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저수지는 전설의 고향이었다.
어린애 한 둘 또는 처녀가 빠져 죽었다는,
그래서 그곳으로 가면 귀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발을 잡아당긴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위험한 곳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허풍 섞인 경고지만
그 효과는 대단해 근처만 지나쳐도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저수지가 낚시꾼들에겐 낭만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산 그림자 드리운 풍광 좋은 곳에 아늑하게 들어선 저수지 가장자리엔
꾼들이 진을 치고 있고 한가운데엔 좌대가 한가로이 떠 있다.
어딜 가든 쉬 볼 수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나 물고기에겐 살풍경 그 자체다.
꾼들의 손맛은 물고기들에겐 죽을 맛인 까닭이다.
꾼들은 대개 최소 두서너 대에서 무려 열 대 가까이나 되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마치 미사일 부대나 방공 포대를 연상케 한다.
낚싯대 밑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인조미끼에다 떡밥에다 지렁이 등 종류도 다양한 미끼에다
물었다 하면 다시는 뱉을 수 없게 만든 물음표(?) 모습의 무수한 바늘이
최전방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어떤 꾼은 작은 고기는 방생해 준다.
물속을 다시 헤엄쳐 나가는 물고기를 보곤 마치 크나큰 덕이나 자비를 베푼 듯,
그래서 복 받을 듯 우쭐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낚싯바늘에 걸렸던 물고기는 아가미가 살짝 찢기는 등
경상 아니면 중상이다. 상처 입은 물고기는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고통 속에 서서히 죽게 될 수도 있다.
알 가득 밴 붕어가 옆구리에 바늘이 걸려 창자가 터진 채 파닥파닥 뭍으로 끌려가고,
어느 집 잉어는 단란한 가정을 두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둥의 무시무시한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고기들의 킬링필드가 저수지인 것이다.
이상은 내 경험담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10여 년간 낚시에 빠졌었다.
물만 보이면 낚시 생각을 하고 매월 나오는 낚시 잡지도 열심히 구독했다.
직장 나온 후 더 자주 낚시나 해야지 했었는데
시간 때우기 위해 살생을 한다는 게 몹시 마음에 걸렸고
또 여행과 등산만 즐겨도 여가를 보내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어떤 생명체든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한낱 미물에 불과한 물고기를 상대로 벌이는 게임,
인간에게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
일찍이 강태공은 짧은 대나무에다 미끼조차 달지 않은
일자 바늘만을 사용했다는데 말이다.
생계가 달려있으면 몰라도 단순 취미인 낚시로 인해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페어플레이는 물속에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