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앉아서 / 유복녀
수염 거뭇한 정신연령 다섯 살 어른아이가
구시렁거리며 빨래를 갠다
긴 바지 서너 개
두툼한 티셔츠 몇 장
사각 모양 삼각 모양 팬티와 반팔 러닝셔츠
모양과 크기 색깔도 제각각인 양말이 수두룩
강아지처럼 털썩 퍼질러 앉아서
양손으로 긴 옷가지 부여잡고
들었다 놨다 접었다 폈다 뒤집었다 엎어가며
빨래를 갠다
긴 바지 들고 고민하다 밀어놓고
티셔츠 양 소매 끝 붙잡은 채로
반듯하게 반듯하게 주문 걸어보지만
이리저리 밀리며 늘어나는 옷 주름들
세탁기 돌려 빨래하는 시간보다
시간과 정성 곱절로 들이며
세상 고민 홀로 진 듯
풀 죽은 등덜미
빨래 개키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 어딨느냐며 깔깔 웃다가
나 없는 세상에
저렇게 우두커니 앉아있을 것만 같아
나 또한 그 옆에 덩그러니 앉아
흩어진 옷가지만 맥없이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