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 복용과 일상의 통제
내 하루는 약을 먹는 걸로 마무리된다.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난 후,
가장 먼저 바뀐 건 몸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약을 먹는 일이
그날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게 되었고,
한 알의 약이 나의 리듬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약을 챙겨 먹는 일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너무 늦게 먹어도 안 되고,
외출을 하더라도 약은 꼭 챙겨야 했다.
하루에 한 번만 실수해도,
그날의 평온은 보장되지 않았다.
처음엔 알람을 맞췄고,
나중엔 몸이 먼저 약을 기억했다.
몸속에서 ‘잊지 마’라고 속삭이는 듯한 그 긴장은
언제부터인가 하루를 계획하는 기준이 되었다.
친구와의 여행, 갑작스러운 약속,
밤이 길어지는 모임 속에서도
나는 언제 약을 먹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가방엔 항상 약이 있었고,
약이 빠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불안이 먼저 엄습해왔다.
약 하나가 빠진 하루는,
나에겐 너무 많은 가능성을 감당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때로는 약에 통제당하는 삶이
답답하고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나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약이 나를 조절하는 것 같아서.
내가 시간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약이 시간을 나눠주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그 알약을 삼킨다.
그건 내 하루를 지키기 위한
작고 단단한 루틴이고,
아무도 모르는 내 방식의 생존이다.
약은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진 못했지만,
그나마 평온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어김없이 약을 삼키며 하루를 닫는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무사히 하루를 살아냈다는 안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