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세비야의 검은 백조

플라멩코 공연을 보다

by 양옙히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면 배려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여행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리셉션에 작은 종이가 붙어있었다.

"쿠킹 클래스 : 참가비 4유로. 저녁을 새롭게 즐겨보세요."


5천 원 남짓한 돈으로 숙소 사람들끼리 스페인의 대표 음식인 빠에야를 함께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솔깃했다.

당연히 참가를 희망했고, 내일 저녁 4시까지 숙소로 들어오면 된다고 스태프는 말해줬다.


다음날, 세비야 곳곳을 누볐다. 사실 도시가 그렇게 크진 않아서 모두 도보로 다녔다.

다리가 아팠지만 하루 종일 들떠있었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표적인 촬영지 중 하나였던 세비야의 알카사르를 갔고, 저녁에는 제대로 된 빠에야를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알카사르를 돌아보며 "그래 여기서 그 장면을 찍었겠다"하고 마음이 더욱 붕 떴는데,

대성당의 종탑을 올라 차가운 바람을 맞고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세비야를 눈에 넣기 시작했다.


IMG_4406_사본.jpg ▲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
IMG_4316_사본.jpg ▲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빠에야.

4시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층에 내려가 사람들을 기다렸다.

홍콩,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모여 큰 솥 앞에서 지구촌을 이뤘다.

오늘의 쿠킹 클래스 강사라며 한 스태프가 8명에게 각각 임무를 줬는데, 나는 파프리카를 다듬는 막중한 임무를 받았다. 각자가 재료를 손질하고 웃고 떠드는 사이, 스태프는 죽처럼 생긴 밥을 가져왔고, 솥에 올리며 사람들에게 재료를 넣고 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빠에야가 완성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스와 향신료를 붓고, 팔팔 끓으며 졸아들기를 기다리면 됐다. 그 사이, 지구촌은 끈끈해졌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익살스럽게 "North, South?"를 묻는 이 뻔한 외국인들에게 "North"라고 받아치며 함께 접시를 날랐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홍콩 사람이 한국인들은 정말 잘 놀고 술을 잘 마신다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큰 소리를 냈다.

다른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실 호스텔에서 제공된 음료는 물이 다여서, 빠에야를 먹으면서 맥주가 조금 생각났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IMG_4444_사본.jpg ▲ 스페인 광장 앞에서 봤던 플라멩코 공연. 스페인을 떠나기 전에 꼭 다시 보고 싶어 진 계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플라멩코를 본 적이 있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유럽에 가기 전 조사한 바로는, 플라멩코 공연은 꽤나 비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싼 곳이 있는지 알아보는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르헨티나 친구가 (당시 98년생, 19살이었다) 자기가 가본 술집의 이야기를 해줬다. 술집에서 공연이 열리는데, 맥주 한 잔을 시키면 그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웠다. 비용이 저렴한 것도 좋았는데, 특별한 공연이 될 것 같았다.

모두에게 함께 갈 것을 제안했고, 홍콩 사람을 빼고 모두 가겠다고 하여, 함께 2차로 한 펍에 들러 술을 마신 뒤 아르헨티나 친구가 가본 술집을 향했다.


IMG_4618_사본.jpg ▲ 술집의 공연장. 저 작은 나무판자 위에서 탭댄스와 플라멩코를 한다.
IMG_4614_사본.jpg ▲ 술집의 풍경.


쿠킹 클래스에 참여를 하지 않았던 남매에게도 좋은 기회를 알려줘, 함께 했다.

술집은 빨갛고, 파랬다. 작은 공연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별다른 안주 없이 뒤편에 마련된 바에서 술을 사 자리에 앉았다. 아니, 자리에 머물렀을 뿐 공연이 고조되면 테이블에도 뛰어 올라가 같이 춤을 췄다.


열정적인 기타 소리와 캐스터네츠 소리는 여자 무용수의 구두가 나무판자에 닿을 때마다 내는 소리와 함께 심장을 울렸다. 하늘하늘했던 치마폭이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고, 남자 무용수의 노랫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 발을 굴렸다.

멋진 화합이었다. 무용수와 함께 합주를 한 기분이 들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는 어려웠다. 다들 그랬다. 자연스럽게 한 클럽을 향했고, 조금 더 술자리가 이어지고서야 숙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남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시 못 볼 줄 알고 찔끔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음 도시는 어디냐는 말에 그라나다로 갈 것이라 했더니, 건너편에 있던 동양 여자가 부산 사투리로 "저도 가는데요?!"라고 했다. 채은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남매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 좋아서, 그녀에게 괜찮다면 그라나다에서 밥이나 먹자고 말했다. 한국말이 들리자 어디서 또 한국인이 나타났다. 바르셀로나에서 짐가방을 소매치기당해서 핸드폰이랑 온갖 서류들을 다시 구하고 있다며, 조심해서 다니라는 조언을 해줬다. 금희 누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면 배려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여행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에 이 모든 인연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시작은 모두 세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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