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억의 창고

내안에 사계(봄)

by 염상규

어느날,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낡은 앨범을 꺼냈다.
페이지를 넘기자, 빛바랜 사진 속에서 유난히 눈이 초롱하고 웃음이 해맑았던 어린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컸고, 이유 없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청춘의 사진속 나도 있었다.
친구들과 어깨를 걸고 으쓱하던 모습, 꿈과 패기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던 눈빛.
그 순간들을 마주하니 마치 닫혀 있던 ‘기억의 창고’ 문이 활짝 열리는 듯했다.
사진 속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웃고 있었는데, 문득 지금의 나는 그 미소를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개 묻는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의 손을 꼭 잡던, 마음이 먼저 움직이던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살아오면서 세상과 부딪치고, 타협하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변해왔다.
몸에는 묻은 먼지가 늘어갔고, 그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마음은 물들면 안된다.
나쁜 먼지 하나 뭍혀서도 안된다.
그때의 맑은 마음과 순수함은 비록 작게라도 지켜야 한다.
마음속의 ‘기억의 창고’는 우리 스스로 닫지 않는한, 언제든 열어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떳떳하게.
나는 종종 그 창고를 열어 빛바랜 사진 속의 나와 아이컨택을 하고, 몸에 뭍어있는 세상의 먼지를 털어 내려 한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내 마음 한쪽에는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는 들꽃처럼 작고 순수한 향기와 빛을 지키고 싶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나이들어 다시 그때를 회상할 때 사진속의 내가 현재의 나와 서로를 보고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그 미소가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한 나의 마지막 표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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