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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일상에 웃음 한 꼬집
이러다 일어나며 '음매' 하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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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
Dec 22. 2024
이번 주말에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토요일 수업이 휴강했고, 일요일 약속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틀을 통째로 쉬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틀 동안 거의 누워서 지냈다.
소파에 기대서 옛날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며칠 전 배송받은 책을 읽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졸리면 그대로 잤다.
존경하는 고 신영복 선생님 책에 이렇게 쓰여있다.
"졸리지 않으면 눕지 말라."
하지만 계속 졸리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워있어도 된다고 변명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도 바로 소파에 반 눕듯 기댔다.
더 나아가 누워서 간식을 먹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는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
내가 만일 소가 된다면...
일단 이런 쾌적한 거실이 아닌 외양간으로 쫓겨나겠지.
그 춥고 지저분한 곳에서 하염없이 눈만 껌뻑이게 될 거다.
겨울이라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해 죽을 지경이겠지.
어디선가 기어들어 온 쥐로 인해 밤새도록 공포에 떨지도 몰라.
그러다 봄이 되면 논을 갈러 끌려 나갈 테지.
기운도 없고 일머리도 없어서, 주인에게 잔소리를 듣게 될 게 뻔해.
아마 화가 난 주인은 날 팔아넘기려고 할 거야.
하지만 쓸모없는 나이 든 소를 누가 사겠어?
아무도 날 사지 않아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오겠지.
여물값도 못한다고 늘 구박받을 거야.
그때마다 인간으로 지내던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겠지.
밥 먹고 바로 눕지 말걸,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계속 이렇게 누워 지내다간, 일어나며 '음매'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구박데기 소가 될 생각이 드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일어난 김에 세탁기도 돌리고, 싱크대도 정리했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있다.
아직 소가 안 돼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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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난이도 최상인 딸아이와 난이도 최하인 아들 녀석, 그 둘의 평균값을 내면 대한민국 평균 치쯤 되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23년 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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