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뜨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by 길벗


옛사람들은 달을 좋아했다. 은은하면서도 교교한 달빛.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버지의 달 사랑도 지극했다. 달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고 아버지가 그리우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날에는 소원을 빌기보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달을 찾는다. 구름에 가려져 달이 안 보여도 상관없다. 어느 해 정월 보름날, 달을 옥동자처럼 감싸는 하얀 구름이 너무나 포근해 보여 내가 저세상 아버지 곁으로 가면 내가 구름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품기도 했다. 내가 아버지가 그리울 때 달을 올려다보듯 내 아들도 나를 생각하며 구름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십 년 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동네 살고 계신 삼촌 두 분이 휘영청 둥근달이 떠오르자 형님인 나의 아버지랑 한잔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걸어오고 아버지 역시 달빛에 이끌려 무작정 삼촌댁으로 향하다 서로 길이 어긋난 적이 있었다. 서로가 미리 전화도 넣지 않으셨던 것. 못 만날지라도 달밤에 체조하는 거니 괜찮다 하셨다. 결국 삼 형제가 달밤의 운치를 만끽했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 에피소드는 지금도 우리 집안사람들이 보름달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 추억담이다.


아버지는 보름달 뜨는 날은 달을 잘 볼 수 있는 바닷가 근처로 가족을 데리고 가셨다. 우리가 어릴 때는 월하독작(月下獨酌)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술을 즐기셨는데 아들과의 술자리를 최고로 치셨다. 아버지와 형님과 나, 이렇게 삼 부자가 한잔할 때면 술을 드시는 도중 일부러 몇 번을 나가셨다. 아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그래야만이 그 좋은 자리가 길어지니까. 산행과 여행도 아버지가 즐겨하셨던 취미생활이었다. 특히 가족과의 나들이는 삶의 큰 즐거움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60년대 그 열악했던 시절에도, 당시 여행이나 나들이란 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거의 휴일마다 돌아다녔던 것 같다. 차편이 없어도 솥과 냄비, 과일 등을 각자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어깨에 둘러메고 두메산골 고향땅 여기저기를 가족과 함께 하셨다



부자간은 닮게 마련인지 내가 그렇다. 달력에 보름날은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날만큼은 다른 약속도 안 잡는다. 달빛이 비치는 강가를 거닐기도 하고 달빛이 쏟아지는 골목길을 배회하기도 한다. 나 역시 술을 즐긴다. 저녁 반주도 그렇고 특히 아들과 술 한잔 나눌 때가 가장 뿌듯한 시간이다. 가족 여행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친지들은 이야기한다. 소주 한 잔을 세 번에 나누어 꺾는 것까지 술 마시는 모습도 아버지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당신의 아들은 물론 그 아들의 아들, 곧 내 아들이나 조카들 이렇게 삼대가 술을 같이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오늘따라 아버지가 바라보셨던 달도 휘영청 밝다. 달에는 토끼 대신 기분 좋게 술 한잔하신 아버지의 인자한 얼굴이 희미하게나마 보일 듯 말 듯하다. 아버지가 그립다. 정채봉의 시 <어머니의 휴가>처럼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하루 휴가를 얻어 내려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해 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보여 드리고 싶은 것도 많은데... 꿈속에서라도 꼭 뵙고 싶다.


SE-261786fd-2823-4389-af2e-ef4458359daa.jpg?type=w1 당진의 한진포구에서 바라본 서해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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