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나몽의 짝사랑 상대가 밝혀졌다.
그는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몽골 학생일 줄 알았지만,
또 내가 잘 알고 있다길래
옆반에서 공부하는(지난 학기 우리 반 학생이었던) 빌궁일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다른 나라 학생이라고.
순간 떠오르는 학생이 있었느니,
혹시 렌?
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 청춘.. 영화까진 아니고
학원물에 까만 교복을 입고 등장할 법한
매우 큰 키와 준수한 외모,
살짝 차가워 보이고 날티가 나지만
까불 땐 엄청 까불고 귀여운.
그러면서도 자기가 할 일은 또 얄밉게 잘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사랑과 예쁨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나몽이 그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를
골라 버린 것이다.
그 학생의 이야기를 풀어 보자면,
지난 학기 수업 중에 '-다/라니'라는 표현을 가르칠 때였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된 후
놀라며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이 문법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무얼로 학생들을 놀라게 해 볼까 고민했다.
공항이나 명동, 이태원에 가면
나를 보고 외국인인 줄 알았다는 말을 종종 들으므로
"여러분 사실 제 어머니는 일본 분이세요."라고 하자 학생들은
"오.. 그렇구나"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럴 때는 "선생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니, 신기하네요라든지,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니 놀랍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이번에는 여러분이 비밀을 하나 말해 줄래요?
친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나요?
평소에는 적극적이던 학생들도
이런 다소 난감한 질문 - 비밀을 말하라니..-이 주어지면 주춤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또 다른 거짓말을 해 보려고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
평소 먼저 질문하지도 않고
개인적인 말도 절대 꺼내지 않는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렌이었다.
"아, 제 엄마는 한국 사람이에요."
"어? 정말? 그런데 아까 선생님이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네 엄마는 진짜 한국 사람이에요.
그런데 한국말은 못 해요."
나도 놀라고 친구들도 놀랐다.
학기의 후반부가 다 되어 알게 된
놀라운 그의 사생활.
외모는 완전 일본인인데?
그런데 기억을 거슬러 더듬어 보니
뭔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보통의 일본 남학생들과
뭔가 느낌이 달랐다고 할까?
이건 엄마의 국적 때문일까, 아니면 그 학생의 성격일까?
"근데 전 이 이야기를 고등학생 때 들었어요. "
(뭐? 왜 그렇게 늦게 알려주신 걸까? 보통은 아이가 어릴 때 알게 되지 않나?)
"그 말을 듣고 기분은 어땠어요?"
특유의 입꼬리를 아래로 삐죽하는 표정과 어깨 으쓱을 하더니
"근데 제 여동생은 울었어요"란다.
그렇게 대화 마무리.
그날 저녁, 퇴근길.
아까 렌의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제 동생은 울었어요.'
예민한 사춘기 여중생의 감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일 혼혈아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 같음을 깨닫고?
요즘은 한일혼혈, 한본어 등이 인기도 많다고 하지만,
그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렌의 몇 년의 삶은 어땠을까?
우리 중 누구도 경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어딘가에 걸쳐
때론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살고,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무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경계인은 즐거울 수도 있다.
유한한 삶 속에 유한한 몸을 가지고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낭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렌의 낭만은 무엇일까?
바다와 불꽃놀이를 좋아한다는
감성적인 그의 경계인으로서의 삶과 낭만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