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사계(겨울)
노포 맛집의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세월이 뭍어 있는 간판은 이미 빛이 바래 글자가 반쯤은 지워져 있었고, 입구에서는 오래된 기름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임이 한데 뒤섞여 코 끝을 자극했다.
마치 과거로 순간 이동한 듯, 낡은 식당 특유의 정취가 나를 맞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의자는 삐걱거렸고, 테이블도 반듯하게 맞춰 앉기 어려웠으며, 청결하고 말끔한 식당을 자주 다닌 나로서는 ‘오늘만 그냥 먹자’ 라는 말을 되뇌었다.
음식이 나오자 첫인상은 그다지 기대할 것이 못됬다.
반찬은 하나같이 맵고 짜서 젓가락질이 주저되고, 메인인 아구찜마저 투박하고 거칠었다.
평소 입맛에 익숙한 세련된 맛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게 정말 맛집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젓가락을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한번 집어 든 음식은 어느새 다시 손이 가고 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자극적인 맛은 묘하게 당기고, 어릴 적 어머니가 무심히 내주던 집 밥 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가득차 북적인다.
낡은 식당 안은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좁고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안에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웃음소리로 가게 첫인상의 모든 것을 덮어주었다.
소주잔은 끊임없이 부딪치고, 숟가락은 분주하게 오가며, 이야기들은 파도처럼 넘친다.
사람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지만, 그 냄새는 불편함보다 왠지 모를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이 집의 진짜 비밀은 화려한 맛이 아니다.
음식이 맛있고 없고를 따지는 마음이 아니라, 오랜기간 자리를 지켜온 넉넉한 삶인 것이다.
술잔이 오갈수록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리나는 의자도, 시끄러운 소음도, 부대끼는 사람들도 모두 오래된 이 공간과 하나이고 일부였다.
오히려 그런 불편함들이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식당 안 사람들은 한 공간 안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어느새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누군가는 직장 동료와, 또 다른 이는 절친한 벗 들과 추억을 이야기 하며 웃음을 나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모였지만, 그 안에서 흘러 넘치는 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해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 들어설 때는 불평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이제는 이상하리만치 가볍고 따뜻했다.
가슴 어딘가가 채워진 듯 든든했고,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생각해보면, 이 집을 찾는 수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맛’ 만을 쫒아오는 건 아닐 것이다.
낡은 시설, 투박한 음식, 시끄러운 소란함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정과 온기, 그것이야말로 이 집의 진짜 맛이었다.
노포란, 세월을 이기고 남아 있는 가게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웃음과 한숨, 그리고 수많은 추억이 함께 쌓여 있는 것이다.
오늘 내가 마주한 그 노포 맛집도 결국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 불편함 속에서 오래된 공간이 주는 투박한 온기, 그 속에서 나누었던 푸짐한 한상, 따뜻한 술자리는 내 마음을 오랫동안 웃게 만들고, 여전히 떠올리며 미소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