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만의 안전벨트를 갖는다는 것
처음엔 ‘약’만이 내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약 외에도
나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건 무언가를 새로 마련하는 일이라기보단
이미 있던 일상을 조금 다르게 다루는 방식이었다.
밖에 나갈 땐 영양제 하나와 포도당 캔디를 하나 챙긴다. 혹시나 어지러울 때 기운을 차리는 나만의 방법이다. 불안함이 나를 찾아오면 가만히 앉아 영양제를 꺼내고, 몸이 진정되면 근처에서 물을 사 마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피하고, 중간중간 앉아 쉬었다 가는 습관은 이제 자연스러운 내 루틴이 되었다.
하루 일정이 많아지면
중간에 30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넣어둔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준비들이 내 하루를 무사히 완주하게 해준다.
사람들과의 약속도
이젠 철저하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으로 정한다.
예전엔 눈치 보며 따라갔던 새벽 술자리도
지금은 미리 말하고 조용히 빠져나온다.
미안함보다 내 몸이 우선이라는 걸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해왔고,
이제는 조금씩 그 말에 익숙해지고 있다.
안전장치란
사고를 막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안정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예전의 나는 늘 ‘발작이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과 마음을 쥐어짜듯 살아갔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준비한 장치들이 그 공포를 줄여줄 수 있다는 걸.
때로는 누군가와의 신호 한 마디,
나를 잘 아는 친구의 “괜찮아?”라는 눈빛 하나,
손에 꼭 쥐고 다니는 약통 하나가
내게는 ‘괜찮다’는 확신을 준다.
완벽히 안전한 날은 없지만,
나는 매일을 위해 조금씩 대비하고 있다.
그 준비들이 모여
조금 더 단단한 하루를 만들고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다.