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여행_0003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더위가 계속된다. 입추가 지나고 곧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기대를 하기에는 이르다. 적도의 더운 공기가 밀어 올려져 북측의 찬 기류와 대치하는 전선을 만들어 비를 내리기 시작한다. 몇 년 동안 그랬듯 천둥, 번개를 동반하는 집중호우가 몇 칠째 내리고 있다. 어제저녁에도 10시가 되어 잠들었던 첫째 녀석이 창문 밖이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들려서 무섭다고 거실로 나와 읽던 책에 급히 책갈피를 꽂고 잠을 재우러 갔다. 결국 일찍 잠드는 걸 선택했지만 그 덕분에 아침 몸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오늘은 푸들 한 선생님의 문화센터 포크기타 수업이 있다.
“안녕하세요”
“어떤 곡 연습해요?”
“요즘 배운 곡 말고 재즈 곡을 해 보고 싶어요”
한 선생이 교실 문으로 들어서며 여 반장에게 말을 건다. 재즈라.. 곧 여기저기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시원한 가을공기와 좀 더 자유로움이 묻어 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일 터이다. 잠시 여느 세월의 가을들을 문득 회상하며 노라존스의 come away with me 노래를 떠올려 본다. 그 가을이 나를 어디로 항상 데리고 이끌었던 그때의 추억과 기다림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비 내리는 것 보면 무서워요? 그렇죠? 뭐 피해보거나 하신 거 있으세요?”
“송도에서 청라 가는 지하도로 아시죠? 무서워 죽겠어요!. 혹시 물이 차면 큰일인데...”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지하도로를 몇 번 지날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경험한 운전자들 만의 몫이다.
“오늘은 지난주 다시 연습한 ‘먼지가 되어’의 후렴부를 배울게요”
자주 싱어롱으로 연주했던 부분이다. 익숙한 멜로디 부분의 스트로크를 배운다니 별 감흥은 없으리라 짐작하며 푸들 선생을 쳐다본다. 보드에 그려지는 음표와 음을 쪼개어 스트로크를 그려 기타 연주의 스트로크 내림, 올림 방향이 그려진다. 반복되는 4박자의 16마디가 그려지고 곧 8마디마다 반복되는 것을 알아낸다. 천천히 반복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은 아니기에 쉽게 익숙해진다.
“이 곡은 템포가 어떤 거 같아요?”
“이 곡은 빠른 템포가 아니라 중간 정도, 미디엄 템포 곡이에요”
한 선생이 돌아가며 연주의 박자와 리듬을 봐주고 내 차례가 되었다.
“한번 해 보세요”
피크를 들고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손가락으로 박자에 맞추어 연주를 해 준다.
“아 박자는 맞는데... 기타 솔로 연주로 이 노래를 부른다는 건 엑센트를 주는 부분에서 드럼비트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강하게 쳐 주는 부분을 구별해 줘야 해요. 그리고 여러분!, 기타를 보세요 보시면 기타 줄 위 4,5,6번 줄이 아래 1,2,3번 줄이 있지요? 소리를 강하게 엑센트를 주려면 1,2번 줄 부분을 쳐 줘서 엑센트 효과가 나도록 해야죠. 곡의 리듬이 같은 강세로 이어지면 밋밋해져서 곡이 살지 않아요.”
곡을 연주한다는 건 어찌 되었든 곡의 분위기 가사, 또는 연주자의 해석(의도, 모티브)을 좀 섞여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기타 연주는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 연주를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나 자신의 어떤 모습들을 발견하여 나타내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홀로 연습하는 여러 곡들을 통해서도 혼자만의 상상으로 밴드의 음악, 오케스트라의 공연 속의 동떨어진 기타 섹션의 연주를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쉼 취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creep 연습해야 되는데...”
“creep은 아름답고 조용한 곡이 아니에요 원래 밴드곡으로 알려졌는데, 기타 솔로 곡도 있어요. 한번 들어보시고 들어보면 I’m a creep ~~~ 악~~~!!! 이렇게 불러야 제 맛이에요.”
“약간 기타 솔로버전은 담백하고 꾸밈없이 시작하다가 마치 방구석에서 처량하게 부르는 듯하게 막 ‘악~~~~~~’.”
아직까지 creep의 바래코드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고 박자를 쪼개서 푸들 선생이 가르쳐준 부분을 한 주 동안 연습하지 않아 전체 곡을 연습해 보지 않은 상태이다. 시간을 좀 더 들여야 한다. 좀 더 처량해지고 곡의 진면을 마주해 봐야 한다. 노래의 가사가 우울하여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곡은 아니다 점점 자기를 감추고 움츠려 들게 하는 가사이기는 하다.
그 곡에 대한 해석이 나한테는 성공한 한 사람이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I was a creep’하고 부러 외치고 마지막 공연의 노래가 끝나면 웃고 만족한 승리의 얼굴로 관객과 마주 보는 상상을 해 본다. creep이었던 과거로부터 그 자리에 올라와 서 있게 될 때까지...
“기타 배우신지 얼마나 됐어요?”
“아... 저는 1년 조금 안 됐어요.”
“잘 치시는 것 같은데... 어떤 곡 연습하세요? 매일 연습해요?”
앞쪽에 앉은 나보다 10년 정도 나이가 더 있을법한 50대 초반의 1개월 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왠지 그동안 눈팅만 하면서 인사만 건넸는데 앞뒤로 앉다 보니 말 문을 트게 되었다.
“아.. 기본적으로 손가락 크로메틱 연습을 1 플렛부터 끝까지 매일 하셔야 돼요. 그리고 스케일에 따라서 멜로디 연주하시려면 스케일 연습 계속하시고, 또 다르게 연습하는 것도 여러 개 있는데 꾸준히 손가락 크로메틱만 열심히 하셔도 손가락 집는 게 자유로워지니깐 좋아요.”
“와 손가락이 되게 빨리 움직이네 잘 벌려지고!! 그렇구나”
아 좀 귀찮은 느낌이다. 기타를 좀 배우시려고 코드를 집기 시작한 고령의 남성 분한테 걸린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나마 나랑 나이차이가 10년 이내로 말이 좀 통하고 나이 든 꼰대느낌이 나지 않아서 나쁘진 않다.
오늘 수업도 끝이 나고 내일 새벽 부모님 일을 도와 드리려 청주로 야간운전을 해서 바로 내려가야 한다. 지하 2층 주차장을 나서며 나의 경유차를 찾아 나선다.
“잘 들어가세요!~~”
“아 네 들어가세요!~~”
내 차의 앞쪽에 주차된 검은색 벤츠 s클래스에서 유리창이 내리더니 그 앞자리 남자가 웃으며 인사를 보낸다. 매주 참석을 하는 걸 보면 분명 회사원 같지는 않고 여유도 있어 보이는 옷차림과 벤츠를 보니 사업을 하시는 모 사장님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법인차도 내차인 듯 유유히 주차장을 가로질러 간다.
이제 나의 졸고 있는 경유차를 깨울 차례다.
“드드드 드르릉~”
그래 빨리 달리자 2시간 안에 빨리 내려가서 좀 쉬자.
물욕이 없는 아니 가치를 거의 두지 않는 나이지만 2시간 야간운전을 벤츠 s클래스를 타고 유유히 하면 좋을 듯하다. 이런 CR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