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무겁지 않았다

아내를 폭행하고 고양이를 도살한다는 노인. 어쩌면 그의 아내는...

by 애늙은이

***탐문이 끝나고

“그래, 내가 죽였소.”

안락의자에 앉은 노인이 살인 사실을 시인했다. 그래, 내가 죽였소. 그 가벼운 말투에서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흔을 넘긴 노인, 박현회가 지금껏 수많은 생명을 죽여 왔기 때문일까. 나는 확신한다. 그건 아닐 거라고. 적어도 방금 전 여자의 시신을 찾아내기 전까진 비슷하게 생각했지만 말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월 11일 목요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아침 댓바람부터 허름한 차림의 50대 중반 여자가 날 찾아왔다.

“여기가 흥신소죠? 부탁하면 이것저것 해준다면서요.”

어디서 와전이라도 된 것일까. 여자는 내 탐정 사무소가 돈만 주면 뭐든 해주는 곳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때에 따라 다르겠죠. 일단 의뢰부터 들어보도록 할까요.”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같은 목적이었으니. 나는 밀려드는 의뢰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됐다.

“앉으시죠.”

나는 여자를 접대용 테이블로 안내했다. 긴 신음의 스트레칭 한 번. 허리가 찌뿌듯했는지 여자는 손님용 소파에 앉자마자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을 조사해줬으면 해요.”

곧이어 여자가 본론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꺼내든 휴대폰에는 늦은 밤 휠체어를 밀고 있는 한 노인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하얗게 번진 눈썹과 찢어진 눈매, 얼굴 곳곳에 퍼진 검버섯. 강렬한 첫인상의 노인은 못해도 여든은 돼 보였다. 독특하게도 얼굴과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한 손에 두툼한 검은 봉투를 들고 있는 것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여자와 노인의 얼굴을 비교해보았다. 마른 체격의 노인에게선 통통한 체형의 여자와는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우선 묻겠습니다만, 두 분은 어떤 관계시죠.”

“그냥 이웃인데요. 옆집 사는 이웃.”

여자는 무심한 말투로 관계를 못 박았다.

“조사했으면 하는 건요.”

“이 인간 민낯이죠. 조사해서 확 다 까발려줬으면 좋겠어.”

여자가 눈살을 좁혔다. 중지와 엄지가 오므리고 펼치길 반복하더니 화면은 휠체어로 가득 차게 되었다.

휠체어에는 왜소한 체구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커다란 털모자와 썬 캡,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고, 상하의 역시 검은색으로 꽁꽁 싸맨 탓에 얼핏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자는 휴대폰을 내 쪽으로 좀 더 밀어주었다.

“이 분이 이 쓰레기 아내예요.”

“…아내 분께서 거동이 불편하신가 보네요.”

“치매에 걸려서 그래요. 말기거든요.”

아내를 위해 늦은 밤 산책을 나선다니. 이렇게 다정한 노인이 쓰레기라 불릴 이유가 있을까. 의구심에 눈썹이 굽어졌다.

“지금 이 인간이 착하다고 생각했죠?”

내 얼굴을 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 참, 다들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니까. 한번 봐 봐요.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여자가 안장 부분을 확대했다. 손목, 발목의 옷자락이 미세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손이며 발이며 다 묶어뒀잖아요. 제정신인 양반이 지 아내한테 이런 짓거릴 했겠어요? 때려 놓고 도망도 못 가게 감시하는 거지. 멍 자국도 안 들키려고 몸도 다 가린 거잖아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날이 어두워서 확신은 못하겠는데. 그렇게 단정 짓는 근거라도 있는 건가요. 폭행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하는.”

“의뢰인이 그렇다잖아요. 뭐가 더 필요해요?”

‘결국 아무것도 못 봤다는 거 아니야.’

나는 휴대폰을 도로 건네며 깍지를 꼈다.

“다른 분들께 상의해보신 적은 있습니까? 이웃이나 치안센터 직원들한테요.”

“…그 사람들은 왜요?”

“그 분들도 목격자니까요.”

“아유, 못 믿겠으면 관둬요. 쓰레기들 처리해준다더니 이게 뭐야.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그냥 없던 걸로 해요. 다른 데나 가려니까.”

거듭된 반문에 여자가 빈 정 상한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낌새가 들자 나는 덧붙였다.

“말씀하기 싫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간혹 자기 입장은 생각도 않고 오는 분들이 계셔서 그런 것뿐이니까. 저는 그런 사람들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줘 패고 싶었을 정도로.”

그 말에 여자가 멈칫했다. 그러곤 각진 내 주먹을 힐끗 살피더니 소파에 도로 엉덩이를 붙였다. 표정은 여전히 토라져있음에도 대답은 해주었다.

“그 인간 이상한 건 나말곤 몰라요. 애초에 남들 앞에선 내숭만 떠니까. 방금 다른 사람한테 말해봤냐 했죠? 당연히 해봤죠. 근데 듣는 시늉도 안 하잖아. 그 노친네하고는 동향이라 무시하는 거겠지.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신고보다도 이 인간 낯짝 까발리는 게 더 중요해요. 헛것 본 거라고 동네가 다 나를 피해망상으로 보잖아 지금. 아무튼 앞으로 그런 짓 못하게 그쪽이 잘 좀 처리해줘요.”

“…음. 그러셨군요.”

어쨌거나 사진에 의문이 드는 건 동감한다. 의뢰가 순전히 악의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나는 의뢰를 수락하기로 하고는 내일부터 착수하겠다고 했다. 내 휴대폰으로는 노인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자요, 도움 좀 될까 싶어 가져왔어요.”

의뢰인이 등산가방에서 짙은 갈색의 서류봉투를 꺼내주었다. 추가 자료였다. 첫 장에는 로드 뷰로 촬영한 노인의 동네가 찍혀 있었다. 동네라 봐야 군 지역 끝자락에 주택 네 채가 모여 있는 게 전부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법한 비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의뢰인과 노인의 집이, 그 맞은편으로는 다른 두 이웃의 집이었다.

“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그렇게 떠나려던 의뢰인에게 나는 물었다.

“이 분이 이상하다고 느끼신 건 언제부터였나요.”

의뢰인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처음부터요. 그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를 죽였을 때부터.”

의뢰인은 그 말을 끝으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할까. 회전하는 뇌가 이마를 달궜다. 아무래도 오늘은 요양병원에 가지 못할 듯싶었다.



***2021/ 2/ 11 (목) 오후 5시 30분. 첫 번째 이웃 - 다방 주인 탐문

-2021년 1월. 혼인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황혼이혼도 늘어만 가는 가운데….

결혼은 불행이요, 가족은 짐이다. TV건, 신문이건 요즘 뉴스들이 하는 말이 대개 그런 식이다. 정말 그게 정답이냐 묻노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결혼은 한 적 없으니 잘 모르겠다. 다만 가족이 유대를 대표하는 관계이며, 그 자체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그랬으니까.

‘…집어치우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삭막하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의뢰에 대해 상기했다.

‘예전부터 밤만 되면 노인이 검은 봉투를 들고 거리를 나섰다. 검은 봉투 안에선 종종 고양이 시체가 발견됐다. 명절이 다가오면 고양이 시체가 많아졌으며, 4일 전부턴 시체가 매일 나오고 있다. 이웃 중 검은 봉투를 쓰는 쓰레기는 노인, 박현회 뿐이다.’

이상이 의뢰인이 내게 건넨 자료의 요약이었다. 초점이 고양이에게 맞춰져 있다니, 요컨대 폭력 정황은 건덕지에 불과했단 게 아닌가. 보고서를 읽은 순간 나는 이런 가정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의뢰인 김옥영은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긴다. 그래서 나를 이용해 고양이를 죽인 박현회를 겁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김옥영의 진술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이 의문의 가장 간편한 해답은 망상장애였다. 오늘 아침 들었던 “헛것 본 거라고 동네가 다 나를 피해망상으로 보잖아 지금.”이라는 김옥영의 증언대로, 그녀가 헛것을 보고 이야기를 전부 지어냈을 경우다. 하지만 이 경우 그녀의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면 어느 정도 반박이 가능했다.

별첨된 자료에는 입가에 피가 묻은 노란 고양이의 사진이 담겨 있었으며, 어떠한 연유로 박현회가 폭력적인 인물이라 여기게 되었는지(박현회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멎었다든가, 얼마 후 설, 박현회가 버린 검은 봉투에 고양이 시체가 들어있었다든가 하는)가 일관성 있게 적혀있었다.

대화에 체계가 잡혀 있다니. 망상장애 환자에게선 드문 일이다. 다시 말해, 김옥영의 동기 ‘고양이의 죽음’이 다소 특이할 뿐, 의뢰 자체는 사실을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됐다. 그렇다면 박현회는 정말 폭력적인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낮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있다. 누군가 악의를 품는 데는 필시 그만한 이유가 뒤따를 테니.

어쨌거나 이번 의뢰의 핵심은 김옥영의 신뢰도였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온 것이다. 그녀가 품은 악의의 기원부터 알아보기 위해. 이곳 을지 다방에.

을지 다방은 김옥영의 세 이웃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시내의 작은 다방으로 간판은 없었다. 하얀색의 시트지로 잘라 만든 글자가 간판이라면 간판이겠지.

“계세요.”

손잡이를 당기자 종소리가 울렸다. 전경에는 짙은 갈색의 저렴한 소파와 테이블이 쌍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카운터에는 전화기 두 대와 의자, 전표 등이 있었는데 주인은 보이질 않았다.

‘자리를 비웠나.’

안 쪽에서 7080가요가 흘러나왔다. 나는 카운터를 끼고 돌아 실내로 발을 옮겼다. 코앞에 갈비뼈 높이로 설치된 선반이 손님 석과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주방이었다.

“아, 어서 와요. 총각. 주문하려고?”

인기척을 느낀 주인이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미용실 아줌마 파마를 한 중년의 여자였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게 좋겠지. 나는 메뉴판을 보며 코코아 한 잔을 주문했다.

“저기 앉으세요. 금방 가져다줄게.”

주인이 말하며 중앙 테이블을 가리켰다. 나는 외투를 벗으며 안내받은 자리로 갔다. 어떤 식으로 물꼬를 틀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창가 구석 자리에 앉은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진한 눈썹에 흐리멍덩한 눈. 박현회였다.

‘…보기보다 인상이 드센데.’

그의 테이블 옆에는 전동휠체어가 딱 달라붙어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아내일 터다. 사진에서처럼 전신을 검은색으로 덮고 있는 게 어쩐지 께름한 분위기를 풍겼다. 손목과 발목 역시 미묘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뭐 문제 있소?”

박현회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제법 예스러운 어투였다.

“…아뇨, 죄송합니다.”

나는 짤막한 사과를 건네곤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러왔나 봐요? 설도 다 쇠서 귀향객들은 전부 빠질 시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이 코코아를 내왔다. 90년대 시대극에서 종종 보던 양식 찻잔이었다. 나는 잔을 들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볼 일? 성묘라도 하러 왔나?”

“동물학대요.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차 나온 거예요. 옆에 시에서요.”

“예? 동물학대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을까. 주인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나는 코코아를 입에 머금은 채 박현회를 곁눈질했다.

“…엄밀히 따지면 도살이라고 해야겠네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 아니. 나는 처음 듣는 얘긴데요.”

주인이 식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와 달리 무관심해보이는 박현회의 태도. 관심을 한번 끌어볼까. 나는 김옥영에게 받은 자료를 토대로 작당을 해보기로 했다.

“모르는 게 나을 거예요. 사진으로만 잠깐 봤는데 얼마나 끔찍하던지 원…. 날붙이로 수십 번을 찔러대질 않았나, 두개골을 으깨버리질 않았나.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더라고요.”

주인이 “어휴”란 추임새를 넣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명절만 되면 심해진대요.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참. 엔간히 미친 거죠.”

“하이고, 그러게. 애꿎은 애들한테 왜 그런 짓을 했대.”

“제 말이요. 걔들이 잘못을 하면 뭐 얼마나 했을라고. 안 그래요?”

“맞지, 맞지.”

“사이코패스라고 봐요. 그런 인간은 분명 지 가족한테도 손 대고 막 그럴 걸요?”

계속되는 대화. 나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돌려보고, 미치광이라는 식의 과장도 해보았다. 하지만 박현회는 여전히 이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밑밥은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박현회에게 말을 걸어봤다.

“아, 그렇지. 어르신. 어르신도 이 동네 분이신가요? 혹시 뭐 따로 들어보신 적….”

“그 정신 나간 인간이 시킨 거요?”

신경 쓰고 있었나. 말을 끊고 들어온 그의 반문은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잖아.”라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으며 모르쇠를 했다.

“글쎄요. 저도 가라 해서 급하게 온 거라 잘은…. 뭐 이상한 사람이라도 있다나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박현회는 벌레 보듯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나 휠체어를 끌고 나가버렸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이라곤 휠체어 등받이 망에 든 검은 봉투들의 부산한 소음이 전부였다.

“그, 시, 신경 쓰지 말아요. 요즘 왠지 조금 예민해져서 그런 거니까.”

주인이 위로를 건넸다. 요즘이라면 원래는 안 그랬다는 뜻이겠지. 나는 괜찮다 답하며 출입문 옆에 걸린 뻐꾸기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40분. 마감까지는 20분 남았다. 여유는 있다. 박현회도 떠났으니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자.

나는 주인에게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냐 청했다. 주인은 “그렇게 해요. 어차피 연휴도 끝물이라 손님도 없으니까.”라 말하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조사에는 가장 도움이 되는 타입이다. 나는 감사함에 코코아와 과자 세트를 추가로 주문했다.

5분 정도가 지나 주인이 주문한 메뉴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인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초코과자 포장지를 벗기며 말했다.

“뭐 거창한 걸 여쭈려는 건 아니에요. 저 분 있잖아요. 네, 방금 나가신 분. 성함이 박현회 씨 맞죠? 네, 맞네요. 혹시 저분이 이웃하고 마찰이 있었다던가 해서요. 고양이 때문에. 아, 그렇게 당황하실 건 아니에요. 저분이 고양이를 죽였다는 건 아니니까. 단지 고양이가 발견된 봉투 중에 검은 게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네, 저 휠체어 망에 걸려 있던 것처럼 검은 봉투요.”

좁혀든 눈썹은 그제야 원위치를 찾아갔다. 주인은 비음을 섞으며 답했다.

“싸운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죠. 근데 그건 앞집 아줌마가 워낙 극성이라 그런 건데.”

앞집. 의뢰인 김옥영에 대한 얘기다. 나는 과자를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극성이요? 뭐 어느 정도기에 그런데요?”

“아니 뭐… 동물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잖아요. 저번 주 일요일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반 협박까지 했다니까요, 글쎄? 삼춘이 고양이를 죽였다고. 사람이 어째 요즘 더 난리야, 난리는. …그 신고 진짜 그 여자가 한 거예요?”

“신고는 익명으로 들어온 거라 모르겠네요.”

주인은 확신이 들었는지 “그럼 그렇지. 미친 여편네.”라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어지간히도 미운털이 박혀 있는 듯 했다. 나는 일견 수긍한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근데 이런 일 하다보면 이상한 사람이 한 둘 아니긴 해요. 지 혼자 악감정 품은 걸 우리한테 징징대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애먼 사람 들쑤시기도 하고. 괜히 잘못 코 꾀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라니까요.”

“맞지, 그런 사람들이 사람 참 피곤하게 해.”

“그죠. 사장님도 잘 아시네. 그… 사장님. 그래서 드리는 얘긴데, 혹시 그 앞집 여자랑 박현회 씨 말이에요. 그 두 사람은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나요?”

“예… 그렇긴 하죠. 근데 그건 갑자기 왜요?”

주인이 미심쩍은 얼굴로 되물었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위에는 개인감정에서 비롯된 허위 신고라 보고할 생각이거든요. 뭐든 알아야 적을 수 있으니까요. 그 뭐야, 혼이 담긴 구라라고. 영화에서도 그러잖아요? 화투치는 거. 보셨나?”

“…일 그렇게 해도 돼요?”

“이런 일은 되죠. 딱 봐도 코 꾀인 일인데. 게다가 따지고 들면 설날까지 출장 보낸 지들 잘못인데요, 뭘. 자료도 제대로 안 보여준 거 보면 엿 먹으랍시고 저를 보낸 거겠죠. 지들은 허위 신고인 것도 진즉 알고 있었을 테고.”

“그게 요즘 말하는 사내 정치 그런 건가?”

“비슷하죠.”

“아이고, 총각이 고생 많았겠네.”

“징글징글해요 진짜.”

있지도 않은 상사 욕에 주인이 깔깔대며 박수를 쳤다. 그녀는 조금씩 경계심을 풀고 입을 열었다.

“사이야 처음부터 안 좋았죠. 01년도요, 그 아줌마가 02월드컵 전 해 초입에 이사를 왔거든. 떡 돌린다고 갔다가 둘이 싸운 거잖아.”

“떡 돌리다가요? 신기하네. 그럴 수가 있나.”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니면 내가 괜히 극성이라고 했겠어?”

주인이 과자를 입에 물며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러게요. 그 아줌마가 처음부터 무슨 유난을 떨었기에 그런데요.”

“어휴, 말도 마. 삼춘이랑 언니가… 아.”

가벼이 말해선 안 될 얘기였나. 주인의 혀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나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차분히 다음 답을 기다렸다. 짤랑이는 두 번의 찻잔 소리.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이내 굳은 혀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은 그쯤 삼춘네 언니가 유산했거든. 세 번째 유산. …어메, 괜찮아 총각?”

난데없는 유산 얘기에 사레가 들렸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주인은 티슈를 건네며 이어 말했다.

“아무튼. 예전부터 삼춘네 담 너머로 길고양이들이 들락날락했어. 마지막 유산 이후로는 언니가 집안에 틀어박힌 통에 오가는 애들이 더 많아졌고. 근데 앞집 아줌마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동네 사정을 모르잖아. 거기서 잘못을 한 거지. 길고양이 울음소리를 잘못 듣곤 혹시 집에서 고양이 기르느냐고. 하긴, 부모도 못 알아보는 사람 새끼보다야 고양이가 훨씬 낫다고. 지야 가족이 딸랑 고양이 뿐이라 그렇다지만 삼춘 입장에서 그게 좋게 들렸겠어? 그러니 그 과묵하고 소심한 양반이 동네 떠나가라 노발대발한 거지. 그래놓고 사과도 안 했다는데 사람들이 좋게 보겠냐고 참말로.”

“…그랬군요.”

그래, 그렇다면 성을 낼 법도 하다. 유산을 세 번이나 했다면 누구나 예민해질 테니. 시대상으로 보아 박현회 내외가 딩크족일 가능성도 낮다. 결혼도 늦었으니 현실적으로 아이를 갖기 힘들었겠지. 나는 찻잔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그럼 박현회 씨 부부가 집 안에서 고양이를 기른 적도 없었겠네요.”

“내가 알기론 없죠? 노산이라 문제가 될 만 한 건 삼춘이 허락을 안 했거든. 나중에 병이나 알러지 생길지도 모른다고.”

집에서 고양이를 길렀다는 증언부터가 망상이었나. 그럼 고양이 시체 얘기도…. 박현회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장단을 맞추었다.

“안타까운 얘기네요.”

“안타깝지. 그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치매까지 걸리고.”

“혹시 박현회 씨 평소 언행이 좀 거칠었다거나, 폭력적이지는….”

노파심에 물어봤다만 그럴 사람은 절대 아니었나보다. 주인은 얼굴 반쪽을 대차게 구겼다. 캐묻는 건 이쯤 해야겠다.

“않았군요.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말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박현회가 보고 있던 게 저기인가. 맞은편엔 단란한 가족사진을 전시한 사진관과 함께, 지그재그로 구부러진 버스 이정표 하나가 꽂혀 있었다.

“응? 가려고요?”

주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슬슬 가야죠. 시간도 늦었고.”

“어머, 벌써 55분이네. 나도 그럼 슬슬 정리해야겠다.”

별안간 어둠 속을 뚫고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출구에선 한 사람이 내렸다. 김옥영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자 그녀는 옷을 여몄다. 그리곤 지게를 진 것처럼 굽은 허리로 쇼핑캐리어를 이끌어 길을 걸어 올랐다. 자택 방향이었다. 나는 벗어둔 외투를 챙기며 넌지시 물었다.

“…박현회 씨는 다방에 자주 오는 편인가요?”

“응? 아아, 요즘엔 매일 왔네요.”

“계속 저 자리에 앉았죠? 건너편이 보이는.”

“그렇죠?”

“언제 와서 언제 갔나요.”

“예? 언제요?”

주제가 엇나가 그러는 모양이다. 무표정으로 재차 묻자 주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을 해주었다.

“원래는 두세 시쯤에요.”

“오늘만 늦게 온… 아니다. 예민해진 게 요즘이라고 했으니 요 근래는 매일 이 시간대에 왔겠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어쨌거나 사장님도 고생 많으셨겠네요. 거스름돈은 괜찮아요.”

나는 테이블 위로 오만 원 권 한 장을 내밀었다. 다방 주인은 무언가 깨달은 듯 “이런 거 안 줘도 알아서 조용히 할 건데.”라 말하며 넙죽 돈을 받아갔다.

하아.

문을 열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수풀 사이를 꿰뚫는 바람 소리가 유독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직은 그저 찝찝함일까.

“뭐 두고 갔어요?”

이내 얼어있던 난, 열린 문 틈새로 머리만 빠끔 내민 채 물었다.

“하마터면 그걸 깜빡할 뻔했네요. 제일 중요한 건데. 혹시 박현회 씨 아내분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언제인가요?”



***두 번째 이웃- 박현회 탐문

구부러진 검지가 버스 안내판을 쓸었다. 배차 시간은 2시간 간격으로 김옥영이 내린 오후 6시가 막차였다. 그 뒤로는 사진관의 가족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다. 박현회가 보고 있던 건 둘 중 무엇이었을까. 나는 빌려온 낡은 포터에 타 시동을 걸었다.

“얼굴이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일요일이네. 쓰레기 버리고 들어가는 길에 봤어요. 다음날부터는 감기에 걸렸다고 꽁꽁 싸매고 다니더라고. 지극정성이지?”

마지막 물음에 다방 주인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내용인 즉, 이번 주 월요일. 설 연휴 전날을 기점으로 박현회가 이상해졌다는 얘기다. 나는 조수석 키 박스를 열어 김옥영에게 건네받은 박현회의 신상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박현회

5년 전 아내의 치매 발병. 3년 전부턴 아내의 건강상태 악화로 철물점을 접음. 이후 공공근로를 하고 있으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을 다방에서 무료로 때우는 경우도 부지기수.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이라 항상 손님이 빠지는 2, 3시에 방문. 만날 거면 평일 낮에 다방에 가보거나 8시에 쓰레기 수거장을 지켜보길 바람.


…이상이 박현회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방 주인은 말했지. 박현회가 소심한 성격이라고.’

한 마디로 눈치를 많이 본다는 얘기다. 박현회에게 우호적인 다방 주인이 거짓을 고하진 않았을 터, 성격과 다방 방문 시간이 김옥영의 자료와 일치하는 마당에, 김옥영의 진술이 전부 망상이라고 단정 지을 이유가 있을까.

‘20년 전으로부터 시작된 악연. 집안에서 들린 고양이 소리가 계기. …그간 본 게 모두 망상이었다는 건 너무 붕 뜬 얘기야. 그랬다면 김옥영이 일찌감치 소란을 일으켰어야 정상이니까.’

일부가 진실이란 생각이 드니 박현회에 대한 의구심만 깊어질 따름이다. 나는 가슴팍에서 수첩을 꺼내 이번 의뢰에 관한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타임라인>
최근
김옥영 망상증세 발현?

4일전 일요일
○박현회의 아내는 쓰레기수거장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비추었다.
박현회는 노란 고양이를 죽였다며 (허위) 신고 협박을 받았다.

3일전 월요일
○박현회는 아내를 칭칭 싸매고 다방을 나오기 시작했다.
박현회는 또 다시 고양이를 죽였다. 이후로 계속.


병렬된 글자들을 반복적으로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현회가 부리는 기행의 이유는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에겐 고양이를 죽이거나, 아내를 폭행할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폭행 사실을 숨기려했으면 집안에 아내를 가뒀어야 정상이지 어째서 그런 행색으로 밖을 나돌겠나. 아내를 괴롭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면 죽이고 대역을 쓰고 있거나. 왜 한때 유행했던 뉴욕 지하철 괴담처럼.

‘도통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우선 매립장부터 가볼까.’

설 동안은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았을 터다. 김옥영이 헛것을 본 거라면 고양이 시체도 없겠지. 이 불결한 망상을 끝내줄 그 쓰레기도 나올 테고. 매립장엔 마지막 이웃인 청소부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별안간 포터는 덜컹거리며 서행을 시작했다. 그길로 3분. 가는 길에 김옥영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의 캐리어 가득 고양이 용품이 쌓여있단 것만 보곤 그냥 지나쳤다.

이후로 또 3분. 다음으로 발견한 것이 박현회였다.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걷고 서기를 반복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투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부자연스럽다. 그 말 말고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난 결국 그의 옆으로 포터를 바짝 가져다 댔다.

“안녕하세요.”

창문을 내리자 박현회가 차안을 훑었다. 깨나 메마른 표정이었다.

“…당신 형사요?”

조수석에 놓인 수첩의 경찰청 로고를 봤나보다. 그는 차량에서 먼 쪽으로 휠체어를 조심스레 밀었다. 나는 답했다.

“아, 이건 옛날에 쓰던 거예요. 지금은 말씀드린 대로 동물 단체 직원이고요.”

“그럼 왜 자꾸 귀찮게 구는 거요?”

“날도 춥고 길도 좁잖아요. 위험하니 모셔다드리려 했죠. 아내 분 휠체어도 무거워 보이고. …아닌가?”

“신경 쓰지 마쇼. 내 가족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박현회는 그대로 다시 발을 뗐다. 나는 그가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에 얼른 외쳤다.

“고양이 시체를 보러 가는 길이에요. 매립장에요.”

그러자 박현회가 대뜸 발을 멈추었다.

“명절이면 고양이 시체가 많아진다니까요. 내용물만 뒤지면 소재지 같은 건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얘길 들은 박현회가 걸음을 물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조수석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지간히 하게. 옆집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박현회는 피식하고 웃었다.

“자꾸 그렇게 모르쇠 하지 마쇼. 김옥영이. 그 여자가 허풍을 대서 계속 쫓아다니는 거잖아. 내가 고양이를 찔러죽이고, 머리를 으깼다고.”

그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나는 그를 쫓아 조수석으로 어깨를 숙였다.

“그럼 그러지 않으셨다는 건가요?”

박현회는 콧방귀를 끼었다. 그러곤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여자야.”

“그 여자요?”

“고양이 죽인 거. 그 여자라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박현회는 왼손을 가져다 아내의 옷을 꽉 여몄다. “아으.” 하는 사람의 걸걸한 신음이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물었다.

“그 여자 집에 가봤나?”

“…저는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는데요.”

박현회가 혀를 차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가느다란 왼손은 전면을 향했다.

“모르겠으면 한 번 가보쇼. 담벼락이 반파된 게 그 여자 집이니까. 당장에 가도 다 죽어가는 애들 한 둘은 찾을 수 있을 거요. 그 여자, 어지간히도 관리를 못 하거든.”

박현회가 손을 내렸다. 오른손에 들린 봉투가 흔들거렸다. 휠체어가 삐걱거리며 차량에서 멀어진다. 나는 뺨을 긁으며 되는 대로 반문해봤다.

“글쎄요. 반대로 죽인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걸 거둔 거일 수도 있잖아요. 정이 많아서 너나 할 것 없이 다 데려온 거죠.”

“허, 정이라고?”

박현회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허울 좋은 소리. 그런 여자들은 정 때문에 고양이를 거두는 게 아니야. 그저 고독을 메우려는 계책이고 수단일 뿐이지.”

“고독이요?”

박현회의 왼쪽 눈썹이 구부러졌다.

“뭐야, 그 여자가 지 얘기는 쏙 빼놓고 알려준 거요? 그 여편네 이혼 당했잖아. 애만 낳곤 기르던 고양이랑 같이 버려진 거라고.”

“….”

“사랑은 고픈데 채워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택한 게 사람 새끼 흉내나 내는 고양이일 뿐이야. 그렇다고 책임이나 잘 지는 줄 아나? 꼴에 자식이랍시고 예쁘장한 새끼만 좋아라한다고.”

“그렇다면 죽인다는 게….”

“빤한 거 아니요? 돈도 없는 여편네. 지 욕심 못 버려선 늙고 병든 애들은 찌르고, 머리를 으깨는 거지. 그러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뒷산에 시체가 늘어나는 거 아니요.”

과연, 그래서 그렇게 고양이에 집착했다는 건가. 응당 이해는 가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그의 핀트는 벌써부터 엇나간 부분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근데 좀 이상하네요. 고양이 시체는 모두 쓰레기봉투 안에서 발견 됐다는 걸요. 뒷산이 아니라.”

“그건… 겨울이잖아. 땅이 얼어서 팔 수 없었겠지.”

겨울. 이번에도 딱히 부정할 수는 없는 이유였다. 성인 남성도 겨울에 땅을 파는 건 힘에 부칠 테니. 그렇담 이쯤에선 주제를 돌려볼까. 나는 턱짓을 하며 봉투를 가리켰다.

“뭐, 그건 그렇다 치죠. 그럼 그 봉투 말이에요.”

“봉투?”

“예, 오른손에 들고 계신 거요. 안에 뭐가 들은 거예요? 아까 다방에서 봤을 때만 해도 빈손이었잖아요.”

“이건 그때부터 들고 있었어.”

거짓말이다. 나는 거듭 추궁해보았다.

“어르신. 고양이 시체가 든 봉투 말이에요. 그게 어떤 봉투였는지 아세요? 검은 봉투였대요. 지금 들고 계신 거랑 똑같은 거요. 요즘 시대에 종량제를 안 쓰는 사람이 있다니…. 민원만 넣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뭣하면 벌금 물릴 때까지 제가 국민신문고에 민원 넣어도 되는데.”

박현회의 턱 밑으로 진한 주름이 접혔다. 그에겐 마땅한 직장도, 자식도 없다. 아내에게 들어가는 약값, 기저귀 값 등을 따지고 들면 매달 분에 넘치는 지출이 있을 터, 기껏해야 수 십 만원의 그치는 벌금이라도 그에겐 큰 부담이겠지. 고깝지 않게 여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건 무분별한 악의를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니까.

“…지금 협박하는 거요?”

박현회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아랑곳 않았다.

“잠깐이면 돼요. 저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앞으로 더 귀찮게 할 일도 없을 걸요.”

“하, 경찰은 그만둔 게 아니라 쫓겨난 건가 보오.”

“…좀 보죠.”

박현회의 손등 위로 핏줄이 올라섰다. 그는 휠체어에서 손을 떼 양손으로 봉투를 펼쳤다. 날이 어두워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이건….’

안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게 들어있었다. 박현회는 거칠게 봉투를 낚아채더니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님이요? 광대나물이잖아. 그럼 이제는 내가 이걸 캐려고 방금 전까지 바닥을 기었다고 구차하게 변명까지 해야 합니까! 예?”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여간 그 미친 여편네 때문에 진짜.”

그때 박현회의 피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오후 6시 15분. 대화를 나눈 지도 벌써 5분이 지났다. 박현회는 급하게 알람을 끄더니 요지부동인 휠체어를 이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밥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나는 떠나려던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르신. 죄송한데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그 말이 어지간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전조등 빛이 닿은 그의 하관은 하회탈마냥 찌그러져 있었다.

“어르신은 결국 옆집 여자를 싫어했던 거네요.”

박현회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굳이 따지면 나는 고양이가 더 싫은 거요. 걔들은 너무 가벼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질감이 들었다. 그것은 박현회보다, 내가 억지로 이어간 요 5분간의 대화 동안 살아는 있다고 말하려는 듯, 선명하고도 걸걸한 신음만 읊조리던 그의 아내에게서 느껴졌던 게 아닐까.

나는 차량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백미러 저 멀리 다른 점 하나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옥영이었다. 여기 있는 걸 들켜서 좋을 건 없다. 포터는 예정대로 매립장으로 향했다.



***세 번째 이웃 - 청소부 탐문

고양이는 가벼워서 싫다. 매립장을 뒤지는 동안 박현회가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박현회는 갑자기 왜 그런 헛소리를 한 걸까.

“거, 찾는다는 고양이 시체는 다 찾았답니까?”

늘어진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청소부가 물었다.

그의 허락은 쉽게도 떨어졌다. 마치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렸던 것처럼. 아니, 정확히 따지면 ‘나’보단 ‘고양이 문제로 찾아온 경찰’일 것이다. 다짜고짜 찾아간 내게 청소부는 이렇게 답했으니.

“뒤지는 건 상관없는데 뭐 때문에 그러는 거래요.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고양이 시체요.”

의미심장한 표정. 그는 내 손에 들린 수첩의 경찰청 로고를 흘겨보곤 눈을 밝혔다. 누가 봐도 경찰을 기다린 게 아닌가. 그는 그러곤 덧붙였다.

“옆에서 봐도 되죠? 이런 건 문제 생기면 나도 책임이 있거든.”

나는 상관없다 답했다. 그게 이 추운 날 그가 나를 따라나선 이유다.

매립장은 연휴에도 정상 운영이었다고 한다. 다만 2월에 들어온 쓰레기는 새로운 구역에 쌓아두어 단서 찾기는 수월했다. 최근 들어온 쓰레기 위치를 물으니 청소부는 가장 낮은 쓰레기 산언저리를 가리켰다.

‘굶어 죽은 새끼 셋, 피를 토한 성체가 둘…. 이 노란 성체는 김옥영 사진에 있던 애야.’

4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온 고양이 시체만 다섯이다. 시체가 발견된 봉투는 검은색과 종량제 봉투 둘 다였다.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종량제봉투에는 김*영으로 처리된 택배 용지가, 검은 봉투에는 박현회의 아내 김선의의 이름이 적힌 약 봉투가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그 여자가 또 뭔 사달을 내서 그런 거죠?”

어지간히도 말하고 싶은 게 있었나. 대답할 틈도 없이 청소부가 말곁을 놓았다.

“그 여자요?”

“김옥영이요. 왼손에 들고 있는 그거, 그 아줌마네 택배 용지잖아요. 쓰레기도 죄다 고양이 용품이고.”

그는 뒷짐을 쥔 채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훤한 얘기에 나는 머리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아…. 유명한가 보죠? 다들 엔간히 싫어하는 눈치던데.”

“아니, 뭐 그냥 고양이, 고양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서 그렇지. 또 요즘에는 도를 넘잖아요. 동네가 다 시끄럽다고.”

“뭐 별다른 일이라도 있었대요?”

반사적인 대답에 청소부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찰에서 나온 거 아니에요? 그럼 모를 수가 없는데. 아, 다방이 말려서 전화가 끊겼나?”

경찰이면 안다니. 필시 허위 신고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나는 경찰이 맞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그거랑 관련해서 나온 건 맞죠. 누가 고양이를 도살한다고.”

“그래요, 그거. 나한테도 그랬다니까. 형님이 노란 고양이 죽이는 거 못 봤냐고. 가만, 근데 고양이를 도살했다고 신고한 거면… 혹시 그거, 그 아줌마가 신고한 거예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 황당하네 진짜. 저기요, 형사님. 내 딱 말할게요. 여기 고양이들 죽인 거, 그거 그 여자에요. 자기가 죽여 놓고 형님한테 덤터기 씌우려는 거라고. 내가 형님네 봉지까지 뒤지는 걸 다 봤다니까?”

그래, 그야 그렇겠지. 아사한 새끼 세 마리. 크기랑 털색까지 빼다 박은 게 형제자매로 보이는데, 왕래도 없는 이웃들 쓰레기봉투에서 각기 따로 나왔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예민한 고양이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박현회 네 집에 새끼를 낳았을 리도 없다.

‘…잠깐. 노란 고양이가 실제로 있다는 건….’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꿰뚫고 지났다. 나는 잠깐 생각하곤 에둘러 물었다.

“선생님.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김옥영 씨 말예요. 망상장애가 있는 거 다들 알고 계셨어요? 듣기론 헛것을 본다던데.”

“그게 아니면 자꾸 그런 헛소리를 하겠어요?”

아. 역시나 이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망상장애와 편집증의 차이를. 편집증은 헛것을 보지 않는다. 실제 행위를 보고 확대 해석을 하게 되는 거지.

즉, 4일전 부린 난동의 촉매제, 노란 고양이가 나온 이상 그녀의 목격담 자체는 진실로 무게가 쏠린다는 것이다. 나는 수첩을 꺼내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했다.


김옥영(편집증 가능성)

<실제 행위>
20년 전-박현회네 집 안에서 고양이 소리를 들음. 이후 설 고양이 시체 발견.
4일전 일요일-박현회의 검은 봉투에서 노란 고양이 시체를 발견.

<확대 해석>
박현회가 고양이를 죽였음. 박현회는 폭력적인 인물.

<이후 행보>
3일전 월요일-새끼 고양이들을 박현회네 검은 봉투에 옮겨 담음. 이후로 쭉.
오늘-내게 찾아와 의뢰함.


‘김옥영은 고양이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근 3일간 새끼 고양이 시체를 옮겨 담았다. 박현회를 악인으로 포장해 내가 끝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경고를 했는데도 의뢰를 했다는 건 가족이니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겠다. 그런 생각이었나. …어지간하군. 그래도 시도는 나쁘지 않았어. 솔직히 지금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박현회니까. 박현회는 왜 그런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한 거지? 단지 귀찮아서라고 하기에는….’

나는 수첩을 도로 덮었다. 그리곤 방금 전 박현회의 주장을 상기했다.

“빤한 거 아니요? 돈도 없는 여편네. 지 욕심 못 버려선 늙고 병든 애들을 찌르고, 머리를 으깨는 거지.”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옮겨 담은 시체는 아사한 새끼들로 추정된다. 그럼 남은 성체 두 마리를 담은 건 박현회가 된다는 건데….

나는 손을 뻗어 피를 토한 성체들을 쓰다듬어봤다. 둘 다 갈빗대와 다리가 으스러져있었다. 무거운 것으로 깔고 뭉갰거나 내동댕이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까부터 뒤에서 혼자 조잘대고 있던 청소부에게 말했다.

“그만, 그만요. 김옥영 씨 얘기는 그만하면 됐어요. 그것보다 얘들 얘기나 좀 해주세요.”

“에? 얘들? 고양이 시체요?”

“예, 이전에도 가끔 본 적 있으시죠? 검은 봉투에 들어있는 거.”

“지금까지 뭘 들은 거래요. 걔들은 그 여자가 넣었…”

“그건 새끼들 얘기잖아요. 걔들 말고 다 큰애들이요. 김옥영 씨가 봉투 뒤지기 전에도 종종 나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아… 그 얘기였어요? 그건 그러니까….”

청소부가 갑자기 말끝을 늘였다. 기다려도 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청소부를 바라봤다. 그는 검은자위를 느리게 굴리더니 탐탁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예, 형님 집은 뭐,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고양이를 기르진 않아요.”

“저는 그걸 여쭙는 게 아닌데요.”

그러자 청소부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예, 뭐, 솔직히 형님네도 고양이 시체가 들어있던 걸 봤어요. 진짜 간간히요.”

“그런데 죽이진 않았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기르지도 않는데 어떻게 죽인답니까. 끽해봐야 쥐약이나 퍼먹고 죽은 길고양이들이겠지. 봐요, 팔다리도 멀쩡히 붙어 있잖아. 그리고 까놓고 말해 형님은 그럴 사람도 아니에요.”

“예, 어련히 그러시겠죠.”

이거야 원 누가 편집증인 건지. 하등 쓸모없는 편들어주기에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 굳이 쓸모를 따진다면 차라리 이따금 보인 이 약포장지들이 더 쓸모가 있겠지. 개봉하지 않은 김옥영의 약 포장지들. 다른 쓰레기 더미에서 분명 비슷한 걸 봤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였지. 무시하는 투로 답하자 청소부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진짜라니까요?”

“예, 압니다. 진짜인 거.”

“환장하겠네, 증말로. 아니, 경찰이면 신상 조회 같은 것도 할 수 있잖아요. 아니에요?”

“있죠.”

“그럼 한번 연락해보세요. 우리 동네에 정신병원 다니는 거 그 아줌마랑 형수밖에 없는데. 그런 데 다니는 사람이면 이상한 게 당연한 거 아니요? 예?”

손이 움찔했다. 기억났다. 나는 황급히 검은 봉투를 다시 뒤집어엎었다.

“어우, 속 터져. 아님 직접 만나보던가. 고양이 얘기만 나오면 발광을 해대는데 잠깐만 얘기해도 알 수 있을 걸요? 시간도 봐, 마침 좀 있으면 쓰레기 버리러 나올 시간이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검은 봉투 속에선 박현회의 아내, 김선의의 약 봉투가 도로 나왔다. 한 움큼의 빈 약 봉지들과 복약 설명서였다. 복약 설명서에 적힌 약은 항우울제, 위장 보호제, 인지기능 개선제, 수면제였다. 이 중 항우울제와 위장 보호제, 수면제는 김옥영의 약 포장지에 담긴 약과 같다. 처방 병원 또한 같았다.

‘김옥영이 처방받은 것 중 항정신병제는 없어. …김옥영의 애착은 최근 도를 넘었다, 약도 먹지 않았다. …역시 김옥영이 편집증을 앓는다면 근래에 발현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은데. 편집증은 상담 치료부터 권하는 편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그건 왜 안 보이는 거지?’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널브러진 시체와 쓰레기들을 다시금 살펴봤다. 변한 건 없다. 치약, 칫솔, 화장실 휴지, 식품, 일회용품, 때 탄 지능 발달 완구. 그리고 약 봉투. 이 방대한 양의 쓰레기 중에는 박현회 네 집에서 꼭 나와야 할 쓰레기 하나가 빠져있었다. 어째 뒷맛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김옥영 씨는 언제 나온대요?”

“예? 뭐가 언제요?”

“마침 쓰레기 버리러 나올 시간이라면서요.”

“…안 간다면서요?”

“알아는 두게요.”

그는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밤 8시 언저리에 가면 될 거에요.”

루틴이 있다더니 김옥영도 마찬가지였나. 그럼 쓰레기를 버리는 순서는 다방주인-박현회-김옥영 순이겠군.

헌데 왜일까. 지금에 와서조차 나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만에 하나 박현회가 그런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한들 그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여기서도 고양이를 기른답니까?”

쓰레기를 모두 정리했을 쯤 내 옆으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노란 고양이 보다 약간 작았다. 청소부는 반갑다는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얘가 걔예요. 그 아줌마가 뒤지던 봉투에서 나온 애. 얜 3일 전에 왔는데 용케 살아있네.”

‘얘도 3일전….’

고양이는 일그러져가는 내 얼굴을 보더니 놀라 달아났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이제 가게요?”

“예, 덕분에 나름 명분도 생겼으니까요.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은 직접 확인해봐야겠죠.”

“그지? 역시 그 아줌마지? 내가 생각해도 그 아줌마 말고는 없어. 아,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내 얘긴 하지 마시고. 시달리기 싫으니까. …아 거, 바람 참.”

청소부가 제멋대로 호응했다. 칼바람이 강해져간다. 그래서일까. 또렷해진 바람 소리는 어째 비명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역시 물어봐야겠다. 나는 관사로 돌아가던 청소부를 불러 세웠다.

“아, 선생님. 귀찮게 해서 죄송한데 하나만 더 여쭤봅시다. 제가 좀 생각이 많은 편이라. 다름이 아니라 박현회 씨가 고지식한 사람인 건 알겠거든요. 남들 눈치도 많이 보고. …그렇게 째려보지 마시고요. 순전히 궁금해서 여쭙는 거니까. 아무튼 제가 유산 얘기를 잠깐 들어서요. 그 이후로 아내 분이 칩거를 시작했다고. 혹시 박현회 씨가 자식 문제로 밖에서 신세 한탄을 했다거나, 아내를 욕보이신 적이 있나요? 아니, 뭐 워낙에 옛날 분이니까요. …그걸 지금 왜 묻느냐고요? 그건 개인적인 거라 말씀드리기 좀 그러네요. 그래서 대답은요?”



***마지막 탐문-김옥영?

어둑한 나무 그늘 아래 뉴 포터 한 대가 숨어있다. 오후 7시 55분. 다방 주인이 방금 쓰레기를 버렸으니 이제 박현회 차례였다. 나는 잠시 청소부가 덧붙인 말을 되새김질 해봤다.

“몇 번 싸우긴 했을 걸요. 집밖으로 우는 소리도 몇 번 들렸으니. 그래도 누구마냥 이혼은 안 했잖아? 애 못 낳았다고 새장가 간 것도 아니고. 두 집 살림을 한 것도 아니면 할 건 다 한 거지. 지금은 몰라도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고.”

괜한 의심은 거두라는 투였다. 그 말을 들은 난 다른 가정을 세워보았다.

‘박현회는 아내를 증오하고 있다. 자식을 갖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50년대 생인 그는 남성은 노동력, 여성은 출산으로 가치를 평가받던 시대를 살아왔다. 그의 성격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아내에게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의 아내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것도 이해는 간다. 아니, 갇혀 있었다고 표현해야 옳겠지. 벗어나도 상황이 나아질 거란 확신이 없었을 테니. 가까운 예로 김옥영처럼 반 고립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다만 이런 가정은 박현회가 그런 인물이라는 전제에서만 성립했다. 즉, 지금의 가정은 완전한 허구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극악의 가정을 세울 수밖에는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쓰레기장에서 나와야 할 게 나오지 않았으니까.

‘나온다.’

오후 7시 58분. 녹슨 철제 대문 소리가 얕게 울려 퍼졌다. 나는 핸들 위에 엎드린 채 초점을 조절했다. 박현회였다. 오른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있었다. 느릿한 걸음은 수거장을 향하더니 잠시 멈춰 서서 오른쪽을 돌아봤다. 김옥영의 자택. 불은 꺼져있다. 그는 쓰레기만 사뿐 내려놓곤 자택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30분.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건만 김옥영은 나타나질 않았다. 내 예상이 빗나간 건가. 아니면 혹시….

불안했다. 나는 차량에서 내려 수거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고양이를 옮기고 있어야 할 김옥영을 대신해 검은 봉투를 풀어보았다. 속에는 상처 난 광대나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헌데나물만으로 이렇게 무거울 수가 있나. 문득 손잡이가 가늘게 말려 있는 게 눈에 띠었다. 나는 손잡이를 반대로 돌려봤다. 그러자 봉투가 두 장으로 분리되며 내용물이 쏟아졌다.

“….”

고양이 시체다. 입가에는 피가 묻어있다. 털을 더듬으니 다른 시체에는 없던 칼자국이 드러났다. 횟수는 대략 열 번. 치아가 빠득거렸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콕 집어말 할 순 없다. 다만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은 분명했다. 박현회를 만나야하는 것. 나는 그를 쫓아 곧장 그의 집으로 달렸다.

박현회의 집은 붉은 벽돌로 된 허름한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문이랍시고 달아놓은 쇠문도 다를 건 없었다. 삭을 대로 삭은 터라 손만 닿아도 쇳가루가 떨어졌고, 틀은 기울어져 아귀가 맞지 않았다. 걸쇠를 걸어야 할 구멍엔 쇠막대 하나가 덩그러니 끼어 있었는데, 맞물리지 않는 문틀 덕에 여간해선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매달려봐야 시간 낭비다. 나는 담벼락을 타고 푹신한 텃밭 위로 뛰어넘기로 했다. 그리고 발끝이 지면에 닿은 순간, 나는 중심을 잃고 말았다.

아.

짧은 신음 한 번. 발끝에서 불규칙한 질감이 느껴졌다. 난 외투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내 지면을 서서히 밝혔다. 작물이 없는데도 흙의 높낮이가 눈에 띠게 다르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귓구멍은 불규칙한 숨소리가 빠르게 차오른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거칠게 갈퀴질을 해댔다. 그리고 세상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이런 시발….”

이번엔 여자의 시체다. 부패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코와 입술, 귀가 불규칙하게 뜯겨 나가 있었고, 입안에는 토사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차게 식은 몸에 외상이라곤 한 가지가 전부였다. 자상. 그녀의 갈빗대에선 대략 2, 3cm 지름의 칼자국이 다섯 대, 복부에선 그보다 약간 큰 지름의 깔끔한 칼자국이 세 대 나왔다.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두부에 칼을 찔러 넣은 것 같은 모양새로.

하, 아무래도 난 정말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짤랑이는 체인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누구요?”

박현회였다. 그는 문 틈새로 좁다란 동공을 굴려가며 위아래로 나를 흘겼다.

“뭐요, 돌아간 거 아니었소?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요?”

“문 좀 열어주시죠.”

“왜요? 뭐 때문에 그러는데.”

“얘기할 게 있어서요. 아까 저 가고 김옥영 씨 만났죠? 만나서 제 얘기도 한 것 같은데.”

“…예, 그런데 말해줄 거라니.”

“여기서는 좀 그래요. 들어가서 말하죠.”

“아니, 아니. 여기서 얘기할 거 아니면 그냥 가쇼.”

“그러지 말고 잠깐이면 돼요.”

“할 말 없으니까 나가라고.”

박현회가 억지로 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문 틈새로 신발을 욱여넣었다.

“나가라는 말 안 들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경찰 부를….”

“알고 있었죠? 김옥영 씨가 고양이 죽인 적 없다는 거.”

“뭐?”

나는 턱짓으로 마당을 가리키며 읊조렸다.

“괜히 소란 피우지 말자고요. 그쪽도 그러는 게 더 좋잖아요.”

정적이다. 박현회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치켜봤다. 그리곤 집안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이중 잠금 장치를 풀어주었다.

현관에 놓인 여섯 켤레의 신발. 여성용 사이즈 넷에 남성용 둘이다. 말끔한 여성용에 반해 남성용 신발은 전체적으로 헤져있었다. 그 안으로 큰방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문은 닫혀있었다. 누르스름한 벽지는 스크래치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고양이 따윈 들인 적 없다고 선전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아직 신고는 안 했으니까.”

나는 신발을 벗고 좌측 거실로 향했다. 은색의 CRT TV 한 대와 안락의자 두 대가 마주 보고 있었다. TV 위로는 비디오카세트가, 오른쪽으로는 테이프 보관함과 책장이 일렬로 붙어 있다. 다큐멘터리, 시사, 예능, 영화와 만화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쟤가 왜 신고를 안 한 거지. 그게 궁금하시죠?”

내가 말하며 현관의 박현회를 지나쳤다. 걸음은 부엌을 향했다.

“저요, 범죄자들한테 가족을 잃었거든요. 중학생 때 한 번, 경찰이 되고서 한 번.”

“갑자기 무슨 헛소리요?”

우측 벽면에 붙은 정사각형의 식탁. 그 옆으로는 아까 본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등받이에는 허리띠가 여럿 걸쳐있다. 나는 식탁을 훑곤 싱크대로 갔다.

“아까 얘기한 거 기억해요? 경찰을 관뒀다고. 그게 그 일 때문이에요. 못 참아서. 두 번째를 못 참았거든요. 재현 현장에서 놈이 실소를 하는데 열이 확 뻗쳐서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병신이 돼 있더라고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범죄자만 보면 들끓던 게.”

싱크대 안에는 밥그릇과 국그릇이 쌓여 있다. 그 옆으로 털 묻은 칼 하나가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 고양이털이었다.

“…순전히 나를 반병신으로 만들고 싶다. 그거로군. 그래서 경찰에 연락도 하지 않은 거고.”

“명분을 만드는 덴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요. 가령 칼 든 살인범을 제압했다는 것처럼.”

나는 칼을 들어 박현회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느다란 눈 틈새로 나를 들였다.

“그래서? 그런 구차한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요? 늙은이 한 명 줘 패려면 진즉 할 수 있었을 텐데.”

“반론이나 좀 들어보려고요.”

“이제와 무슨 반론.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요?”

나는 식탁 의자를 빼내 거실로 돌려 앉았다. 식칼은 식탁 위로 안착했다.

“예, 뭐, 김옥영 씨에 대해선 얼추 궤가 섭니다. 망상 장애가 아니었단 점이나, 경찰이 아닌 저를 찾아온 이유나. 온건한 중재자보단 저 같은 사람이 필요했단 거겠죠. 쓰레기들만 보면 물고 늘어질. 이제와 밝히기 뭣하지만 저 나름 그런 쪽으론 유명했거든요.”

흐릿한 초점은 식칼에 꽂혀 있다. 박현회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박현회가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오늘 아침이었어요. 김옥영 씨가 찾아와서 당신 아내를 들먹인 게. 웬 쓰레기가 아내를 폭행하고 들키지 않으려 꽁꽁 싸맸다고.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죠. 그건 제대로 확인조차 않은, 굴러들어온 명분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김옥영 씨는 요 며칠 고양이 시체를 옮겨 담았을 거예요. 혹여 당신이 도살을 멈추더라도 제가 계속 당신을 의심하고 쫓도록. …박현회 씨. 당신은 분명 김옥영 씨가 그런 기행을 벌이고 있었단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단지 그 이유를 오늘에 와서야 깨친 거지.”

박현회가 안락의자를 돌려 앉았다.

“그래서 아까 그런 말씀을 하신 거잖아요? 고양이를 죽인 건 그 여자다, 라고. 그것 자체는 나름 머리를 잘 쓴 발언이었다고 생각해요. 고양이 도살에는 목격자가 없다. 그게 이번 일의 맹점이기도 하니까요. …이웃들은 모두 내편이다. 이 사내가 매립장에 간다면 종량제 안에 든 시체 하나쯤 발견하지 않겠나. 말 몇 마디로 되레 의심을 전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까 들고 있던 나물 봉투. 그것도 실은 두 장이었죠?”

“….”

“귀찮은 짓을 다 했네요. 칼자국, 다방에서 들은 얘기 때문에 만든 걸 텐데. 그거 제가 다 지어낸 얘기였거든요.”

나는 팔을 돌려 칼을 쥐어들었다. 식탁에 널브러져 있던 약 봉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제가 지금 듣고 싶은 건 다른 얘기니까.”

“또 그 반론 얘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 말입니다. 환자들은 요의를 못 느끼는 지경에 이르죠. 때문에 중증 치매 환자를 모시는 집안에서는 기저귀가 필수에요. 근데 당신네 쓰레기에는 없더군요. 기저귀가요. 느낌이 싸했죠. 설마 김선의 씨는 진즉 죽은 게 아닐까. 실제로 텃밭에선 시체가 나왔고요. 설마 하니 당신이 이제와 아내를 죽인 건 내가 아니라는…, 그따위 반박을 할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죽였소.”

박현회가 콧방귀를 끼었다. 안락의자가 삐걱거리며 앞뒤로 작게 움직였다.

“그래요, 그렇겠죠. 근데 말입니다. 의뢰에 앞서 저는 당신의 동기가 궁금한 겁니다. 도살과 살인에 관한 동기. 누군가 악의를 품으면 거기엔 필시 뒤따르는 이유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생각하기에 따라 당신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일 겁니다.”

나는 왼손 검지를 하나 펼쳤다.

“첫째, 본능적인 혐오감. 그냥 싫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를 죽이고, 아내를 죽였다.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이 명쾌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방금 말했듯 사람이 악의를 품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사이코패스라는 게 말처럼 흔한 경우도 아니고, 또 정황상 말도 안 되거든요. 당신이 정말 사이코패스라면 김옥영이나 여타 이웃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테니. 즉, 당신은 어떻게든 체면이라는 것을 신경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어 나는 중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둘째. 박현회는 가부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간이다. 말보다 폭력이 가깝고, 책임보단 권위에만 집착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그런 짓을 벌인 거다.”

말을 들은 박현회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오른쪽 눈꺼풀이 경련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흔. 그보단 후인가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죠. 당신이 그런 인간이라면 아내에게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위로를 했을까요?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모욕하고 폭력적으로 나왔을 거예요. 노산과 유산의 책임을 오롯이 아내에게 떠넘긴다. 당신은 그런 시대에 자란 그런 인물이었으니 응당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 거죠. 하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싫었고, 아내 분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박현회 씨. 그렇다고 해서 당신 내면에 쌓인 불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불만은 커져갔겠죠. 동시에 불안감도 커져갔을 거예요. 혹시 아내가 도망가면 어떡하지, 폭행 사실이 새어나가면 어떡하지. 그래서 당신은 정한 겁니다. 아내를 집안에 가둬두기로. 그렇게만 한다면 바깥에선 체면을 구길 일도 없고, 집안에서는 계속 불만을 표출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누가 물어도 대충 얼버무리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여태껏 쌓아온 가식적인 이미지 덕에 ‘집사람이 유산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구나.’하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테니.”

한결같이 심드렁한 표정이다. 나는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죠. 고양이 말입니다. 당신은 고양이가 싫어서 죽였던 게 아닙니다. 아내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한 거지. 집안에 가둬둔 밉상스러운 아내가 행복해한다. 나는 불행한데 네가 감히 행복해? 당신은 그게 고깝지 않았던 겁니다. 비슷한 이유로 고양이를 들먹인 김옥영 씨도 싫어한 거고.”

“둘 다 정신 나간 여자였던 것뿐이요.”

“그래요, 당신은 그래서 아내를 죽인 거겠죠.”

짧고 간결한 끄덕임.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식탁 뒤로 손을 뻗었다.

“그로부터 20년. 당신의 이미지 메이킹은 성공적이었을 겁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위해 일까지 그만두었다. 누구나 헌신적이라 생각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3일 전 월요일. 당신이 평소처럼 공공근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일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설 연휴. 친인척들이 다 모이는 명절이지 않습니까. 사람 냄새가 나는 이웃들과는 다르게 당신 집에선 치매 걸린 아내의 신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불현듯 화가 치밀었어요. 이 여자만 아니었으면 나도 남들처럼 자식새끼 낳아 단란하게 잘 살았을 거다. 모든 건 이 여자 때문이다. 이 여자만 아니었어도, 이 여편네만 아니었어도…. 가까스로 다스려온 감정은 마침내 폭발해버렸습니다. 당신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어요. 그리곤 이 칼을 꺼내 아내를 찔렀겠죠. 그간의 분노와 원망을 담아 있는 힘껏, 수십 번을. 숨이 넘어가는 아내였지만 당신은 상관지 않았습니다. 왜냐, 애당초 당신은 아내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을 테니. …아닙니까?”

손을 뻗었다. 칼끝이 박현회를 향해있다. 그는 가볍게 입술 끝을 들어올렸다.

“한 가지 틀린 게 있군. 그건 분노나 원망 같은 게 아니요, 짜증이지. 확 짜증이 나서는 그 칼. 그래, 자네가 지금 그렇게 꽉 쥔 것처럼 그 칼을 가져다 쑤셔댄 것뿐이라고.”

“역시 그랬겠죠. 하지만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수습할 수가 없었고요. 차선책으로 택한 게 텃밭에 시체를 묻는 거였을 거예요. 땅이 얼어 제대로 파묻지도 못한 거겠지만.”

“허면. 뭐 문제 있소?”

문제라. 있다면 많다. 나는 왼손을 들어 얼굴 전면을 쓸어내렸다. 목이 조금 말랐다.

“동기 말입니다. 반론이니 뭐니, 제가 지금처럼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 말마따나 그냥 줘 패면 되는 건데.”

“그게 내 알바요?”

나는 혀를 차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곧게 선 목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집안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것도 한 사람분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약 봉투가 전부였다.

“수면제가 필요했나 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박현회가 얼굴 반쪽을 구겼다. 나는 그의 앞으로 가 아까 확인하지 않은 책장을 열었다. 치매 관련 서적, 인지기능 개선 관련 서적, 동화책, 그림책. 많고 많은 것들 중에도 사진첩은 없었다.

멈칫한 손가락은 위쪽에서부터 차례로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가 유독 바랬다. 안쪽에는 크레파스 낙서가 흐릿하게 번져있었다.

‘고양이는 가벼워서 싫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책을 도로 덮으며 그의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가 차분히 말했다.

“박현회 씨. 자제분이 있는 거죠? 숨겨둔 아들이요.”

엇박자의 호흡과 동공의 확장. 당혹이었다. 나는 식탁 옆에 휠체어를 당겨다 내 옆에 놓았다.

“이번 일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 이 휠체어 말입니다. 당신이 아내를 살해한 것이 월요일이라면, 근 3일간 이 휠체어에 타고 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부끄럽게도 전 휠체어에 타고 있던 게 시체가 아닐까, 하는 망상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 물으신다면 간단합니다. 제가 들었던 신음소리는 확실히 사람이 낸 소리였으니까요. 스피커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또렷한 소리를 녹음해 튼다면 어지간한 믹싱 작업을 해도 소음이 같이 들렸어야 정상이었을 테니. 그리고 또 하나. 외장 스피커를 사용하려면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야 할 텐데, 아직도 피처 폰을 쓰는 당신이 그런 복잡하고 돈이 드는 방식을 생각이나 했을까 싶네요.”

“…쓰 잘 데기 없는 소리 마쇼. 아내는 내가 찔러 죽인 거요.”

박현회의 손등 위로 핏줄이 굵게 올라섰다.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경직됐다.

“그래요, 당신은 분명 제 말에 동조하며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말입니다. 그건 전부 짜 맞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예, 공교롭게도 제가 한 거짓말은 두 가지라는 거예요. 고양이를 죽인 방식과 당신의 동기요. 특히 동기에 관한 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죠. 아…, 너무 급작스러웠나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시네요. 가령 순서의 문제라는 겁니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다. 죽은 사람을 칼로 찌른다.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줄 아십니까? 간단해요. 죽은 사람은 상처가 생겨도 아물지를 않아요. 때문에 사후에 생긴 상처는 금방 분별할 수 있죠. 아내 분 시체는 깨끗했거든요. 두부에 칼집을 낸 것처럼.”

“귀머거리요? 나는 방금 내가 찔러 죽였다고 했어!”

박현회가 안락의자 팔걸이를 내려찍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의 무딘 손을 가리켜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런 손으로는 발버둥치는 사람을 깔끔하게 찌를 수 없어요. 혹여 거동도 못하는 노인이라 발버둥도 못 쳤다. 그런 식의 핑계도 말이 안 됩니다. 그 정도까지 가려면 아내 분께서는 평소 콧줄까지 달고 다니셨을 테니. 아내 분께서는 분명 걷지만 못했을 뿐, 수저를 들거나 할 정도의 근력은 있었을 겁니다. 또 자고 있는 사람을 찔렀다. 그것도 말이 안 되죠. 발버둥도 못 치고 즉사했다 기에는 상처가 하나같이 얕았으니까요. 즉, 당신은 아내를 찔러 죽인 게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죽은 아내를 찔렀다는 얘기가 됩니다.”

“내가 죽였다니까아…!”

박현회의 말끝에 마른기침이 묻어 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112에 문자 신고를 넣었다. 대략 5분. 경찰이 도착하기까지는 그 정도가 걸릴 것이다.

“모종의 이유. 그게 무엇일까. 그리고 아내 분을 대신해 휠체어에 타고 있던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텃밭을 파고 있자니 이번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세 번의 유산과 급작스러운 아내의 칩거, 20년 전 김옥영 씨와의 다툼. 그로부터 파생된 마찰. 그 밖의 정황들. …아, 김옥영 씨는 울음소리를 착각한 거구나. 거기서부터 그렇게 연결된 거구나. 그래요, 박현회 씨. 당신 내외 사이에는 숨겨둔 자식이 있던 겁니다. 묘성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이. 그리고 그 아들이 지금껏 죽은 아내를 대신해 휠체어에 타고 있던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현회 씨.”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박현회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허나 끝내 나온 그의 대답은 반박이 아니었다. “내가 죽였소.”라는 갈라진 한 마디. 듣고 있자니 덩달아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내 분 입안에 토사물이 남아있었습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을 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죠. 구토에 의한 질식사였을 거예요. 3일 전에는 검은 봉투에서 검은 고양이가 나왔고요. 눈이나 코처럼 부드러운 부위만 뜯긴 걸로 봐선 먹이 경쟁에 밀린 그 녀석이 아내 분 얼굴을 뜯어 먹은 거라 생각합니다. 우연찮게 토사물에 남은 수면제 성분에 기절을 했던 거고. …박현회 씨. 평소에도 남몰래 고양이 시체를 치워왔던 거죠? 시체에 익숙했던 터라 그 검은 고양이도 버릇처럼 그냥 넣어버렸을 겁니다. 미관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였소. 아내도 고양이도 내가, 다 내가….”

박현회의 머리가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매립장 고양이들도 외상은 없던 걸요. 입에서 피를 토하는 건 내장이 터졌다는 얘긴데, 저속으로 로드 킬을 당했을 때의 특징이기도 하거든요. 이 동네는 길목이 좁으니까요. 그래서 아내 분의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진, 당신과 고양이 사이에 어떤 연관점이 있는 건지 도무지 가닥을 잡지 못 했어요. 그러니 고양이 도살도 사실 선입견에서 비롯된 걸 테죠. 하필 명절에 고양이 시체가 많이 발견된다는 증언도 단순히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랬던 거고. 당신이 정녕 아무렇게나 도살을 해대는 인간이었다면 검은 고양이, 그 녀석도 도살당했어야 앞뒤가 맞지 않겠습니까.”

김옥영의 집에 불이 켜졌다. 창 너머로 드리운 역광에 박현회의 표정이 사라져갔다. 침묵이었다. 나는 입술을 짓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났다. 썼다.

“…지금부터는 완전한 추론의 영역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얘기지, 당장에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럼에도 저는 감히 추리를 해보려 합니다. 어째서 당신은 살인자가 되어야만 했는가. 그것에 관해서요.”

무거운 걸음은 굳게 잠긴 안 방 문 앞에 멈추었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삭은 목재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20년 전, 당신과 아내 분은 두 번의 유산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원인이었을까요. 아드님께서는 묘성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두 분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했을 겁니다. 아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따가운 시선과 멸시. 그 무게를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두 분은 작심하셨을 겁니다. 바깥에 아이를 내보내느니 사는 동안 이 안에서만이라도 행복하게 살게 해주자고. 때문에 아내 분께서는 집안에 틀어박혀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고, 당신은 집밖에서 묵묵히 생계를 유지했겠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김옥영 씨가 이사를 왔습니다. 다정하게 인사도 건네고, 떡까지 돌리고….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김옥영 씨가 아드님의 울음소리를 고양이 울음소리로 착각하기 전까지는. 힘들게 얻은 자식을 길가에 뛰어다니는 짐승과 비교한다니, 당신은 답지 않게 순간 욱하고 말았습니다. 김옥영 씨와의 갈등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아시다시피 김옥영 씨는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기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그런 김옥영 씨가 보기에 당신은 가족을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렸을 테죠. 하지만 김옥영 씨의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당신을 봐온 말 많은 이웃들은 당신이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가 유지만 됐어도 얼마나 좋았을까요. 야속하게도 세월은 흐르고 말았습니다. 5년 전. 올 것이 오고 만 겁니다. 예, 치매 말입니다. 아드님께서는 기대수명을 훨씬 웃돌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만, 온갖 역경을 거쳐 온 아내 분께서는 이제 건강이 악화될 일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당신이 본업을 그만두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죠. 그럼에도 당신은 계속해서 살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생계를 유지하고자 시작한 게 공공근로였어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길 2년. 아내 분께서는 이제 거동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치매 말기에 접어든 겁니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손에 꼽을 정도였을 거예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있었습니다. 박현회 씨께서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으니까요.”

기다려도 반응은 없다. 나는 재차 노크를 해보았다. 똑, 똑, 똑. 세 번의 목탁음. 안에서는 그제야 작게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박현회 씨는 아드님을 믿고 자리를 비워왔을 겁니다. 공공근로를 시작한 이래로 쭉 그래왔을 테니 그날도 문제없을 거라 여기셨던 거죠. 하지만 3일전, 일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 분께서 구토를 하신 채 돌아가신 겁니다. 그게 침대 위인지, 식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고 당시 집안에 아드님이 함께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당신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당장 신고를 할지, 아니면 아내의 죽음을 숨겨야 할지. …이내 당신은 신고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겁이 났으니까요. 누구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아내를 죽였다, 또 누구는 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에 아내가 자살한 거다. 아드님은 온갖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게 불 보듯 뻔했으니 말입니다. 그랬다간 그간 아내분과 감내한 노력이 모두 허투로 돌아가 버리지 않겠습니까.”

안방 문이 열렸다. 안에선 머리가 작고 갸름한 턱을 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작은 체구에 다리가 꺾여 걸음걸이에는 힘이 없었다. 묘성증후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멍한 표정의 남자는 나를 발견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아으.” 하는 신음 한 번. 나는 남자에게 목례를 건네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박현회 옆 자리에 앉아 몸을 기댔다. 진한 눈썹을 보자니 영락없는 부자지간이었다.

“당신은 다짐했을 겁니다. 아버지로서 차라리 내가 죄인이 돼 이목이라도 돌리겠다고. 그리곤 곧장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아내분의 몸을 찔렀을 거예요. 악의가 가득 담긴 것처럼 보이려 갈빗대와 복부를 여러 번 찔렀겠죠. 그렇담 이제 당신께 남은 문제는 두 가지뿐입니다. 수면제 성분을 지우는 것과 살인의 명분을 만들어내는 것. 당신은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를 텃밭에 파묻었습니다. 날이 풀리면 내장이 썩을 테니 그때까지만 아드님을 대역으로 쓰자는 생각이었겠죠.”

남자가 “아으.”하는 소리를 내며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오른손을 흔들었다. 좀처럼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명분은 해결하기 쉬웠을 겁니다. 마침 옆집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김옥영 씨를 필두로 악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던 거예요. 가부장적이자 시대착오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을 숨긴 악인. 그런 극악의 인간상으로.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다방에 앉아 얌전히 시간만 보내면 되는 겁니다. 차분히 그리고 서서히, 악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올리는 거예요.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생겼….”

“그만. 이제 그만 됐소.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자네 말이 다 맞으니까 그만해도 된다고.”

박현회가 눈을 감았다. 주름진 눈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의 답을 기다렸다. 한참.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짓눌러둔 숨을 조금이나마 토해낼 수 있었다.

“…자네 말대로요. 거기서 문제가 생겼던 거지. 자네 말처럼 내가 예상한 기간은 올 여름까지였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여름까지는 버텨야 했다는 말이요. 하지만 그 여자가 그렇게 빨리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어. 이번 일은 이제 막 시작이었으니.”

“벨트라도 안했다면 덜 수상하지 않았을까요.”

박현회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빼빼 마른 손이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들은 휠체어에 익숙지 않소. 수면제를 먹였다곤 해도 잠깐이지. 내성이 생겨 발버둥이라도 쳤다간 크게 다쳤을지 모를 일이요. 옷이야 어째 같이 쓰던 말이요.”

안방을 쳐다봤다. 옷장에 많은 옷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체격에 맞는 옷은 보이질 않았다. 신발이나 옷이나 박현회는 자신에게 투자한 일이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수면제도 그래서 많았던 거군요. 아드님 때문에.”

박현회가 짧게 끄덕였다.

“아내는 유산 이후 우울증을 앓아왔소.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더니 몇 해 전부턴 잠도 제대로 못자는 지경에 이르렀지. 그럴 때마다 잃어버렸다느니 쏟았다느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처방받아 모아온 거요. …이보시오, 총각. 내 얼굴을 좀 봐주오. 나이가 몇 인 것 같소? 예순? 아니, 일흔은 진즉 넘었어. 반면 치매에 걸린 아내는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았고, 아들은 힘도 세졌지. 이런 거라도 먹이지 않으면 나는 도무지, 도무지 내 가족을 감당할 수 없었다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하면 안 되겠소? 아니, 내 사정을 훤히 아니까 부탁이요. 제발 부탁이니 이번 한번만 눈을 감아주면 안 되는 거요? 내 미친 사람만 되면 옆집 여자도 나쁜 인간이 될 일은 없잖소. 내가 사죄도 하고, 자수도 할 테니 이번 여름까지만 눈을 감아주쇼.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는 거요. 내 뭐든 해줄 테니 조금, 아주 조금만….”

옅은 흐느낌이 전해졌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계십니까.”

때마침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일흔을 넘은 노인으로 도주 우려가 없다. 집안에 묶어둘 수 있다. 그러니 사이렌은 키지 말아 달라. 막무가내인 요구에 경찰이 응해주었나 보다. 문 밖에 사이렌 소리는 없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 경찰을 들였다.

“제가 신고자입니다.”

하나, 둘 들어오는 건장한 경찰들을 보며 박현회의 아들이 곧 울음을 터뜨렸다. 더는 무를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걸까. 박현회도 내게 더 이상 어떠한 청도 건네지 않았다. 단지 그의 가늘고 무딘 양손이 겁먹은 아들을 감싸 안을 뿐이었다. 마치 하나의 무겁고도 거대한 세상을 감싸 안은 것처럼 견고하면서도, 애틋하게.

결혼은 불행이요, 가족은 짐이다. 글쎄, 나는 모르겠다. 결혼 생활이 불행으로 향하는 길이고, 가족이 짐이기만 할 뿐이라면, 박현회와 김옥영, 이 두 사람이 악인이란 오명을 짊어질 각오로 희생을 자처할 이유가 있었을까. 겹겹이 쌓이는 경찰들의 질문 세례에도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집 안팎으로 번져 오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재판이 열렸다. 법원에서는 박현회 일가의 사정을 감안해 비공개 재판을 허가했다. 부검과 심문, 재판에 이르기까지 많은 검증 과정이 있었지만 내 추리에 크게 엇나간 부분은 없었다. 다만 내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하나 남아있었다. 박현회의 아내 김선의. 그녀의 죽음은 과연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그 부분에 관해선 구태여 더 파고들지 않았다. 무분별한 악의로 누군가를 사지로 내모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니.

재판이 끝나고 박현회는 아들과 함께 사무실을 찾아왔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준 것과 생활보조금을 알아봐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 차였다. 나아가 편집증 치료를 권유받은 김옥영과의 관계회복에 관한 것까지.

찻잔을 비운 박현회는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좋을 동기에 왜 그렇게 집착했던 거냐고. 나는 답했다. 그날 박현회가 그랬던 것처럼.

“굳이 말하자면 그래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길 포기하는 순간, 그건 악인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된다고. 뭐, 제 얘기는 이정도만 해둘까요? 더 길어져봤자 장황해지기만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