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에 대한 짧은 고찰

by 길벗


비 오는 날이면 걸음을 조심하게 된다. 미끄럽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지렁이를 밟을까 신경 쓰여서다. 도대체 이 많은 지렁이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비만 오면 기어 나오는 걸까. 궁금하지도 않는데 괜히 궁금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징그러우면서도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렁이는 햇빛이 나거나 건조할 때는 땅속에만 머문다. 피부가 약해 화상을 입을 수 있고 수분의 증발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피부로 호흡을 하는데 비가 오면 흙 속이 물로 가득 차기 때문에 공기가 부족해져 숨을 쉴 수가 없다. 지렁이가 살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이유다. 죽을힘을 다해 땅 위를 기어다니고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면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지렁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그런 지렁이를 보면 솔직히 연민의 정까지 갖게 된다. 보는 이가 없다면 내 손으로 지렁이를 잡아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풀밭으로 다시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지렁이는 피부 온도가 낮아 사람이 맨손으로 만지면 화상에 가까운 뜨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종이나 나뭇잎,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옮겨야 한다.


눈과 코는 없고 입만 있는 지렁이는 지표면의 낙엽, 썩은 뿌리 등을 흙 속으로 가져가 섭취하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흙과 유기물을 섞어 땅에 영양이 돌게 만들며 그 똥은 농작물 재배에 도움이 된다. 지상에는 벌이 식물의 수정을 돕고 지하에는 지렁이가 식물을 키우는 데 유용한 기름진 흙을 만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구에 없어서는 안 될 지렁이들을 땅속으로 되돌려보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지렁이가 일자리를 창출해 줄지도 모른다. 유기견 보호 센터처럼 지상으로 나온 지렁이를 보호하고 있다가 척박한 곳으로 보내주는 유기 지렁이 보호 센터나 지렁이를 땅속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는 공공 근로라도 생길지도. 이제 우리나라도 비가 더 많이 오는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는데 말이다.


또 하나 떠오른 생각. 꿈틀거리는 지렁이나 우리 인간이나 뭐가 다를까. 인간이 지상을 달리고 하늘을 날아도 그건 꿈틀거리는 일일뿐일 것이다. 나는 길가에 핀 풀 한 포기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나 지렁이나 다 같은 미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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