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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Oct 30. 2024

김밥집에서 걸려온 전화

미련퉁이 자신에 대한 분개 19화


어제 김밥 사러 갔다가 떠오른 에피소드입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꽤 괜찮은 김밥집이 있다.

일반 김밥인데도 밥보다 계란 지단이 많이 들어있고, 각종 채소가 적절하게 들어있고, 맛도 좋다.

게다가 가격도 4천 원이라 '혜자스럽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김밥집이다.



가끔 그곳에서 김밥을 포장해 오곤 한다. 

배달 대행업체에 등록이 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배달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미리 주문해 놓고 찾으러 간다.


지난 여름날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무덥던 여름날.

갑자기 그곳에서는 파는 매운 김밥을 먹고 싶어 사러 갔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 차 빼고 주차하기가 더 번거로울 것 같아서 양산을 쓰고 걸어갔다.

단 한 줄의 김밥을 사기 위해 그 여름날 그 뙤약볕 아래를 15분이나 걷는 건 몹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갔다.


그렇게 사 온 김밥을 냠냠냠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김밥 꼬투리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두 번씩이나 걸려 온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어서 결국 받았다.


조금 전에 김밥 사 가셨지요?

결제한 카드가 에러가 났는데 다시 오셔서 결제 좀 부탁드려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밥집 주인아주머니였다.

평소의 친절함에 실수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진, 공손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니 어떻게 짜증을 낼 수 있겠는가.


문제는 카드 결제를 위해 그 뙤약볕 아래를 다시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차장으로 갔다가, 달궈진 차를 보니 그냥 걷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냥 걷기로 했다.

무척 더웠다.

아까와는 달리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으니 더 더웠다.

헉헉거리며 도착한 김밥집, 몹시 미안해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괜찮다며 우아하게 웃어주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쳐야 한다.


그런데...

카드 결제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제야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물건값을 지급하는 데는 송금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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