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음의 거리가 만드는 풍경

내안에 사계(여름)

by 염상규

한때는 매일 같은 온도 속에서 살았다.


아침의 안부가 인사처럼 자연스럽고, 웃음과 한숨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함께한 시간은 물결처럼 부드럽게 이어졌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결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 삶의 풍경도 변해갔다.


우리의 하루는 점점 다른색으로 물들어 가고, 마치 찻잔 속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스며드는 냉기처럼 미묘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꺼내던 말이 입술 끝에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고, 그 틈을 메우려는 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발걸음으로만 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속도로도 잴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따뜻한 손길이 다가왔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가, 나의 하루를 묻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사람의 한마디가 마치 겨울 끝자락의 햇살처럼 차갑게 굳은 마음을 서서히 녹여주었다.


그때 스치듯 알았던게 가까움이란 시간이 쌓인 양이 아니라, 마음이 서로를 만나는 깊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내 안에는 여전히 다 꺼내지 못한 진심들이 있다.


말로 전하는 순간, 그 감정이 흐려질까봐, 혹은 상대가 감당하기 힘들까 봐.


그래서 그 마음은 침묵 속에 남겨 두었다.


차마 전하지 못한 말들은 때로는 눈길 속에, 때로는 짧은 웃음 속에, 혹은 의도치 않은 손길 속에 묻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늘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멀었던 사람이 가까워지는 일은 마치 바람이 구름의 방향을 바꾸듯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더 부드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비록 모든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 여운은 내 안에서 잔잔한 파문이 되어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줄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 파문이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또 다른 온기를 만들어낼 날이 올 거라는 것도.


멀어진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른 빛 속에서 다시 만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전하지 못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 봄날의 바람처럼, 예기치 않게 누군가의 창가를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안다.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여전히 닿아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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