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비밀 -2-

-단편선 <Sümpfe der Verzweiflung> -5-

by 김태광수

나는 그 무렵의 누나를 떠올려 본다. 누나가 내 곁에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늘 어긋나 다른 얼굴과 겹쳤다.


처음엔 돈이었다. 엄마의 지갑에서 지폐가 사라질 때마다, 누나의 손끝에서 그것이 나타났다. 어디에 썼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어떤 날은 문방구에서 산 사탕으로 바뀌었다가, 또 어떤 날은 담배로 피어올랐다가, 또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남자의 손바닥에 닿아 사라졌다. 지폐의 행방은 언제나 안개처럼 흩어졌다.


누나는 나를 자주 때렸다. 주먹은 돌처럼 단단했고,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배어나와도, 그 침묵이 상처보다 오래 남았다. 주먹보다 더 무서운 건 말 없는 폭력이었다. 냉소, 조롱, 무관심. 누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하거나 비웃었다. 그 눈빛은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런 누나를 미워하면서도,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중학생이 된 누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연기가 천천히 퍼져 얼굴을 덮으면, 그 아래에서 낯선 얼굴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누나는 사라지고, 담배 연기 너머의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장마 끝무렵, 누나는 밤마다 외출했다. 골목 모서리에서 동갑내기 무리의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빨리 와!”


뒤이어 알 수 없는 비웃음이 따라붙었다. 그 웃음소리는 축축한 벽에 달라붙어 오래도록 울렸다. 돌아온 누나의 눈빛은 전보다 더 멀리, 더 차갑게 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을 거다. 어두운 밤, 불 꺼진 집 안에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누나는 인형들을 늘어놓고 혼자 놀고 있었다. 내 레고 블록을 뜯어 짜깁기한 작은 무대, 삐걱이며 금세 무너질 것 같은 탑. 그 위에는 훔친 돈으로 산 쥬쥬 인형 두 개가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한쪽엔 세일러문의 리본이 반짝였다.


평범한 인형놀이 같았다. 그러나 나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것은 도촬이라기보다, 금지된 의식을 목격하는 감각에 가까웠다. 인형의 작은 입술 사이로 들리지 않는 대사가 흘러나오는 듯했고, 누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것을 받아 적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인형 하나를 움켜쥐며 낮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


그 순간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레고 무대가 뚝 하고 부서졌다. 나는 얼어붙은 채 숨조차 멈췄다.


그리고 누나는 고개를 들었다. 깨져 떨어져 나간 여닫이문의 유리장 너머로 내 눈을 곧장 겨눴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인형의 유리 눈과 겹쳐 반짝였다. 나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늦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인형놀이 속으로 끌려 들어간 듯했다.


그 말이 농담인지 고백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들은 것인지,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다. 분명한 것은 무표정이었다. 나는 그 눈 속에서 아버지를 닮은 어떤 낯선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동시에 오래전 우리 집에 들어왔던 젖은 신발의 사내와도 겹쳐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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