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대한 오해
- 김영삼(1959~)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
누군가 탕탕 제 몸을 때려 주어야
그때야 비로소 쌓인 울음 쏟아 낸다
빗방울이 호두나무를 두들긴다
나뭇잎이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운다
빗방울이 지붕을 마구 때린다
기왓장이 꺼이꺼이 목 놓아 운다
뒤란에선 깡통이 엉엉 울어 댄다
먼 데서 벙어리 길손이 마실에 찾아와
오도 가도 못하는 것들 울음보 터뜨렸다
- 그러고 보니 빗소리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비 자체는 소리가 없고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소리가 날 뿐이다.
그러니까 비가 아스팔트에, 나뭇잎에, 우산에
부딪혀 내는 소리.
그걸 두고 빗소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소리를 울음이라고 했다.
호두나무, 나뭇잎, 지붕, 기왓장, 깡통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얼마나 오래 울음을 참았을까.
오래된 울음을 터뜨리게 해주는 것이 바로 비다.
장맛비도 그렇다.
정체전선이 오래 참고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면
그게 바로 장맛비 아닌가.
빗소리에 집중해 보자.
우리 옛 가락이나 신나는 랩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먼 데서 찾아온 벙어리 길손, 즉 빗방울이
오도 가도 못하는 것들을 두들기고 마구 때리는 소리,
그들이 터뜨리는 울음보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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