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참 좋아한다.
겨울이면 마음은 눈 소복 쌓인 고궁이나 왕릉,
백담사나 낙산사, 오대산 선재길 같은 데를 떠돌아다녔다.
어느 해 강원도 영동 지방에
큰 눈이 내렸다는 속보를 접하고
무작정 고속도로를 탔다.
가는 도중 해가 뜨고 날이 푹해져
그새 눈이 녹을 세라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에
제법 힘을 주고 달리기도 했다.
눈이 내리면 좋겠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잿빛 도시가 순백의 도시로 변신하면 좋겠다.
잠시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바꿔 먹는다.
도로 정체와 미끄러운 눈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걸음,
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의 노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내리는 한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들다 보니
눈의 여유와 낭만을 누리는 것이
언감생심이요, 감불생심이다.
하지만 현실에만 매몰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릴 적 신발을 적시고 발을 시리게 했던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
눈 소복 덮인 고향 들판의 하얀 고요.
힘든 삶이었겠지만 눈은
설렘과 마음의 안식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비록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따금 눈이 주는 감성의 호사,
감성의 사치를 누려보면 좋겠다.
눈이 오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함박눈을 쌓아보자.
눈이 시가 되어
가슴에 하얗게 쌓일 것 같은
시 두 편을 소개한다.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그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눈 오는 날
- 이정하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