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페르소나

그리고 내 아이의 사춘기

by 따뜻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나면

간단한 점심을 먹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날의 설교, 일주일 동안 일상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다.

조그마한 교회라서 따로 정해진 그룹은 없고

때로는 남녀로 때로는 앉은 자리대로 그룹을 나누는데

오늘은 성별에 따라 나뉘었다.

오늘의 멤버는 40대 둘, 50대 둘, 20대 둘. 총 6명 여성이다.

이번 주제는 '페르소나'로

'가면'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인데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인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을 의미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 즉

사회적인 가면을 가지고 있고

그것 없이 내 진짜 날것의 모습이 순수하게 벗겨지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말하며

모두 그런 순간이 있었노라 고백했다.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본모습이

만천하에 샅샅이 드러났을 때,

과연 누가 나를 이해해 주고

본인의 옷을 벗어

발가벗겨진 나를 가려줄 수 있을까?


앞서 말한 이번 그룹에서 몇몇 여성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것은 모두

자녀 앞이었다고 했다.

또한 그 자녀가 바로

사춘기 시절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미 성인이지만 부모의 역할이 익숙하지 않은

설익은 부모와,

성인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어가는 중이라

본인은 얼추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와의 충돌은,

많은 상황과 관계에서

꿋꿋이, 힘겹게 지켜내었던 부모의 가면을

훌러덩 벗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리도 지르고, 매도 들고,

외출금지, 용돈금지라는 치사한 협박으로도


보너스 용돈에, 이것저것 사주고,

어르고 달래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더 치사한 방법으로도


본인도 성인과 다름없다고 느끼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리라.


부모를 무시할 대로 무시하고

세상 밉고 제멋대로여서

엄마의 가면을 벗겨 그녀의 얼굴을 낱낱이 드러냈던 사춘기 딸은

그 시기가 지나고는 거짓말처럼,

언제 내게 사춘기가 있었냐는 듯

세상 예쁘고 사랑스러운 예전의 딸로 돌아와

지금은 어엿한 미대생이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50대 여성은 밝혔다.

(문장이 뉴스 보도문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놀라운 결과이기 때문.

그러나 보편적인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당시 엄마가 가면은 벗겨졌지만

여전히 그딸을 사랑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사춘기가 이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지다니.

정말 이렇게 사라진다고?

이 결과에 은혜를 받은 현재 초6 남자아이, 즉

사춘기 시동을 슬슬 켜고 부릉부릉 준비하고 있는 아들을 둔 40대 여성은

아이의 사춘기에 크고 작은 사건은 있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매우 의미 있기 때문에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겠다고 묻자

50대 여성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시기가 없으면 더 좋을 거라는 은혜 떨어지는 대답을 했다.


그동안 가만히 학부모 성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이제 막 20살이 된 대학생이 그제서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이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엄마가 바뀌는 거예요.


엄마들의 눈이 커졌다.

뭐?


그러고는 아마 단전..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내오는 숨을

허억 소리를 내며 토해냈다.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가 달라진 것,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아이가 사춘기일 때

엄마는 혈기왕성하고 건강한 여성이다.

불같고, 욕심이 많고, 열정적이어서

나라로 세울 수 있을 정도이며

출산과 육아로 지쳤던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그동안 못했던 운동도 조금씩 하게 되면서

오히려 결혼 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와 모습에 이르기도 한다.


가정의 경제력도 조금 나아져

전에 없던 몇몇 조건이 충족되었기에

지금껏 해왔듯이 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내 아이? 지금껏 해왔듯이 무조건 가능이다.

영재는 아니지만 성실하게 내가 노력하여 최고의 아이로 키워 보겠다 다짐한다.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다.

점점 아이도 제 맘대로 하려 하고

내 말에 꼬박꼬박 맞는 말로 대꾸한다.

아이를 설득하기에는 내가 들어도 내 논리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내 몸이 지친다.

늙는 것 같다.

힘이 든다.

1년, 2년은 영양제와 운동과 보양식으로 버텨 본다.

남은 힘을 모두 짜내 본다.

그러나 3년째는 무리다.

그 이후는?

아, 다 모르겠다.

각자도생 하자.

네 인생 네가 챙기고 내 몸과 내 인생은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나 생각하니

아이의 눈엣가시 같던 문제도 걱정은 되지만 이 정도면 잘 큰 거 아닌가.

마음씨는 착하잖아.


진정한 나를 찾아 영글어가는

성숙의 시기 사춘기.

아름답고 빛나는 이 고귀한 시기를

이름처럼 빛나게 보내려면

엄마, 아빠의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

사춘기를 겪어 온 청년의 일침이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걸요? 부모님 몸이 힘들어서.'라는 듯한

그의 배시시 한 웃음을 곁들여서.

아이도 사춘기에 -어른들이 보기에는- 여러 못된 부분들이 하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이치대로 크고 있을 뿐이니


무엇보다도 나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민낯을 유일하게 보고도

침대에 누워 화를 삭이고 있는 내게 먼저 다가와

죄송하다고 하는 것도 내 아이이고,


평소에는 '오늘 저녁 뭐야?', '지금 어디야?'라는 문자나 보내던 녀석이

장문의 문자로 구구절절 자신의 사춘기를 괴로워하며

엄마에게 그런 것은 정말 죄송하다고 하는 것도,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이다.

내 부끄러운 민낯을 봤는데도 말이다.


그런 내가

아이의 어떤 것을 이해해 줄 수 없으며

어떤 것을 가려줄 수 없을까.

그 어린아이는 내게 그것을 해주는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5. 짝사랑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