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더라면(안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 속으로 들어갈 때가 많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안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 없는 삶을 바라지만 살아 보니 그런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후회는 그 선택에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걸어온 길이 최선이었다고 인정하려 한다.
내 선택이 잘못된 듯 느껴질 때마다 꺼내보는 장면이 있다. 일이 틀어졌을 경우 최소한 좋은 경험이라도 했다며 나 자신을 다독여 주는 기억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기억에서 자주 소환하다 보니 당시의 풍경, 분위기, 느낌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76년 2월 28일, 두 명의 일행과 함께 1박 2일간의 지리산 산행을 마친 뒤 마천의 산 아랫마을에서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몸은 고단하고 날은 추웠다. 부산 집에 들렀다가 내일모레 서울까지 가야 할 처지였으니, 그날 안으로 외갓집이 있는 함양 읍내까지는 가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지나가는 차도 없고 가로등 하나 없는 오지의 비포장 신작로를 두 시간이나 걸어야 했다. 발바닥은 아리고 짐승 울음소리가 실린 바람 때문에 춥고 으스스한, 조금은 절망적인 분위기였다.
반전이 있었다. 술기운에 기대어 걷다 보니 추위는 가시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총총히 빛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별똥별이 떨어져 며칠 후 있을 나의 대학 입학을 축하해 줄 것만 같았다. 별빛 찬란할 내 청춘의 예고편을 보는 듯 환희에 찬 순간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차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이런 잊지 못할 경험을 하랴. 그때의 기억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훗날 한밤중에 오대산 진고개를 일부러 걸어보게 했다.
살아오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요한 호수처럼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아도 세심히 들여다보니 크고 작은 물결을 헤치며 건너온 시간이었다.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멀기도 했고, 물에 얼비치는 숲의 반영에 반해 그림자일 뿐인 나무의 우듬지에 오르는 허황된 욕심을 품기도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 흔들리고 허우적대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삶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삶이란 그런 것이려니 하고 고이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하여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시련도 가치가 있다고,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늘 머릿속을 지배하는 근심과 후회 대신 50년 전 어둠 속 별빛처럼 모든 선택은 옳았다는 게 세월이 가르쳐 준 인생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