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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Jun 02. 2024

변호사님, 저는 재판 안 받고 도망 다닐 거예요.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던 피고인

국선변호인의 업무는 공소장과 국선변호인 선정결정문을 송달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소장을 받은 후 증거기록을 검토하고,

피고인과 전화통화를 해 접견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필자가 피고인에게 전화를 하면,

가끔씩 필자에게

"재판을 받지 않고 도망가겠다"

라고 말하는 피고인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재판을 받지 않고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는 피고인들은, 아예 필자의 전화조차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전화를 받고

"재판을 받지 않고 도망 다니겠다"

라고 말하는 피고인들은 대부분,

누군가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 경우였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피고인이 있다.

그 피고인은 112나 경찰서에 "자살하겠다"는 등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여러 번 신고했다는 내용으로 경범죄처벌법위반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라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


필자는 위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고,

접견을 위하여 위 피고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기가 꺼져 있어 통화를 하지 못했다.


여러 번 위 피고인에게 전화를 시도하다가

드디어 연결이 됐다.

필자가 공소사실을 알려주면서 필자가 위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음을 밝히고,

“재판준비를 위하여 연락드렸다”라고 하자,

그 피고인은 필자에게

“변호사님,
이건 제가 죽어야 끝납니다. 죽어야 끝나요.”

라고 했다.


피고인과의 전화통화로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니,

그 피고인으로서는 삶이 힘들어서 죽으려는 마음으로 경찰서에 “자살하겠다”라고 전화를 해서 경찰관들이 여러 번 출동을 했는데, 경찰관이 도착했을 때 피고인이 살아있고

“죽겠다”라고 전화한 횟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죽겠다”는 전화 외에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신고한 횟수가 너무 많으니

결국 기소까지 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피고인이 필자에게

“변호사님, 이건 제가 죽어야 끝납니다. 죽어야 끝나요.”라고 말한 것이었다.


필자가 그 피고인에게

“생명은 소중하다, 그런 말씀 마시라,
죽으면 안 된다.
재판받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 마시라. 괜찮다”

라고 위로하면,


피고인은

“그렇죠,
하나님께서도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셨어요”

라면서 필자의 말에 수긍했다.


그런데, 필자가 “재판이 ~로 예정되어 있으니 재판준비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변호사님, 저는 재판 안 받고 도망 다닐 거예요”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는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을 다니겠다고 말한 피고인은

그 후에도 가끔씩 전화를 받았고

또다시 “변호사님, 이건 제가 죽어야 끝납니다. 죽어야 끝나요.”라고 말했고,


필자의 위로를 듣고는

“그렇죠, 하나님께서도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셨어요”라면서 필자의 말에 수긍했지만,


재판 얘기를 꺼내면 “변호사님, 저는 재판 안 받고 도망 다닐 거예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피고인과의 통화는 항상 도돌이표로 끝났다.


도망 다니겠다면서 계속 필자의 전화를 받는 피고인과 통화를 끝내고 나면,

그 피고인에게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피고인이 112나 경찰서에 “죽겠다”면서 전화하지 않았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피고인의 “죽겠다”는 신고행위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던 피고인의 구호 요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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