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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구둣가게에는 아저씨가 꽝이라네

씁쓸한 분개 21화

by 완두


집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고, 그곳 3층에 브랜드 구둣가게 네 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가장 신발을 잘 파는 아저씨는 단연 M사 사장님이다.


언제부터 그곳에서 구두를 팔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그 가게를 드나든 지 4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4년 동안 거기서 산 신발이 내 것 십여 켤레, 가족 것 다섯 켤레 정도 된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다 그들을 꼬드겨 사게 만든 신발도 꽤 여러 개니 그곳에서 산 신발이 도합 스무 켤레는 넘을 듯싶다. 특별히 신발이 예쁘거나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 평범한 매장에서 그 정도 신발을 구매했다는 건 내가 얼마나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었는지 증명하는 걸 거다.


내가 그 매장 단골이 된 이유는 판매자인 사장님의 적극성과 친절 때문이었다. 장사 체질, 영업 체질이라는 게 있다면 딱 그 사장님이 떠오를 만큼 장사에 최적화된 분으로 여겨졌다. 흔한 표현대로, 그곳에서 구두를 안 사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산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볐고, 나란히 입점한 한산한 다른 매장들과 비교되곤 했다.


맨 처음 그 매장을 방문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곳을 지나다가 진열된 구두가 눈에 띄어서 들어갔다. 신어 보니 생각만큼 예쁘지 않아 도로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나를 붙잡았다. 그분이 추천해 주는 신발을 이것저것 신어봤지만 딱히 사고 싶은 상품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신발을 살 수는 없는지라 그냥 나오려는데 주인이 90도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


신발 고르느라 고생하셨는데 마음에 드는 제품이 하나도 없다니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고객님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준비해 놓고 기다릴 테니 언제라도 다시 방문해 주세요.


이것은 그 사장님의 말을 두 문장으로 요약한 거고, 실제는 연극을 하는 듯한 말투로 1분 넘게 말했다. 나는 과한 친절을 몹시 불편해하는 부류라 그런 제스처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고나 할까, 암튼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같이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주인의 못다 한 말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매장에서 산 것 아니어도 괜찮으니 수선할 게 있으면 아무거나 다 들고 나오십시오. 구두 밑창 닳은 것, 뒤축 까진 것, 다 수선됩니다. 딸깍딸깍 소리 나는 구두 굽도 소리 안 나는 창으로 바꿔 드립니다. 어떤 신발이든 감쪽같이 고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우리 집 신발장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신발이 떠올랐다. 요즘 구두 수선방이 거의 사라지다 보니 수선을 못 해 신지 못하는 멀쩡한 신발들이 너무 많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내가 그것들을 싸 들고 다른 지역을 갈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아서 어쩌지 못하고 신발장에 처박아둔 것들이다.


며칠 뒤 나는 아끼는 구두 두 켤레와 운동화 하나를 들고 그 매장으로 갔다. 구두는 바닥 창과 뒷굽을 교체하기 위해서였고, 복숭아뼈가 닿아서 불편한 운동화는 어떤 방법으로 수선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신발 한 켤레 구입한 적 없는 내가 딴 곳에서 산 신발을 싸 들고 매장을 방문하는 것은 상당히 뻘쭘한 일이었다. 한껏 위축된 표정으로 신발을 내밀자, 그 아저씨는 전문가답게 수선 방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거래하는 성수동 수선집에 신발을 보내면 감쪽같이 해결될 거라면서 비용도 개인이 고치는 것보다 30% 정도 저렴하다고 했다.


수선비와 택배비를 지불한 뒤 받을 주소를 적어놓고 나오면서, 지난번에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내려놓았던 구두를 다시 신어봤다. 여전히 만족도는 20% 부족했지만, 주인아저씨의 친절이 그 미흡한 부분을 채워주었기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내게 배달된 신발 세 켤레는 정말 마음에 쏙 들게 수선돼 있었다. 구둣가게 사장님 말대로 A급 수선 전문가 맞았다. 나는 수선해야 할 신발 몇 켤레를 더 가지고 그 매장으로 갔고, 간 김에 그 매장 베스트셀러라는 운동화를 하나 더 샀다. 타 매장에 비해 좀 비싼 느낌이 들었지만, 상대방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그 가게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쇼핑하며 그 근처를 지나다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면서 큐빅이 촘촘히 박힌 블링블링한 샌들도 사고, 미끄러지지 않는 바닥재를 사용했다는 부츠도 샀다. 그중 반은 마음에 들어서 산 물건들이고 나머지는 그냥 의리상 산 제품들이다.


그러다 언짢은 일을 겪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곳에서 산 샌들이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아 자꾸 발에 상처를 냈다. 매장에 문의했더니 가지고 나오라고 해서 토요일 오후에 들고나갔다. 그 매장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사장님은 평소대로 열정적으로 그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으므로 조용히 가서 의자에 앉았다. 날 봤을 텐데 눈인사도 하지 않길래 뭐지 싶었지만 바빠서 그럴 거라 이해했다.


고객이 신발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신발을 신어 보는 사이에 내가 가져간 샌들을 내밀었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다리라는 눈짓을 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불편한 부분을 알려주며 맡기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 잠깐 사이에 신발을 신어보던 두 사람이 슬그머니 매장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내게 시선을 돌린 사장님이 말했다.


다른 고객을 응대하고 있을 때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흐름이 끊기면 안 되거든요. 보세요, 손님이 말 거는 사이에 그분들이 나가셨잖아요.


사장님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5분 넘게 나를 훈시했는데,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나무라는 선생님 말투였다. 그분에게 혼난 나는 얼떨결에 죄송하다고 말한 뒤 그곳을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감이 커졌다.


다음에 맡긴 신발을 찾으러 가서도 의례적인 인사만 건넨 뒤 발길을 뚝 끊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면 그 매장을 지나야 했는데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걷거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매장을 지나오면서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그 아저씨 모습을 보았다.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아저씨 얼굴에는 아쉬움이 잔뜩 담겨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라 내가 느꼈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매장의 단골이 되었다. 이전처럼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신발을 사고, 수선도 맡겼다. 그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친절해졌으므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응어리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곳에서 산 스니커즈를 집에 가져와서 보니 양쪽 깔창이 달랐다. 브랜드 로고가 하나는 금색이고 하나는 은색이었다. 금색과 은색이라 둘 다 펄이 들어가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어차피 신으면 별 상관없을 것 같아서 그냥 신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벗어놓을 경우 신발이 짝짝이면 좀 웃길 것 같아 교체하기로 했다. 매장에서 내가 내민 신발을 본 사장님은 몹시 미안해하며 맞는 깔창을 주문해 둘 테니 일주일 후쯤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일주일 뒤인 토요일 오후에 다시 매장으로 갔다. 무슨 행사 기간이라도 되는지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번 일이 생각나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살폈다. 한가할 때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는 바람에 내가 끼어들 틈을 찾기가 힘들었다. 30분 정도 기다리고 있노라니 비로소 가게에 아무 손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재빠르게 그곳으로 들어가 해당 신발을 내밀며 깔창 교체를 요청했다. 내 구두를 받아 든 주인은 신발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분리되지 않는 깔창이라 본사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럴 경우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다른 손님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은 나와의 대화를 마치지도 않고 총알처럼 그들에게로 가 버렸다. 나는 카페로 돌아와 고민한 뒤 그래도 AS를 맡기기로 결정하고 매장으로 다시 갔다. 고객을 응대하고 있던 주인은 곁눈으로 힐끗 나를 바라보더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서랍을 뒤졌다. 그곳에서 뭘 꺼내더니 날 바라보지도 않고 그걸 내게 내밀었다. 마치 푼돈을 쥐어주고 거지를 쫓아내는 듯한 태도로 그가 내민 건 다이소에서 천 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싸구려 깔창이었다.


나는 그걸 받아 나와서 바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 사장님과의 인연도 같이 넣어 버렸다.





요즘도 마트에 갔다가 가끔 그 사장님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분은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날 곁눈질한다. 하지만 다시 그분의 고객이 될 생각이 나는 추호도 없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은 그 사람의 됨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매장에서 신발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그 천부적인 장사꾼에 대한 나만의 작은 저항이다.


이 사진은 본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그냥 어느 블로그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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