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 점심에 16명이 모였다. 서울에 사는 사촌들의 모임이다. 나의 형제는 물론 삼촌의 아들딸, 고모의 아들딸 들이다. 모임은 작년에 결성됐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8남매를 두셨으니 친척이 많다.
예전에는 결혼식이 잦아 이렇게 따로 만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결혼 같은 집안 대사도 뜸해 날을 잡아 일 년에 서너 차례 만나기로 한 거다. 이번에는 명절이라 정식 멤버가 아닌 고모 두 분과 고모부들까지 모셨다. 평균 나이는 65세쯤 될까. 올해 칠순인 내가 서열 일곱 번째다. 다들 명절이 예전 같지 않은데, 모처럼 명절을 즐긴다며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이날 분위기 메이커는 두 분 고모부였다. 86세와 82세. 나이가 무색할 만큼 동안인 데다 무엇보다 열정과 기운이 놀라웠다. 특히 86세의 고모부는 모임의 좌장으로서 명절에 나올 만한 고리타분한 덕담 같은 발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아랫사람들한테 많은 점수를 얻으셨을 터다. 뿐만 아니다. 여전히 힘찬 음성에다 소맥부터 시작해 권하는 술을 한 잔도 마다하지 않고, 또 술을 먼저 권하며 조카들에게 스며들고 나아가 분위기를 리드하는 모습은 '건강 백세'의 표상이었다. 나도 고모부 나이에 저럴 수 있을까, 다들 몹시 부러워하고 존경스러운 표정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노년에 건강과 활기를 잃지 않고 나이 태를 안 내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즐길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그런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고모부는 우리에게 재능 기부를 한 거라고. 고모부의 재능 기부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명절다운 명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