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독소 獨笑/혼자 웃다>

by 길벗



독소(獨笑/혼자 웃다)

- 정약용


有粟無人食 多男必患飢

達官必憃愚 才者無所施

家室少完福 至道常陵遲

翁嗇子每蕩 婦慧郞必癡

月滿頻値雲 花開風誤之

物物盡如此 獨笑無人知

곡식이 많은 집엔 정작 먹을 사람이 없는데

자식 많은 집에서는 굶주릴까 시름하네

벼슬하는 사람은 우매하기 마련인데

재능 있는 사람은 쓰일 길이 없네

모든 복을 두루 다 갖춘 집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 널리 퍼지지 못하네

아비가 아껴 쓰면 자식이 늘 탕진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이 꼭 어리석다네

달이 둥글게 차오르면 구름이 그 달을 가리기 쉽고

꽃이 피어나면 바람이 그 꽃을 떨군다네

세상만사가 다 그렇고 그런 것

혼자 웃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04년

강진의 유배지에서 쓴 '혼자 웃다'라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며 나 또한 혼자 싱긋이 웃는다.

대학자인 다산도 나랑 비슷하구나,

이어 "모든 복을 두루 다 갖춘 집 드물고"라는 말은

격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어느 집 돈 많은 것 부럽고,

누구네 아들 출세했다니 부럽다.

그 집 부부, 같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부럽다.

그러나 여기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반전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남과 비교할 때는 자기의 사정 중

안 좋은 점만 부각되지만

다른 이들의 사정은 외양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구보다

남의 이목에 신경 쓴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화려한 겉치레 이면에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근심 걱정 없이 잘도 살아가는구나 싶지만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진 듯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웬만큼 살아 보니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한 학자 정약용 본인도 술고래면서

자식들에게 술 많이 마시지 말라,

술 좀 끊으라,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한다.

이 역시 나랑 같아서 웃음 짓게 한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정약용 같은 대학자도 비루한 나도,

잘 사는 집도 못 사는 집도

다 도긴개긴인 것이다.

남 부러워할 것 아니다.

세상에 하찮은 인생도 없고

특별난 인생도 없다.

세상사 어려운 일 있으면

다산의 독소(獨笑)를 떠올리며

크게 한 번 웃고 말 일이다.


SE-a59f55b0-baa8-47a9-bbe9-71d90a529760.jpg?type=w1 여유당(남양주 다산 유적지)
SE-e03dae39-d5e2-400e-81ea-f1fb0c9f9ca6.jpg?type=w1 다산 초당(전남 강진/2013년 10월 사진임)
SE-b9a8a031-9412-483b-bad3-cb8bb3d75f10.jpg?type=w1 다산이 즐겨 찾던 백련사에서 바라본 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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