사의 항소는 기각될 확률이 크므로, 합의를 하면 안전하게 검사의 항소를 기각시킬 수 있고, 합의를 안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사의 항소가 기각될 확률이 크다”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피고인은

“제가 합의를 한다고 하면
변호사님 일이 더 많아지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


위 당시 필자의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기에 피고인은 필자가 합의를 진행하면, 필자의 일이 많아져서 필자가 힘들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위 피고인은 필자가 사건 관련 메일을 보내면,

답장 말미에 항상 “건강 회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시길 바라겠습니다.”등으로 필자의 건강을 바라는 말을 기재해주곤 했었다.


합의할지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면서도,
합의를 진행할 변호인인
필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역시 착한 심성을 가진 피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라.
변호인은 변호인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선택을 할 때 다른 사람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자신만 생각하고 선택하시라.

라고 조언해 주었다.


피고인은 합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검사의 항소는 기각되었다.


피해자인 피고인의 누나는 정식재판청구를 취하하였다.




또 다른 여러 사건들을 변론하느라 위 사건이 거의 잊힐 때쯤이었다. 필자가 사무실에서 다른 사건의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데, 직원이 내부전화로, 위 피고인의 모친께서 피고인 누나 사건으로 물어볼 내용이 았다면서 필자와의 통화를 원한다고 알려줬다.


피고인 누나 사건은 피고인 누나의 정식재판 취하로 종결되었고 필자가 변호하는 사건이 아니었는데, 사건 담당 변호사가 아닌 필자에게 전화를  하셔서 물어볼 내용이 있다고 하셔서 ‘무슨 일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필자는 피고인의 사건으로 피고인과는 여러 번 통화했지만, 피고인의 모친과는 처음 통화하는 것이었다.  

사건기록을 통해 피고인의 착한 심성이 피고인의 모친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힘드셨을 텐데도 착한 성품을 계속 유지하고 계신 모습이 훌륭하시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피고인의 모친은 피고인 누나 사건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셨고, 필자는 질문에 대해 답변드렸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쳐서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필자의 모친이

김혜영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피고인의 모친께서 필자의 이름을 알고 계셔서 감사했고,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라는 진심을 담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또 감사했다.


(필자에게 “복 벋으세요 변호사님”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피고인의 부모님들이셨다. 그분들이 말씀해 주시는 “복 받으세요”라는 말에는 항상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착한 심성의 피고인의 모친과 피고인은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착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착한 심성을 계속 갖고 살아가는 피고인의 모친과 피고인이 진정 훌륭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의 모친과 피고인이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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