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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May 30. 2022

무지개 뜬 날

운수 좋은 날_무지개를 보았다

흐린 날에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도시 경계선 산자락에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고 있다. 새소리, 물소리, 도심 한복판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자연의 소리들이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나는 이곳에 입주한 지 만 4년이 되어간다. 내가 전에 살던 서울 마포구 한 복판이 나에겐 숨 막히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 소리로 왁자지껄하고 자동차 소리, 전자음 소리,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 그렇게 숨 막히는 곳에서도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나도 그곳에 살았었다. 

 출근길 9호선 지하철 안, 발 디딜 곳 없는 그곳에 꽉 끼인 채 20~30분 동안 숨죽이며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마포구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은 없으나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서 꽉 끼인 채로 사는 것 같은 부자유함 자체였다.

 서울 살림살이가 버겁다고 신음하던 그때, 지인으로부터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우리 가족은 용기를 내서 서울을 떠나왔다.

   이사 와서 자리 잡은 이곳은 그래도 수도권 영역인지라 그나마 아이들에게 체면이 바닥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부모의 품 안에 있으니 부모의 선택에 의존할 수밖에.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란 부모의 그림자를 밟는 것뿐이었다.  부모의 실수도 아이들은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부모의 실패에도 아이들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하자고 하면 "좋아요! 찬성이에요!"라고 따라와 주었던 아이들, 천사처럼 맑고 밝았던 아이들에게 짙은 그림자를 안겨준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할 때가 많다.

 부모의 삶이 먹구름과 같았던 날에도 아이들은 해맑게 웃어주었었다. 아이들의 웃음은 "괜찮아요~! 엄마, 저희들은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아요!"라는 긍정 에너지의 충전과 같았었다.

 최종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서 직장에 충성하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나이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부부는 신혼생활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자녀계획은 언감생심 생각하지도 못했으나 첫째 둘째 아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자녀가 생기고 나서부터 우리 부부의 마음은 항상 기쁨 반, 걱정 반이었다. 우리의 신혼생활이 흐린 날처럼 햇살이 비치지 않는 나날이었다. 남편이 늦깎이 대학원생인 채로 신혼생활을 맞이했으니 경제적인 부분이 절대 미약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날에도 웃을 일들은 있었던 것 같다.

 "어머!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잘 생겼어요~^^", "아이가 영재 같아요! 똑똑하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땐 빗말인 줄 알면서도 부모는 하늘을 나르고 싶도록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듯 흐린 날에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으니 인내할 수 있었으리라!

  요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 일지>는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5월 29일 자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도 해녀 출신 춘희라는 여인은 일찍이 남편과 아들 셋을 잃고 아들 만수 한 명 때문에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간다. 그의 아들 만수 또한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듯 소문난 효자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생업 때문에 만수는 아내와 어린 딸 은기와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만수가 쉬는 날 가족과 지내다가 일하기 위해 목포를 떠나던 날 은기는 아빠에게 가지 말라며 흐느껴 울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딸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트럭을 운전하며 가족과 떠나던 만수는 교통사고로 크게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는다.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보며 크게 충격받았을 아내는 딸 은기를 시어머니 춘희에게 맡기고 남편의 간호에 전념하여 기필코 살려내리란 결심을 한다. 하지만 차마 만수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신 시어머니께 만수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은기만을 맡기고 남편에게 간다. 늦은 나이에 어린 손녀를 양육하기가 녹녹지 않은 걸 깨달은 춘희는 며느리가 기다려지고 주변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에 춘희 또한 며느리를 의심하게 되는데... 설마 아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으리란 생각은 상상도 하지 않는 눈치다. 은기는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라는 시선에 서러워 울면서 자신의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외친다. 결단코 내 엄마 아빠는 거짓말하는 분들이 아니고 은기를 버릴 분들이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아픔 하나 없는 사람이 없고 사연 없는 인물들이 없다. 비단 드라마 속에서만 그럴까? 우리들에게도 겉으론 웃고 있어도 실제로 내면에 묻혀있는 아픔들, 트라우마들 한 개쯤 없는 사람이 흔할까?

 먹구름이 꼈어도 언젠가 흘러가기 마련이고 흐린 날이 있다고 살지 못하란 법 없으니 누군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던가? 이는 되새길수록 진실로 명언이다. 모든 것이 멈춰있다면 괴로움과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멈춰있지 않고 흘러간다. 그 순간에 엄청난 일이었어도 지나고 나면 미소 지을 수 있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어느 날 우연히 먼 산을 바라보았다


 공해 가득한 서울을 떠나 전원같이 느껴지는 신도시로 이사 와서 좋아진 건 맑은 공기와 여유로움이었다. 하루하루가 힐링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공기 좋고 물 좋은 여유로움 뒤엔 문화와 멀어진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우선 교통편이 단조로웠다. 병원이나 미용실, 편의점, 마트 등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선 자동차 한 대쯤은 구비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식구가 많은 집은 한 집에 자동차가 두 세대씩이라고 했다. 주차장이 지하로 1~2층이 있었지만 늦은 밤엔 자동차들이 가로주차로 겹겹이 차고도 모자라 도로변에도 줄지어 있었다.

 우리 가족은 가급적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출퇴근 외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때에는 신발 신는 일이 마트 갈 때와 산책 갈 때  하루에 1~2번 말고는 거의 없다 보니 전원의 생활이 오히려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문화가 없는 인간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진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친구나 지인들과 만남도 줄어들고 대화도 없어지고 가족들과의 대화조차도 바깥 정보가 차단되니 점점 대화의 길이가 짧아지게 되었다.

 이것이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것이구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날씨조차 흐릿흐릿한 날이 많으니 내 마음을 대변하는 양 의욕이 바닥을 치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창밖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2000세대가 넘는 빼곡한 아파트 사이로 희미하게 무지개가 뜬 것이다. 나는 눈을 의심하면서 두 눈을 힘껏 비비고선 다시 바라보았다. 선명하진 않았으나 무지개가 맞았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인증샷을 했다. 사진에 찍힌 무지개는 의심할 수가 없었다. 무지개를 본 그날, 나는 기분이 매우 상승되었다.

 무지개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무지개를 보면 행운이라고 말하는 걸 많이 보았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킨 후에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치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증표로서 보여주신 것이라고 전한다.



하늘엔 무지개, 내 마음엔 평화가


 무지개가 뜬 날이었다. 나는 날을 잊을 다. 내가 오랫동안 시도하던 일들이 성사되었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창가에 햇살이 비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굳게 닫아놓았던 마음의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꽃집으로 향하였다. 안스리움 꽃이 심긴 화분을 사고는 품에 안고 꽃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오래오래 함께 지내자고. 안스리움 화분은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았다. 드디어 내 마음엔 평화가 깃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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