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by 이프로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두 분의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극히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친할아버지께선 돌아가셨을뿐더러 외할아버지와의 추억마저 한 컷 한 컷의 그림 정도로만 추억될 뿐이다.


바둑 이야기로 시작하다 보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떠올려보면 딱 세 가지.


'180 정도는 돼 보이는 큰 키'

‘담배 연기 자욱한 당신의 방'

그리고 '바둑'.


할아버지가 생전에 사셨던 외갓집은 지금은 허물어지고 추억이 된 오래된 기와집이었는데, 마당이 있었으며 마당엔 어릴 적 내 몸만 했던 진돗개(똥개?)도 몇 마리 있었다.


외삼촌 가족과 함께 사셨던 할아버지께선 마루 너머 끝쪽 방에서 지내셨는데


얼마나 무뚝뚝하신지 저 멀리 서울에서 오랜만에 손자가 뵈러 왔음에도 방에서 절만 받으시고 거실 한 번을 안 나오시던...


경상도 남자 특유의 초 초 초!!! 무뚝뚝하셨던 분이셨다.


하지만, 서울 외손자가 바둑을 배우고 나서부턴 상황이 조금 달랐다. 바둑 친구가 생긴 셈이다.


나는 반 강제적으로 할아버지와의 바둑을 두었다.

아니 '불려 다녔다'가 맞겠다.


할아버지께는 즐겁고 반가운 이슈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좀 귀찮은 게 아니었다.


'친척들과 신나게 놀아야 할 판에 골방에서 바둑이나 둬야 하다니!'


그리고 한두 판으로 끝날 분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밌는 일화도 있다.


할아버지는 기원도 나니시고 꽤나 기력이 높으신 수준이었지만, 매일매일 학원에서 전문 교육을 받는 나와 수준 격차가 나는 건 당연했을 터.


처음에는 비등비등했지만 해가 지날수록 게임이 안됐는데, 언제 한 번은 외갓집에서 연락을 받은 어머니께 할아버지 얘기를 들었다.


어린 손자한테 속된 말로 '박살을 당해서' 방 밖으로 나오시지 않는다고.


바둑책과 바둑판만 들여다보신다고...


소위 열이 받으신 거다.

약이 오르셨을 거다.


바둑판 위는 정적 일지 몰라도 상대 심리가 다 드러난다.

때문에 사실은 나도 할아버지 감정을 바둑을 두면서 느꼈었다!!


이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바둑을 배우는 동안 대회에서 꾸준히 입상을 했기에 외가에 내려가면 대회나 학원에서 간혹 상품(내겐 흥미가 없는)으로 받은 바둑 서적(기보)들을 모조리 가져가 할아버지 선물로 드리곤 했다.


당연히 할아버지께선 무뚝뚝하게 '고. 맙. 데. 이’ 한마디뿐.


할아버지 실력이 늘은걸 보며, '내가 드린 기보 때문인가?' 하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나도 지루했는지(?) 몇 번 실수인 척져본 적도 있다 ㅋㅋㅋ.


세월이 흘러 내가 군 복무할 당시, 할아버지가 위독해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눈은 떠 있지만 의식은 없으셨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친척들이, 그리고 손자가 왔다는 건 아셨을 것 같다.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할아버지 쪽을 한 번 돌아봤다.

'꼭 나으세요!'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할아버지께선 나를, 아니 우리를 보고 계셨겠지만 돌아보는 사람은 오직 나였기에 그 순간에…

나를 담은 건 아니었을까…



야속하게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손자가 글을 쓰기 시작하니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좋네요! 당신이 가끔은 그립습니다.


당신 방안에 곳곳이 있던 한문 글귀들과 낡은 서적들

방안에 베인 담배 냄새

자그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방송

낡은 바둑판과 담배가 수북이 쌓여있는 재떨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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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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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바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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