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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02. 2021

영화 <조커> 감상평


01. 

슬펐다.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지만, 관람 종료 후에 든 생각은 ‘슬프다’ 라는 것 뿐이다. 

영화 <조커>가 만들어진 세상이 슬펐다고 해야할까 조커가 만들어져서 슬프다고 해야하는 것일까 

02. 

이 모든 생각을 하기 전에 한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DC는 왜 빌런인 조커를 영화했을까.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이 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만든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을 흉내내어 시장개척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DC는 악당인 조커를 영웅으로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03. 

감독 토드 필립스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갖고옴에 있어 조커가 등장한 시기를 배트맨이 탄생시킨 이전으로 설정한다. 팀버튼의 <배트맨>에서의 조커라는 캐릭터는 조커라는 악당이 되기 전에, 브루스웨인의 부모를 죽인 것인다. 그 이후 배트맨이 먼저 등장한 후에 조커가 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설정된다. 감독의 이런 설정, 히어로와 악당이 없는 고담시의 모습을 가만 들여다 보면 그곳에는 빈익부와 부익부가 존재하는 사회와 그 속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부자들은 자선행사에서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며 웃고, 가난한 이들은 파업과 시위를 이어간다. 

이런 상황속에서 영화 <조커>의 아서 플렉은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나가 이야기한다. 코미디는 아주 주관적인 것이며, 사람들은 언제나 불친절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머레이 그도 자신에게 불친절했다며 그를 총으로 쏴버린다. TV쇼에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조커가 된 아서 플렉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다. 광대를 넘어서 고담시를 대표하는 시민들의 영웅이 된 것이다. 조커가 한 행동과 생각이 훌륭하다는 것이 아님을 시민들은 알았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분노를 들어주고 표현해낼 창구가 필요했을 대중에게 사회적 시스템과 권력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대신 조커라는 인물이 나타나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방식을 찾은 것이다. 일종의 카니발이겠다. 이 후 카니발은 종료된 후 사회는 제 기능을 잃어갔을 것이고 그런 토대의 영양분 속에서 배트맨은 성장하여 등판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고담시의 영웅은 조커였다. 

04. 

아서플렉은 정말 아픈 사람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서플렉은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아서 플렉은 어릴적 머리를 다침으로 인해 이유없이 웃는 병이 생긴다. 하지만 그가 행복해하며 웃었던 적은 없다. 그가 엄마 페니플렉을 죽인 이후에 웃는 것들은 보통 사람들이 웃는 이유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례한 사람들을 죽일수 있는 자유를 찾았고, 행복한 척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서플렉은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는 영화속에서 네번의 상상을 한다. 

머레이 쇼에 나가 머레이와 대화하는 장면이 처음 등장하는 상상이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머레이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인데, 머레이 쇼가 시작되기 전에 슈퍼 쥐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머레이는 그것을 코미디 소재로 사용한다. 뉴스를 보고 난 후에 시작된 프로그램쇼를 보며 머레이와의 만남과 연결지어 상상한 것이다. 그 후에 코미디 클럽의 무대에 선 후에 같은 층 여자와 데이트, 엄마가 쓰러진 후 자신의 곁에 있어준 여자를 상상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토마스 웨인과의 만남후 냉장고에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이 상상하는 장면으로 영화속에 삽입된다. 이 장면 모두 아서플렉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상상하는 장면들이다. 자살이라는 선택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아서플렉의 상황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05. 

영화 <조커>는 중의적이다. 조커는 광대짓을 하는 삐에로의 이미지와 카드게임에선 가장 강력한 패라는 의미를 갖는다. 웃음을 주고 싶어 삐에로 분장을 하며 살아가는 아서에게 고담시는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누구하나 안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그가 고담시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됐다. 

DC는 조커를 배트맨,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처럼 상징적이고 강력한 인물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인물은 팀버튼의 악당 조커가 돈을 뿌리며 카퍼레이드를 하면 그를 추앙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생기던 문제가 지금에도 마찬가지로 문제로 남아있음을 말이다. 

06. 

‘그게 바로 삶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조롱처럼 느껴졌다. 그건 삶이 아니야, 삶을 이루는 것들 중 하나 뿐이지. 삶은 그렇게 짧지 않아라고 답변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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