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Sümpfe der Verzweiflung> -1-
"Sümpfe der Verzweiflung - 독일어로 '절망의 늪'."
“부제는 정서적 레퍼런스로 쓴 표현이며, 특정 밴드/집단과의 연관이나 지지를 뜻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시절을 되짚어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말의 기운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종교는 그 시절 아직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미신은 언제든 불확실한 믿음의 파편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거침없이 뒤흔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이미 종말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소멸에 실패했을 뿐. 어쩌면 다른 차원, 다른 시간, 혹은 어떤 가능성의 축 한 지점에서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우리에게는 죽음도, 정신의 파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멸망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 모든 건 그저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서 2000년 봄.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됐다. IMF.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노스트라다무스보다 장엄한 공포로 각인된 단어. 이른 아침마다, 간석3동의 폐허 같은 집터 밑에서 미성년자들이 기어 나왔다. 잔혹한 생존의 열기가 골목을 메웠다. 신문은 늘 부패와 비리로 더럽혀졌다. 우린 오직, 선진국만의 선진적 풍경을 동경하며 숨을 이어갔다. 그 시절. ‘헬조선’이라는 말이 이미 뼈 속까지 스며든 세대였다.
기억하기론 초등학교 3학년, 1학기였을 거다. 담임 선생님은 교실 맨 뒤 사물함 위에 어항 세 개를 나란히 올려놓았다. 어항 안엔 투명하고 미끈한 덩어리가 바글거렸다. 선생님은 이걸 개구리알이라 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며칠간 흥분했고, 곧 익숙해졌다.
교탁 옆 칠판 아래엔 ‘개구리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붙은, 스케치북에서 엉성하게 뜯어낸 종이 네 장짜리 도식이 붙어 있었다. 알에서 올챙이가 되고, 다리가 돋고, 꼬리가 짧아지고, 개구리가 된다는 설명.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이제 그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선생님 입장에서의 의의였고, 우리에겐 그저 보기 좋게 둥글둥글한 알덩이들이 둥둥 떠 있는, 좀 해괴망측한 물건일 뿐이었다.
물이 흐리지 않게 매일 갈아줘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공허한 말뿐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진지하게 그 물을 들여다보거나, 냄새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역겨운 냄새 나는 것들을 교문 앞 문방구에서 즐겨왔으니까. 진한 설탕을 뿌린, 바퀴벌레가 분명 지나갔을 거라 확신하는 딱딱한 엿조각. 시큼한(상해서 난 게 분명한) 냄새 나는 젤리 꾸러미. 유통기한 따위 한참 지났을 것같은, 수북한 먼지더미와 함께 버무러진 포장안된 과자 같은 것들. 위생 따위 따지는 애들은 그 누구도 없었고, 개구리알의 비린내 역시 우리가 자라온 매캐한 자동차 매연 속의 공기 중 일부에 불과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항 중 두 개에서 부화가 시작됐다. 처음엔 미세한 점처럼 떠다니다가, 이내 작은 물살이 생기고, 그 사이로 실오라기 같은 꼬리들이 바삐 움직였다. 우리는 그것들을 ‘올챙이’라 부르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손을 넣지는 않았다. 그건 어항을 깨뜨리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금기시된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어항은 조용했다. 어항 바닥에 깔린 개구리알은 처음엔 희뿌옇게 변하더니, 점차 어두운 회색으로 응고되었다. 물은 탁해졌고, 거품이 끼고, 가끔씩 기포처럼 뿜어져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생겼다. 그것이 부패라는 걸, 우리는 말로 설명하지 못해도 감각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 어항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치 반에서 씻지 않아 따돌림 당하는 머저리들을 자연스럽게 외면하듯이 말이다. (그 당시의 나 같은 놈처럼 말이다.)
어항 둘은 여전히 활발했다. 올챙이들은 빠르게 성장했고, 작은 점이었던 몸통은 굵어졌고, 꼬리는 매끈해졌다. 다리를 가진 놈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달린 올챙이는 이상하게 귀여웠다. 아직 개구리는 아닌데, 개구리에 가까운. 그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보며 우린 끊임없이 묻곤 했다.
“언제 개구리 돼?”
우리 중 아무도 정확한 시점을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애들은 관심을 조금씩 잃어갔다. 여름이 다가왔다. 분식집에선 슬러시 기계에 언제 집어넣었는지 모를 김빠진 환타가 돌았다. 주머니 속 동전은 늘 경주용 플라스틱 자동차 모터나 합성수지 냄새가 진한 고무 딱지 따위로 증발했다.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을 자랑하거나, 쎄쎄쎄와 공기놀이를 하거나. 그뿐이었다. 교실 뒤 어항 앞에 남은 건 단지 몇몇 별종들뿐이었다. 나는 그 중간쯤에 있었다. 흥미는 있었지만, 감정은 없었다.
“푸른 하아늘. 으은 하수. 하아얀 쪼옥 빼에...”
개구리가 되어가는 건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었다. 올챙이들은 서로를 밀치고, 배를 핥고, 바닥에 깔린 사료를 먹는지 서로를 쫓아다녔다. 누군가 “쟤네 서로 잡아먹는다”라고 했지만, 아무도 제대로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어항 속은 한 반에 40명씩 넘게 쑤셔넣은 우리 교실 마냥 혼잡했고, 매일 도태 된 새끼들이 죽은 채로 둥둥 떠올랐다. 처음엔 놀랐지만, 나중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죽은 올챙이들은 빨리 퍼지고, 다른 놈들이 그 위를 지나며 꼬리로 툭툭 건드렸다. 어떤 놈은 그걸 집어삼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생존과 포식이 뒤섞여 있었지만, 우리에겐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돋은 개체가 늘어났고, 꼬리가 짧아진 놈도 있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놈도 있었고, 어항 벽면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지는 놈도 있었다. 점점 더 개구리에 가까워졌다. 아이들은 그것을 가끔 바라봤지만, 더 이상 감탄하거나, 손뼉을 치거나, 소리 지르진 않았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던 올챙이들은 이제 그저 교실의 배경이 되었다.
어느 날. 이상한 냄새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맨 처음엔 썩은 수세미 같은 냄새였고, 다음엔 오래된 물걸레 냄새였고, 그 후엔 방학 때 방치된 도시락통 냄새와 비슷해졌다. 그 냄새는 늘 사물함 위쪽에서 내려왔다. 선풍기가 돌면 냄새는 교실 전체로 퍼졌다. 누군가 "냄새난다"고 말하면, 다른 누군가는 "아직도 개구리 있어?"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없애자고 나서진 않았다. 그건 어항 때문이기도 했고, 선생 때문이기도 했다.
그 즈음, 한 녀석이 개구리가 된 놈 하나를 종이컵에 담아 여자애들에게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던지려는 시늉’을 했고, 여자애들이 비명을 지르자 낄낄 대며 웃었다. 그건 금세 유행처럼 번졌고, ‘개구리 던지기’는 놀이처럼 되었다. 교실 구석에서 컵을 흔들며 여자애를 놀래키는 담이 센 놈들, 울음을 터뜨리는 계집들, 모른 척하는 선생들. 그 모든 장면이 아주 빠르게, 아무 저항 없이 굴러갔다. 개구리 하나가 죽으면, 또 다른 놈을 건졌다. 그러다 죽은 놈도 던졌다. 냄새가 진해졌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그 날도 그랬다. 쉬는 시간이었을 거다. 죽은 개구리가 컵 안에 있었다. 누군가 그걸 던졌고, 다른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바닥엔 물이 튀었고, 교탁 옆 칠판 아래엔 여전히 '개구리의 일생'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낡아 찢어졌고, 스카치테이프는 말라붙었으며, 마지막 장의 개구리는 고개가 뜯긴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불행히도 때 마침 선생은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와 이 꼴을 보게 되었다.
우린 얼어붙었다. 열기는 사라졌다. 연대책임. 책상위로 무릎꿇고 올라간 뒤, 의자를 들어올리게 하는 것. 발
바닥을 향한 회초리질을 하는 것. 그런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선생은 마지못한 얼굴이었다. 성가신 일을 억지로 처리한다는 듯, 본보기만 보이면 된다는 태도였다. 주동자 몇 명을 추려내고, 손바닥에 회초리를 내리쳤다. 선생의 귀찮음으로 발현된 자애로운 모습에 안도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며 개구리의 ‘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꼬라지 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더럽고, 냄새나고, 썩어가는 과정이다. 죽은 개구리는 폐기되지 않았고, 컵 안에 담긴 채로 복도에 며칠간 방치되었다. 교실을 오가는 선생님들이 그걸 몇 번 쳐다봤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다들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어항은 그대로 교실에 남겨졌다. 누구도 물을 갈지 않았고,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은 닫히고 커튼은 내려졌으며, 선풍기조차 꺼진 교실 한가운데, 그 끈적하고 축축한 어항 세 개는 방치되었다.
나는 방학 내내 그 어항을 떠올리지 않았다. 아니, 애써 잊고 지냈다. 머나먼 시골에 보내진 듯, 삭막한 농촌의 고독 속에서 TV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던 날들이 이어졌다. 도시에 남아 있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분식집에서 컵떡볶이를 사먹었고, 가끔 파리 몇 마리가 국물에 떨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삼켰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손에 쥐었고, 땀으로 젖은 셔츠를 입은 채 놀이터 그늘에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여느 해의 여름과 다르지 않았다.
올챙이도, 개구리도, 냄새도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건 본래부터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물건을 잃어 울어도, 누군가 전학을 가며 떠나도, 우리는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감정보다 더 절실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덜 배고프면 되는 일. 주머니 속에 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여름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교실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썩은 물의 냄새는 이미 공기 속에 고착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냄새에 익숙해지려는 몸의 반응이 먼저였고,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따지는 일은 나중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코를 찡그렸고, 한두 명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실 한편을 향해 돌아보는 것도 하지 않았다.
사물함 위 어항 중 하나는 여전히 물을 담고 있었지만, 그건 이제 ‘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푸르스름한 막이 물 위에 떠 있었고, 그 아래로 썩은 잔해들이 떠다녔다. 개구리의 형체를 간직한 시체도 있었고, 으스러진 것들도 있었다. 녹조처럼 번진 이끼가 벽면에 달라붙어 있었고,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걸 쓸었다가 바로 욕을 퍼붓기도 했다. 다른 어항은 아예 말라붙어 있었다. 흰 바탕에 검은 점이 붙은 채, 말라 비틀어진 개구리알이 유리벽에 딱딱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손톱으로 긁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지우개로 밀었고, 누군가는 물을 부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그 자리에 고정된 기억처럼 남아 있었다.
며칠 후, 선생님은 마지못한 얼굴로 어항을 들어 밖으로 나갔다. 어항을 씻기 위해 수도가 있는 뒤뜰로 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조용히 지켜봤다. 누군가는 따라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공책을 넘겼다. 선생님은 스펀지로 벽면을 문질렀지만, 끈질기게 들러붙은 알덩어리들은 끝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한 개의 어항은 버려졌다. 검정색 쓰레기봉투 안으로 우그러진 플라스틱이 구겨져 들어가는 장면은 어쩐지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그 일을 잊었다. 아니, 잊은 척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충격 따위 전혀 받지 않은 듯 했다. 아무도 개구리에 대해 입을 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썩은 물, 말라붙은 알, 남겨진 어항, 지워지지 않는 얼룩. 모두 그저 하나의 교재가 실패로 끝났다는 듯한 느낌으로 뭉개졌다. 그리고 참으로 정상적이게도, 그 누구하나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결코 울지 않았다.
많은 해가 지났다. 그 교실은 사라졌고, 사물함도, 어항도, 선생님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사실 이 기억도 2000년에 벌어진 것인지 확신을 못한다.) 하지만 그 끈적한 냄새, 여름 내내 썩어가던 물 위의 막,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반쯤 부패한 생태계의 참상 만큼은 여전히 머릿속 어딘가에서 떠다닌다. 그건 감정이 아니다. 추억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장면일 뿐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토록 아무렇지 않았을까. 그 생명들이 우리 눈앞에서 태어나고, 꿈틀거리고, 자라다 죽어갔는데도 왜 아무 감정도 없었을까. 애초에 감정 같은 게 우리에게 있었던 걸까. 혹은, 너무 일찍 마모되어버린 걸까.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교실을 무겁게 짓누르던 침묵과 어색함.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우리를 쏘아붙이던 선생의 실망 어린 눈빛. 쓰레기통에 던져진 수많은 시체 더미들. 그 안에서 꿈틀대던 것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실패한 실험의 표본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 숙인 채로 둘러본 얼굴들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환멸이, 끝에 다다른 분노가,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어른을, 체벌을,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 아프지 않으려면, 어떤 형태로든 숙여야만 했던 눈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우리가 상처를 입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미 많은 것들이 우리를 무너뜨려왔기 때문이다. 씨랜드의 불길, 부모들의 좌절이 남긴 멍자국, 여전히 살아남아 있던 군부독재의 냉혹한 그림자. 상처라는 말은 이미 사치였다. 그럼에도, 개구리의 참상이 끝나던 순간, 아이들은 숨죽여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혐오했고, 조롱했고, 매도했어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그것을 보았다. 그 침묵은 항변이었고, 그 시선은 부정할 수 없는 충격의 흔적이었다.
나는 알았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항에 손을 뻗었고, 흉내를 냈고, 모방했다. 그것은 부모 세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방식—방치와 방임, 비난과 체벌—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아이들의 얼굴엔 분명 환멸과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선생을 향해 눈길을 들이대지 못했다. 매서운 회초리와 낮게 깔린 목소리, 그것들은 이미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저항은 불가능했고, 표현은 허락되지 않았다. 남은 건 침묵뿐이었다.
결국 그 원망은 표정 속에 맺혔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침잠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끝내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 시절. 우리의 세상은 평등하게 가혹했었단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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