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를 보면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어릴 적 시골 고향마을의 도랑이나 샛강에서의 추억이 깃들어서다. 내게 친숙한 나무인지라 실제 버드나무든 책 속의 버드나무든 허투루 보지 않는다. 사진에 담거나 메모를 한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도 아니지만 순하게 생긴 버드나무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나무 한 그루가 우주라는 말이 있듯 버드나무마다 전설이 뿌리내리고 이야깃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버드나무. 원래 이름은 부들 나무다. 가지가 부드럽다는 뜻이다. 건조한 땅은 물론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데 뿌리는 물을, 잎은 대기를 정화시켜 준다. 꺾어도 다시 자라고 거꾸로 심어도 싹을 틔운다. 꽃은 4월에 피고, 껍질은 이른 봄에 잘 벗겨지는데 이 껍질로 버들피리를 불기도 했다. 예로부터 버들에 얽힌 주제는 사랑과 이별이었다. 육로보다 수로가 이동 통로 역할을 했던 옛날엔 당연히 연인들의 이별 장소였고 이곳엔 물가에서도 잘 자라고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버드나무가 있기 마련.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재회의 언약을 주고받기도 했을 터. 물가라 마땅한 증표도 없을뿐더러, 생명력이 강한 버드나무가 서로의 안녕과 약속 이행에는 제격이었기 때문이리라.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김유신 장군이 말을 타고 가다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한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급하게 마시다 체할까 봐 바가지에 물을 뜨고 버들잎을 위에 띄워주었다. 김유신은 그 여자의 깊은 배려에 감동해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태조 이성계와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전해온다. 이순신 장군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버들가지로 다리를 싸매고 다시 말을 타기도 했다는 걸 보면 버드나무에는 진통 효과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청순가련의 대표인 버들이 화류계에 뛰어든 까닭이 대체 뭘까. '화류('꽃 화 花', '버들 류 柳'). '노류장화(路柳牆花)'에서 온 말이다. 길가에서 흔히 만나는 버들이나 담 밑에 핀 꽃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댄 말이다. 화려한 꽃도 아닌데 쉬 이해가 안 된다. 굳이 이해를 할라치면 버들이 실바람에도 제 몸을 쉬 맡겨서가 아닐까.
버들은 불가의 핵심인 자비와도 연관이 있다.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 꽂아 두고 있는 양류관음도와 수월관음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버들가지가 실바람에 나부끼듯이 미천한 중생의 작은 소원도 귀 기울여 듣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버들가지가 꽂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물병 속에 든 감로수는 고통받는 중생에게 뿌려주기도 한다. 버들의 뿌리가 감로수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다.
칫솔질을 하는 것을 양치질이라고 한다. 옛적 칫솔이 없던 시절에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양치를 했던 것. 버들피리 꺾어 불던 어린아이들은 거친 음식을 먹어도 충치가 없었다고 한다. 버드나무의 살리신 성분이 충치를 예방했기 때문이다. 양치질을 하는 것을 양치(楊齒)로 알고 있는데 이 말의 본디 말은 '버드나무 양楊', '가지 지枝'의 양지(楊枝)다. 일본 말로 요지(楊枝)다. 치약 칫솔이 없던 시절에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적에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사용했고, 다 먹은 후 그 젓가락을 잘게 쪼개어 치아 사이에 낀 음식을 제거했던 것이다.
버드나무는 유사 종이 많아 구분이 어렵다. 줄기 대부분이 잘 늘어지는 것은 수양버들, 그 해에 새로 자란 줄기만 잘 늘어지는 것은 능수버들, 새 잎이 붉은색을 띠면 왕버들이라고 한다. 능수버들은 활쏘기의 표적이 되기도 했는데, 최고의 명궁은 늘어진 능수버들의 가느다란 잎을 맞히는 것으로 우열을 가렸다고 한다. 미루나무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영어로는 포플러 나무, 한자로는 미국에서 건너온 버드나무과의 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 나무'라고 부른다. 미류나무가 맞는 말 같지만 새 국어 법에 따라 '미루나무'가 표준어로 채택되었다.
물가 풍경의 여백을 채워주며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고마운 버드나무. 나른한 강바람을 실은 버드나무가 낭창거리는 물가를 거닐고 싶다. 버들의 푸름이 몸을 휘감으면 마음도 한결 유순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