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침한 우상

단편선 - <Sümpfe der Verzweiflung> -4-

by 김태광수


2010년대 초반. 그에게서 비롯된 수렁 같은 그림자가 내 청년기를 잠식했다.
검은 잉크처럼 스며든 그의 존재는, 내 삶에 깊고도 날카로운 흔적을 남겼다.
내 청춘을 휘감은 것은 찬란함이 아니라 끈적한 어둠이었다.
송곳처럼 파고든 인상.
그는 나의 음험한 우상이었다.

2007년이었을까, 2010년이었을까.
기억은 흐릿하고 시간은 뭉개졌다.
다만 또렷한 건, 그가 분명 실존했던 웹툰 작가였다는 사실.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XX 사이트의 구석진 공간에서,
그는 축구 이야기를 그렸다.
다만 그것은 경기의 서술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조롱하는 냉소의 도구였다.
붓터치 하나하나마다 어둠이 묻어 있었다.

그의 그림은 거칠고 둔탁했지만,
그 속엔 무언가 섬세하고도 잔혹한 질감이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축구장의 관중이 괴물처럼 일그러졌고,
어떤 컷에서는 인간의 얼굴이 반쯤 지워진 채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그 무표정 속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블로그라는 심연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곳은 그의 가장 내밀한 곳,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장소였다.
습하고 음울한 감정의 틈,
진흙 속을 파고드는 독백들이 이어졌고,
나는 그 글을 읽는 내내,
마치 벌어진 상처를 억지로 벌려 들여다보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의 글은 폭풍처럼 몰아쳐,
나의 오래된 어둠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너진 존재. 하지만 정직한 눈.
나는 그의 그림자를 쫓는 광적인 추종자가 되었다.


그의 과거는 악몽 그 자체였다.
사기꾼 아버지의 죄로 얼룩진 차가운 감옥 담벼락 아래,
홀로 남겨진 아이.
오래전 떠나버린 어머니의 빈자리는,
배다른 여동생과의 불안한 동거로 메워졌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어둠 속에서 더 깊은 어둠을 보아야 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불량배들의 역겨운 성적 일탈을
숨죽여 지켜보며, 작은 몸으로 망을 봤다고 했다.
그 어린 눈에 새겨진 공포와 수치심은,
한 생애를 지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의 기억 속엔
끊임없이 바뀌는 새어머니들과
폭력적인 아버지의 주먹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잔인한 폭력은
그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막이었고,
빚쟁이들의 발길은 악몽처럼 이어졌다.

납치당할 뻔한 공포.
매서운 눈빛의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아이러니한 용돈.
살인을 저지르려던 창녀 출신의 후배에게 돈을 건넨 순간.
택시 강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악몽까지.
그의 삶은 끝없는 나락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쥐어뜯듯,
조각조각 써내려갔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절망스러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독극물처럼 서서히 퍼져가는 중독.
그는 나의 가장 어두운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어둠,
그 심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트랜스그래시브'라는 장르의 섬뜩한 매력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점점 그를 닮아갔다.
어쩌면, 운명처럼.



2025년 현재, 나는 여전히 희미한 기억 속 그의 마지막 거주지를 더듬는다.
인천인지, 부천인지 모를 흐릿한 경계선을 따라
그의 행방을 쫓아가 보지만,
발길마다 허무한 메아리만 되돌아온다.
그가 머물렀던 골목을 걸어도
낡은 간판과 끊긴 전깃줄, 바래버린 포스터만이
나를 조롱하듯 흔들릴 뿐이다.

나는 그의 지인을 알고 있지만,
그는 너무나 유명한 존재라
나의 간절한 물음에 답해줄 리 만무했다.
세상은 넓고, 그는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였기에,
그의 이름은 이미 바람에 흩날린 먼지 같았다.


어쩌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끔찍했던 과거의 잔재들을 모두 토해내고,
평범한 소시민의 얼굴을 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작가로서의 수많은 실패와 좌절감에 짓눌려
어리석게도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결국 백수나 다름없는 폐인이 되어
삶의 끝자락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글 속에서
스스로를 묘사한 모습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후자의 가능성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나는 더 불길한 상상을 이어가려 했다.
마약, 범죄, 혹은 더 끔찍한 무언가.
하지만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
근거 없는 망상은 결국
나 자신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을 거라는 점이다.
그를 지탱했던 불안정한 방어기제들은
무엇이었든 어떤 형태였든,
악령처럼 그의 영혼에서 제령되어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홀로, 혹은 그와 함께.


그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차갑고 어두운 침묵 속으로
조용히 떨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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