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참느라 '환장'할 뻔했던 환장할 만한 풍경!

by 완두


지하철을 타면 늘 책부터 꺼내 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어느 날 성석제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구절구절 너무 웃겨서 지하철 안에서 쏟아지는 웃음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다.

오늘 메일함 정리하다 우연히 그 산문에 대해 쓴 글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메일로 쓴 글이라 좀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그냥 그대로 옮겨보겠다.




저자가 은사를 모시고 남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남원에 들렀답니다.

택시 기사에게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집으로 갑시다"하고 외쳐서 도착한 곳이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어느 얌전한 기와집.


얌전한 간판이 조그맣게 달린 그 기와집 대문이 얌전하게 반 정도 열려 있었고, 그들이 들어서자 얌전하게 생긴 여자가 나와 그들을 대청으로 안내하더라죠.

얌전의 연속에 압도당한 일행이 먼지 하나 없이 반질반질한 마루에서 얌전하게 앉아 있자, 곧 교자상이 차려지고 그 얌전한 부인이 얌전하게 음식을 날라 얌전하게 차리더래요.

그래서 그들도 얌전하게 이것저것 먹는데...


얌전한 매미 울음소리, 마당 한편에 얌전하게 피어 있는 꽃, 처마에서 얌전하게 펼쳐지는 그늘, 얌전하게 부는 바람...

그걸 견딜 수 없는 얌전치 못한 저자는 음식을 먹다 말고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을 질질 끌고 수돗가로 가서 일부러 소리 내어 세수한 다음 화장실을 찾아 뒤꼍으로 돌아갔는데...


거기에 바로 '환장할 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더랍니다.


얌전하게 한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부인이, 얌전하게 풍로에 불을 붙이고, 얌전하게 생긴 부채로 얌전하게 부채질하고 있는데, 숯불 위에 얌전한 석쇠가 놓여 있었고, 석쇠 사이에 고기가 얌전하게 끼여 익어가며 얌전하게 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었대요.

그 풍경을 본 작가가 잠깐 멈추어 서자 그 부인이 저자를 돌아보며 얌전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 부인의 콧등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얌전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더라죠.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맞아, 맞아!"라는 감탄사를 내뱉았답니다.

환장할 만한 풍경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구요.




오래전 제가 즐겨보던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 표지에는 늘 여인들의 얼굴 사진이 흑백으로 실려 있었어요.

그 사진 모두가 독자들에게 인기였지만, 그중 어느 달에 실린 한 여인의 사진은 특히 많은 인기를 얻었죠.

그다음 호에 실린 후기에는 유난히 그 표지 모델에 대한 남성들의 글이 많았던 거로 기억하거든요.


블라우스와 검정 치마를 단정히 입고 삼단 같은 머리는 가지런히 빗어 넘겨 하나로 묶은, 평범하고도 특별한 모습.

제 기억에 아주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자태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더라구요.

날 서지 않은 도도함, 얌전함, 그리고 아련함까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했어요.


아무도 성석제 작가님처럼 '환장'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 사진을 본 남성들 내부에선 말 그대로 '換腸'이 벌어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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