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300미터 급이지만 낙락한 소나무와 암릉이 어우러져 서울의 진산(鎭山)다운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볼거리도 수두룩하다. 서울 도심 조망 외에도 삼청각, 성곽길, 북악 하늘길, 1.21 사태 때의 탄흔이 남아 있는 바위··· 북악산은 낮지만 가파르다. 위험하지는 않다. 계단길이 8할이기 때문이다. 북악산을 오르내리자면 계단 2천 개 정도는 밟아야 한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착한' 계단이다. 높이가 낮은 계단이란 이야기다. 쉼터도 아주 멋진 곳에 잘 조성해놓아 소풍 같은 산행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인근의 북악 성곽길과 인왕산에 비해 호젓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4월 21일 소풍 겸 산행 겸 북악산을 걸었다. 사람의 혼을 빼놓을 듯한 절경은 아니지만 봄물이 들 대로 든 산은 은은한 가운데 산뜻 찬란했다. 소나무의 푸르름과 산벚꽃의 몽롱한 색감이 어우러져 초록 물감이 번지는 듯했고 사람도 초록 물결 속으로 스며들어가 스스로 풍경이 된 듯했다. 찰랑거리는 봄 햇살을 머리에 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초록 산길을 걷는다는 것. 계절의 축복이다. 모처럼 대기 상태까지 깨끗해 먼 곳이 선명하게 보이니 없던 에너지가 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이날 북악산 등산 코스는 이렇다.
북악팔각정 주차장 - 북악하늘길 - 하늘마루 - 호경암
- 남마루 - 서마루 - 성북천 발원지 - 성북 전망대 - 북악팔각정.
한 시간 반 코스다.
코스를 세분해 보면,
북악팔각정 - 하늘마루 - 하늘 전망대(북악하늘길, 평지 1km, 20분)
하늘 전망대 - 호경암 - 계곡마루 - 서마루 - 숙정문 안내소(내리막길과 오름길 2km, 40분)
숙정문 안내소 - 성북천 발원지 - 북악팔각정(오름길 1.4k, 30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한성대 입구역을 나와 숙정문 안내소까지 2km를 이동,
팔각정으로 오르거나 반대 방향인 서나무 - 남마루 쪽 산길을 타면 된다.
북악하늘길. 서울 성북동에서 청운동까지 북악산 능선을 따라 난 길이다. 차도도 있지만 차도와 나란히 걷는 길도 있다. 특급 드라이브 코스(북악 스카이웨이)로 알려져 있지만 걷는 길도 그에 못지않다. 이 길의 최고 미덕은 특급 조망이다. 한쪽으론 남산, 또 다른 쪽으론 북한산의 늠름한 연봉과 함께 서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하는 것이다. 시야를 멀리하면 외곽의 관악산 남한산성 도봉산 불암산 등까지 보인다. 또 다른 미덕도 있다. 이어지는 성곽길과는 달리 높낮이가 거의 없고 흙과 나무데크로 조성된 길이다. 여름엔 숲 그늘과 양쪽으로 탁 트인 공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한 피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열섬 현상이 없고 비교적 높은 곳이라 도심보다 평균 3~5도 정도 기온이 낮다.
'하늘한마당'(성북구민회관 바로 옆) → 곰의집 → 성가정입양원 앞 → 북악정 → 다모정. 다모정에서 길이 갈린다. 계속 쉬운 길을 걷고 싶으면 숲속마루 → 하늘마루 → 하늘 전망대 → 호경암 → 동마루 → 다모정을 거쳐 원점 회귀하면 된다. 편도 3.6km. 북악 하늘길에서 정릉, 성북동, 삼청동, 평창동, 청운동 등 마치 혈관처럼 각 방향으로 산길이 나 있다.
호경암. 호경암은 암자가 아니다. 바위다. 세월과 함께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1968년 1월 21일 북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했던 것. 당시의 총탄 흔적이 이 바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북악산 성곽길에도 수령 200년의 소나무에 15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남마루. 코스 중 가장 풍광이 빼어난 쉼터다. 느릿하게 이어지는 성곽길과 서울 도심, 삼청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양도성을 세울 때 서울의 주산(主山)을 정하면서 무학대사의 '인왕 주산론'과 정도전의 '북악 주산론'이 충돌했다. 결국 정도전이 이겨, 북악을 서울의 주산으로 삼게 된 것. 무학대사는 자신의 주장이 꺾이자 "내 뜻을 200년 후에 알게 될 것"이란 말을 남겼다. 조선 개국이 1392년, 20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피란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그렇다고 지금이 200년 주기인 지 따져볼 필요는 없다. 6.25.의 1950년도도 해당사항이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학은 단지 200년 후 단 한 번만 그런 사태가 있을 것이라 예견했던 것. 다만 비교적 근래인 1968년에는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 사태'가 있었다. 이후 북악산 출입을 금하다가 2007년 4월에 성곽길만 개방했다.
남마루에서 솔마루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당시 길도 없는 이곳을 김신조 일당이 도망가고 우리 군경이 뒤쫓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신조 씨는 이곳으로 도망치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붙잡혔다. 그래도 길 이름은 '김신조 루트'다. 그가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北大門)으로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 '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그러나 숙정문은 문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했다. 산악 지대이자 큰 길로 연결된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풍수지리상 북쪽은 음기가 강한 곳이라 '숙정문을 열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진다'라고 하여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숙정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사대문의 격식을 위해 세운 문인 셈이다.
북악산 산행의 들머리인 숙정문 안내소나 삼청각에서 걸어서 30분 거리 이내인 성북동에는 가볼 만한 곳이 수두룩하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사 문화의 향기다. 최순우 옛집,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간송미술관, 수연산방, 성북구립미술관, 덕수교회, 성북 성당, 길상사, 한국가구박물관 등이다. 성북동 길에는 만국기가 휘날린다. 외교관 사택 단지를 비롯 40여 개 국가의 대사관저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성곽길과 북악산 탐방객 외에도 성북동은 마을 탐방객으로도 붐빈다. 그래서 마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