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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나무 꽃

by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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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나무 꽃을 보면

'명자'라는 이름이 절로 떠오른다.

명자!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내 머릿속에 '명자'라는 처자는 없다.

대신 순자 병숙 영희 길숙······

중학교 동창들이 생각난다.


당시 생물 선생님은

전부 머스마인 우리 이름 뒤에

'자', '숙', '희'와 같은

여자 이름 끝 자를 넣어 부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수백 명의 전교생 이름 가지고

3년 동안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한 번 '자'는 영원한 '자'였던 것.

김창현은 끝까지 김창자였고,

김순길은 끝까지 김순희였으며,

박경수는 끝까지 박경숙이었던 것.

필시 나름의 원칙이 있었던 게다.

그 원칙 중에 웃음과 배려도 깃들어 있었다.

김창현의 경우 창숙이나 창희라고

부름직한데 '창자'라 불렀고,

송병철은 '병자'가 아닌 병숙,

김종창은 '종자'가 아닌 종희라

지으셨으니 말이다.

본의 아니게 개명을 당한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명자나무 꽃을 보면 생각나는 '명자 씨'는 없고

생물 선생님과 함께

까까머리의 그 정겨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마치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들처럼.

졸업 후 50년이 넘도록

아직도 만나지 못한 경숙 순자 명자 민희······

이 봄날 모두 평안한지, 그립고 보고 싶다.

어쩌면 명자나무 꽃을 보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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